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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내일또내일또내일 #개브리얼제빈
#독파 10/16~
샘은 세이디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간 여행이 이런 거로군. 누군가를 쳐다보는데 현재의 그 사람과 과거의 그 사람이 동시에 보인다. 그리고 그런 시간 이동 모드는 유의미한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들 사이에서만 작동된다. _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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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하는 사람들. 그게 우리 게임 중 하나일 때도 있고, 그냥 아무 놀이라도 상관없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저 밑바닥에서 희망이 살짝 느껴졌어. 아무리 세상이 엿 같아도 거기엔 반드시 놀이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중략) 어쩌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영구히 갓난 상태 그대로의 다정한 부분은, 기꺼이 놀고자 하는 의지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람을 절망에서 구원하는 것은, 기꺼이 놀고자 하는 의지일지도 몰랐다. _619~620p.
아마도 누구에게나 유년기 게임에 대한 추억이나 집착이 있을 것이다. 샘과 세이디의 만남은 병원에서 게임으로 시작되었고 그들이 다시 재회해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도 게임으로 이어진다. 남녀 사이에 사랑과 해피엔딩이 아닌 게임과 일, 게임의 세계관과 현실이 다르지 않는 듯 진행되고, 등장인물들의 매력적인 캐릭터만으로도 6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읽는데 책장 넘기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세이디의 스승이자 애인이었던 도브의 캐릭터조차도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이 소설이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샘이 자신의 아픔을 조금 더 드러냈더라면, 세이디와 함께 게임으로 둘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던 그 마음을 조금만 더 내비쳤더라면 둘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읽는 이에 따라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랬더라면'이라는 수많은 가정들을 상상하며 저마다 다른 엔딩을 상상해 보게 되는 건 '게임'이라는 주제 때문이 아닐까? 게임으로 이렇게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너무도 매력적이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다시 재생'하고 싶어질 소설이 될 것이다. 발췌해두고 싶은 문장도 너무나 많았던, 어쩌면 이 책은 나에게 소설 부분 올해의 책! 진심 너무 재미있다!
너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절대 네 친구가 될 수 없어. 친구한테 적선을 받는다는 건 불가능하거든. (중략) "우리 세이디. 인생은 피할 수 없는 윤리적 타협으로 점철되어 있지. 우리는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해." _47p.
인생은 아주 길어. 짧지만 않으면 _78p.
한인타운에서는 아무도 샘을 한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맨해튼에서는 아무도 샘을 백인으로 보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샘은 '백인 사촌'이었다. 뉴욕에서는 '중국인 꼬마'였다. 그래도 K 타운에서 샘은 난생처음 자신이 한국인임을 실감했다. 아니 좀 더 콕 집어 얘기하자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꼭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중립적이라는 사실이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 깨달음이 샘에게 진지한 자의식을 심어주었다. 웃기게 생긴 꼬마는 세상의 언저리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존재할 수도 있었다. _134~135p.
마크스가 보기에 이 게임은 이치고가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언어 이야기였다. 언어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가? 마크스가 그 이야기에 집착한 것은, 그의 어머니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 탓에 성인기의 삶을 대체로 외롭게 때론 우울하게 살았다고 생각한 이유도 없지 않았다. _152p.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순서다. 게임 내부의 알고리즘도 있지만, 게이머 또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플레이 알고리즘을 생성해야 한다. 모든 승리에는 밟아야 할 순서가 있다. 어떤 게임이든 플레이하는 최적의 길이 있다. _280p.
"물을 보면 보여. 빛에서도 보이고. 어디서나 보여.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면." _284p.
몸이 아플 때 세상은 늘 시리도록 아름답게 보였다. 일상에 참여하지 못하고 혼자 외로울 때에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인지 알아차리기 일쑤였다. (중략) 평생에 걸쳐 샘은 '싸우자'는 말을 지독히 듣기 싫어했다. 아픈 게 사람 됨됨이의 실패라도 되나, 싸우라니. 아무리 열심히 싸운들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놈이 아니었고, 고통이란 놈은 일단 먹이를 손에 넣고 나면 무한 변신이 가능했다. 샘에게 메이플타운은 자신이 과거에 겪은,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_298~299p.
"실패를 어떻게 극복해?"
(중략) "다시 일하는 거야. 실패가 네게 준 조용한 시간을 기회로 삼아야지. 너한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생각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또 다른 게임을 개발하기에 완벽한 시간이잖아. 다시 시도해. 그리고 더 멋지게 실패해." _353~354p.
미치도록 사랑해.
전 애인을 친구로 만드는 방법은 그들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며, 관계의 한 시기가 마무리되고 다른 형태로 넘어갈 수 있는 때를 아는 것이다. 사랑은 상수인 동시에 변수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_483p.
"게임이 뭐겠어?" 마스크가 말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잖아.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 계속 플레이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개념.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까."_5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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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