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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청민 지음 / 첫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36p/
당연한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내가 당신으로부터 와서, 그저 당신이 나를 낳은 엄마라서, 그 이유만으로 사랑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언제나 나에게는 철없게만 보이던 요한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해졌다. 사랑의 임계점은 어디까지 일까.
제목 한 줄로 책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읽기도 전에 아끼게 되는 책이 있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는 한 줄의 제목만으로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에 반쯤은 빠진듯한 책이었다. 책을 읽기전 저자의 짧은 프로필과 사진을 보며 젊은 작가네, 이 작가는 어떤 삶과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까? 라는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넘기며 사진과 글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기보다 가족, 살아가는 사회속에서 의 사랑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92p/
기억은 희한하다.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일인데, 곱씹을수록 커져서 추억이란 이름으로 뒤바뀐다. 그리고 추억은 더해질수록 점점 더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108p/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부담스러워졌고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과거에 만났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만 짙어지고 새로움보다는 두려움이 더 깊게 남을 때면, 나는 종종 사람이 무서워지곤 했다. 새로운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운 마음의 괴리는 외로움을 낳았고, 그 외로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만남들에 대한 그리움을 낳았다.
특히 엄마와 딸의 애틋한 관계, 엄마가 자신의 나이에 이미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엄마 아빠의 사랑은 어땠으며, 엄마인 그녀가 자신들을 보듬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조금씩 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엄마와 자신의 관계가 단순히 엄마와 딸의 관계가 아닌 먼저 인생을 살아간 여자와 그 여자의 딸. 그리고 그러한 엄마의 삶을 지켜보고 자라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남동생과의 어린시절 에피소드도 자주 등장하는데 어린시절의 투닥거림을 읽으며 동생들과의 어린 시절 정말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다가도 동네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우르르 몰려가서 대응하기도 했었는데... 하는 추억에 잠기기도 했었다. 아마도 가족이란 형제란 그런 거겠지. 이젠 자신들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동생들과 어린 시절처럼 자주 복작거릴 일은 없지만, 살아가다보니 서운한 일도 생기게 되고 사랑보다는 살아가며 쌓이는 시간속에 정, 애틋함,애증 갖가지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며 그렇게 피붙이로 살붙이로 살아가는 거겠지..
159p/
사랑은 어쩌면 조각과 조각이 모여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처음부터 대단한 하루가, 처음부터 대단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사랑은 조각과 조작이 모이는 행위이고, 작은 조각들이 쌓이면서 하나의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하루는 수많은 조각들로, 수많은 마음들로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생각한다. 아침을 밝히는 이 조각들을 참 사랑한다고.
사랑과 조각이란 말을 좋아한다.
233p/
때때로 마음의 폐허를 마주한다. 분명 웃음소리와 생기가 넘치던 공간이었던 거 같은데, 한순간 마음의 집이 숨결 하나 없는 컴컴한 폐허가 될 때가 있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이곳 구석진 어딘가에 묻혀 누군가의 무덤처럼 공허할 때가, 벽지는 뜯겨 나가고 바닥엔 온갖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공간처럼 보일 때가, 다시 밝고 생기 넘치는 공간으로 가꿀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삶에 때때로 찾아오곤 한다.
젊은 작가 답지 않은 차분함? 요즘 아이들을 많이 봐 왔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민 작가의 시선은 따뜻함과 애틋함이 전해지는 글이어서 참 좋았던 것 같다. 글을 읽으며 '나' 자신에 대한 생각보단 '엄마' '부모님' '형제' 그리고 그동안 놓친 인연들을 생각하며 한 해를 조용히 마무리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오다> 는 다가오는 새해에도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읽으며 '사랑'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