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르미 그린 달빛]은 전 5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이며, 조선시대의 역사적 배경 위에 써 내려간 ‘픽션’이다.
저자 윤이수는 ‘작가의 말’에서, 지난 2013년 봄날 창덕궁을 찾았다가 차마 못 다한 생이 서러운 효명 세자(孝明世子)―본명은 ‘이영(李?)’이다―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효명 세자는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純祖)의 맏아들로, 19세 때부터 병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했다. 비록 22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인물이지만, 그 이름처럼 효성스럽고 명민했다고 전해진다. 짧은 생애였으나 세도정치를 억제하고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문학과 예술에서도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성정은, 가상임에도 소설 곳곳에서 실감 나게 구현되고 있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갈등, 세권 다툼은 소설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더하는 플롯으로 작용한다.
언제부턴가 지인들 사이에서 들리기 시작했던 <구르미 그린 달빛>, 하지만 5권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러웠고 언젠가 읽겠지? 라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7월 생일을 맞아 지인들께 선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은거지? 5권이라는 분량이 무색하게도 책을 들고 앉으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책장이 넘어간다. 조선시대 실존했던 인물인 효명세자 (이영)의 짧은 생. 을 역사적 배경 위에 써내려갔다는 <구르미 그린 달빛>은 홍라온이라는 남장 여주의 활약과 조연들의 활약으로 물흐르듯 흐름을 이어간다.
홍라온, 저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밝은 해를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함께 있으면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 어떻게 하면 저렇게 구김살 하나 없이 웃을 수 있는 것일까?
한 번도 불행한 일 따위는 겪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처음 저런 모습을 보았을 땐 아주 잠깐 강샘도 했더랬다. 라온의 밝은 모습이, 티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괜스레 샘이 나고는 했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저리 환히 웃을 수 있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 남들보다 더 많이 힘들고, 더 많이 아팠기에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이쯤은 가볍게 툭툭 털어버릴 수 있다는 듯이. /p333 구르미 그린 달빛 1권
지금까지 라온에게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견디며 인생의 길을 한 발 한 발 어렵사리 내딛는 것.
그러나 궁에 들어와 방연을 만나고 화초서생과 재회하는 사이, 사는 것이 진실로 즐거워졌다.
어느 사이엔가 라온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p58 구르미 그린 달빛 2권
운종가 거리에서 삼놈이로 불리며 담배가게 한켠에서 고민상담을 들어주고 내놓는 해결책마다 잘 들어맞아 더욱 유명세를 타게된 홍라온. 대가댁 도령의 연서를 대필했다가 상대가 만나자는 이야기에, 대신 나갔다가 화초서생 (이영)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연서를 대필했던 상대가 궁에서 귀하디 귀한 명온 공주였을 줄이야.... 그사이....라온은 동생 단희의 병세가 악화 되면서 큰돈이 필요하게 되고, 마침 그녀에게 궁의 환관이 되면 큰 돈을 선불로 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 환관이 되려고 마음먹고.... 환관이 되기 위한 과정을 지혜롭게(?) 넘기고 환관이 된 라온. 의 궁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다.
하지만 채 생각이 여물기도 전에 깨닫게 되었다.
왕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하여, 마음을 잘라냈다.
여린 새싹처럼 돋아나는 사람의 감정을 철저히 베어버렸다.
그렇게 마음의 잔가지마저 깨끗이 도려낸 이후, 영은 모든 것에 무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제 곁에 잠들어 있는 라온을 보는 순간, 마음이 동요했다.
평온했던 일상이 뒤틀리고, 냉정했던 사고가 성난 짐승처럼 날뛰었다.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어린 아우 정도로 생각했던 녀석이었다.
자신을 화초서생이라 부르는 녀석의 맹랑함이 싫지 않았다.
두고 보는 재미로 온종일 붙어 있어도 심심하지 않아 자주 찾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정이 들었고 이제는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녀석으로 인해 무심했던 심장에 마음이 생겨났다. /p260 구르미 그린 달빛 2권
은밀한 남자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라온. 어머니와 동생 단희를 위해서 눈감고 딱 3년만 궁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지만,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그녀의 인생은 조금 더 고단해 지는듯하지만 궁에서 만나게 된 병연과 외척세력의 수장인 김조순의 손자인 이조참의 윤성과의 만남으로 네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궁금해 지는 마음에 책장이 넘어가는걸 멈출수가 없었다. 아버지인 순조가 외척세력에 휘둘리면서 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고 싶었던 이영. 지나치게 똑똑하고 영민했던 세자를 배척하려 했던 외척세력들. 그들간의 숨가뿐 움직임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간다.
살아가지 않고 살아가야 했다. 외롭지 않고 외로워야 했다. 한 줌 바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을 부유하는 구름이 되고 싶었고, 티끌 같은 먼지가 되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기에 마음 둘 곳도, 기댈 곳도 두지 않았다. 세상에 미련 두지 않은 채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내 삶에 그 녀석이 뛰어들었다.
홍라온, 사내의 모습을 했으나 사내가 아닌 녀석, 온종일 그림자처럼 내 곁을 맴돌던 녀석이 귀찮았다.
성가셔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차마 쫒아낼 수가 없었다. 내 곁에서 떨어지라고 소리칠 수가 없었다.
