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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비밀을 간직한 연인의 속삭임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평점 :

#도서협찬 #초초난난
#오가와이토
마도카 씨가 준 과자를 먹으며 잠깐 쉬려는데 실례합니다,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아버지인 줄 알았다. 특별한 관을 통해 울리는 듯한, 클라리넷으 저음을 닮은 듣기 좋은 목소리. 설마 아버지가 왔나 생각하며 돌아보니 낯선 남자가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미닫이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 두둥실 매끄러운 바람이 날아오른 듯했다. _13p.
<달팽이식당>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오가와 이토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나아가는 인물들, 상처에 휩쓸리지 않고 때론 선명하게 그려질 것만 같은 식탁 위의 음식들과 계절의 묘사는 따스한 힐링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부제 때문에 더욱 궁금했던 <초초난난>은 끝을 알면서도 시작되는 사랑을 시오리의 시선으로 차분하고도 정갈한 느낌으로 이야기한다. 도쿄 야나카라는 동네에서 앤티크 기모노샵 히메마쓰야를 운영하는 시오리,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에 정착했지만 친절한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신년 다회에 입고 갈 기모노를 구입하러 망설이듯 들어선 남자, 회사일로 급하게 일 처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 길어졌고 차 한 잔을 하며 조금 더 친밀감을 느낀 시오리는 하루이치로씨를 마음에 담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자신의 독립으로 인한 가족과의 분리, 연인과의 헤어짐 이후 혼자의 삶에 충실했던 시오리에게 찾아든 사랑은 응원하고 싶기도, 때론 '이건 아니잖아...'라고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하루이치로의 단정하고 정갈한 묘사가 어쩌면 시오리와 사랑이 이루어지길 내심 바라기도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풍경, 실제 존재하는 신사들, 전통 축제, 일본 고유의 매력을 담고 있으며 특히 음식을 묘사하는 부분에선 새벽시간 꼬르륵 소리를 참기가 힘들기도 했다.
하루이치로를 알게 된 신년부터 꼬박 1년, 기모노샵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계절에 맞게 변화하는 시오리의 의상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차분하지만 조금 소란스럽고 자신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려는 시오리의 애틋한 사랑을 응원하고 싶어지게 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면서 그 풍경과 계절 속으로 녹아들고 싶었던 <초초난난>,
시오리가 하루이치로를 생각하고, 함께 있으면서 묘사되는 문장들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지만 너무도 애틋해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느껴진달까? 오가와 이토의 작품을 애정 하는 이들이라면, 또는 알고 싶은 이들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냥 무조건 추천)
기노시타 하루이치로 씨.
나는 방금 알게 된 남자의 이름을 가슴에 새겼다. _23p.
"아직 몇 번밖에 안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면 불편하실지도 모르지만." 기노시타 씨는 밤하늘의 별들에 매달리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오리 씨하고 있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얼마 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_88p.
밤에 무사히 하루이치로 씨를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여느 때와 같은 회색 오메시에 부드러운 물방울무늬 허리띠를 맸다. 이 기모노를 입으면 하루이치로 씨와 담담하면서도 친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_119p.
"눈에는 푸른 잎, 산 두견새, 첫 가다랑어."
하루이치로 씨에는 못 미쳐도 나도 소리 내어 읊어 봤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대로 괜찮을 리 없지만 이미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하루이치로 씨를 만나지 못하면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를 지탱하는 중요한 부분이 내게서 빠져나와 하루이치로 씨를 따라가 버린 것처럼 불안해진다. 마음에 웃풍이 불어들어 선득했다. _173p.
나는 십 년 가까이 지나 비로소 그때 유키미치가 내게 하려던 말을 아주 조금 이해했다. 하지만 이 슬픔이 내 인생의 행복을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한 어둠이라 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짙은 어둠이었다. _286p.
"이제 오지 마요" (···) 눈물이 조금 잦아든 뒤 남은 힘을 전부 쥐어짜 말했다.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지는 심경이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몸이 멋대로 추락했다. 그걸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_376~3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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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223p. 첫째줄 라루코 -> 라쿠코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