녀석이 내게 건넸던 죽 한 그릇 때문이었을까? 녀석의 온기가 조금씩 나를 침범해왔다. /p113 구르미 그린 달빛 3권
자로잰듯 정확하고 날카로운 성정의 이영. 그가 라온의 등장으로 조금씩 변화해 가면서도 왕권강화를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에 효명세자의 너무도 짧은생. 이 책을 읽으며 역사속 그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이 궁금해졌다. 한국사에 대해 너무나도 아는게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차에 마주한 조선시대라 역사에 조금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가졌다고 할까? 참 고마운 책이네...
외척들은 겨우 한 걸음 떼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대비께선 또 다른 외척을 들이라 하고 있었다.
힘으로 힘을 견제하는 것. 그것이 정치라고 하였다. 그들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잘 해야 바른 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영이 생각하는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는 왕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왕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외척을 방패 삼아 또 다른 외척을 상대하는 그런 왕은 되고 싶지 않았다. /p245 구르미 그린 달빛 4권
여인의 몸으로 거짓 사내 행세를 하고, 환관이 되어야 했다. 참으로 가혹한 운명. 그 저주받은 운명이 이젠 라온에게서 정인마저 빼앗아갔다. 그럼에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행복하다 말하고 있었다. 윤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라온이 말을 이었다.
"이처럼 그분의 곁을 지킬 수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윤성이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단단한 믿음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의가 저리도 굳건할 수 있단 말인가.
윤성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배워왔다. 언제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돌아서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아니었다. 영을 향한 라온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이제는 세자의 등 뒤에서 그를 지켜볼 수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아니, 전보다 더 깊이 연모하고 있었다.....<중략>
라온의 진심, 그녀의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지독한 연모가, 그 견고한 신의가 윤성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까지 알아온 모든 것들이 뿌리째 흔들렸다. /p326~327 구르미 그린 달빛 4권
조용히 라온을 지켜주는 병연, 월하노인의 팔찌로 그녀를 자신의 마음에도 묶어두고 싶었지만 이미 이영에게로 향한 라온의 마음을 알기에 곁에서 조용히 오라비처럼 지켜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윤성은 홍라온이 역적의 자식이었던 것을 알고 그를 이용해 사건을 키울 생각이었지만 라온을 몇 번 만나보며 그녀의 투명함과 올곧음에 계획을 수정해가며 그녀를 지키고 싶어졌고, 이영을 향한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어졌다. 이 두 남자는 이영의 어릴적 배동으로 성장해가며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한 여자로 인해 다시 서로를 마주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운명.
언제나 그랬다. 삶은 고통이었고, 무심한 하늘은 그들 편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칠 때마다 이리 무참히 짓밟혔다. 백성이란..........백성의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라 하지만......너무 버거웠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겨웠다. /p389~390 구르미 그린 달빛 4권
잠시 윤성을 바라보던 라온은 검지를 추켜세웠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
"세월이 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월이 약?"
"네, 그 사람이 없으면 당장 죽을 것 같고 미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괴로운 마음도 잊힐 거라고 하셨습니다."
".................."
라온의 말에 윤성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미처 대비할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멋대로 깊은 흔적을 새겼다.
뜨겁고, 아프고, 괴로웠다. 아무리 태연한 척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은 연의 인.
"정말 세월이 흐르면 이 고통이 사라지겠습니까?"
"지금의 고통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아프고 괴롭더라도 견디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아픈 마음도 비워질 겁니다." /p456
라온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검지를 세우며 "우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이라고 하는 부분도 곧 드라마 방영이 예정되어 있어서인지 점점 3D화 되어가는 책읽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김유정이 홍라온의 역할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건 책에 묘사된 모습들과 그녀의 모습이 묘하게도 어울리는 기분이었달까?
<font color="#888888"></font>"저하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저하께서 달이 되신다면 저는.....저하의 곁을 맴도는 구름이 되렵니다."
"구름?"
"홍운탁월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진정으로 아름다운 달빛이란 달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그려내는 달빛이라 하였지요. 저하를 빛내드릴 수 있는 구름이 되렵니다. 지친 저하를 포근히 감싸 안을 수 있는 그런 구름이 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고.... 저하께서 밀어내실 때까지 저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렵니다." / 구르미 그린 달빛 5 / 홍운탁월 p206
"..............성가신 녀석."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병연의 입에서 불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아쉬울 것은 없었다. 온 마음을 다해 연모하였으니, 안타까울 것도 없었다.
저리 무사하도록 지킬 수 있었으니, 그러나 내 몫이 아닌 사람, 그것이 아플 뿐이다.
그것이 아주 조금 서러울 뿐이다.
하지만 욕심내지는 않으리라. 이번 생에서 아니 된다 하면 다음 생을 기다리면 될 터.
다음 생에서도 내 몫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다음 생을 기다릴 것이니, 그러니 너는........행복해라.
"아무 시름없이 행복해라, 홍라온."
돌아서는 병연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걸렸다. / 구르미 그린 달빛 5 / 홍운탁월 p267~268
짧은 생을 살다갔던 효명세자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여서, 갑작스레 그의 죽음이 등장 했을땐 당황스러웠지만 뒤의 이야기가 너무 자연스럽게 풀려서 한나라의 왕이 아닌, 달이 되어 어둠속에서 외척세력들을 지켜보며 라온과 행복하게 살다가 온 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녹아들어, 마지막까지 흐뭇했던 <구르미 그린 달빛> 읽어가는 책의 권수가 많아질수록 등장인물들에 빠져들게 되고, 박보검, 김유정 주연으로 곧 시작될 드라마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병연과 윤성의 역할도 중요한데 찾아보니 잘 모르는 배우들이라... 좀 걱정은 되지만 잘 하겠지? 그럴거야.... 믿고 봐야지....) 진정,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책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안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