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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부인과 아이들을 두고 떠나버린 남편. 시작부터 이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그런 며느리를 챙기기 위해 달려온 시아버지. 아들이 떠나버리고 남겨진 며느리와 손녀들을 보살피기 위해 달려온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이야기는 사랑을 잃고 자존감마저 상실한 며느리를 다독이기 위한 시아버지가 건네는 말들은 평소 시아버지에게 느낄수 없었던 아버지로서의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우며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닌 시아버지가 그녀와 아이들을 데리러 왔을 땐 그런 시아버지의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쩌면 그렇게 떠나버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42p/
담배를 한 대 피웠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게 벌써 몇 년째인데.... 하지만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십리 길을 걸어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 하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 게 인생이다.
49p/
내 삶은 이 임시 침대와 같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삶, 유예된 삶.
51p/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일쑤니 말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98p/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니?"
아드리앵은 떠나면서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까? 시아버지가 이야기하는 떠나는 사람의 괴로움, 은 무엇일까? 괴로움이라는건 남겨진 사람의 몫이 아닐까? 의문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시아버지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가 며느리에게 위안이 될 수도,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고 자신이 평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했던 반짝이는 순간의 이야기를....
98~99p/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있을까?' 하고 또박또박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야. 그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자기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 있는 잘못된 것과 추악한 것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모든 것을 망가뜨릴 것을 각오하는 용기 말이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기심에서? 순전히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건 아닐 거야. 그럼 뭘까? 생존 본능?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우리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용기를 내야 돼. 오로지 자기 혼자서 자신과 맞서야 할 때가 있는 거라고, '잘못을 저지를 권리',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그걸 주겠어? 아무도 없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야."
마틸드와의 한정적인 만남을 뒤로 하고 그녀와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정을 떠날 결심도 했지만, 자신의 비서인 프랑수아즈의 남편이 떠나버린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한 가정의 가장이 가정을 떠난다는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고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뒤로하고 자신의 결심을 깨끗이 포기하기에 이르른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고 가장으로서, 자신의 자리도 포기 할 수 없었던 한 남자. 마틸드가 자신과의 사랑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만나왔을지....
193p/
"아버님은 그녀를 사랑하셨어요?"
"그냥 사랑했어."
"그럼 그 시절에 대해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계세요?"
"그건 점선으로 이어진 삶이었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가 있고, 다시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가 있고, 그러고 나면 또다시 아무것도 없고 그랬어.... 그래서 세월이 아주 빨리 지나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일이 겨우 한 철밖에 지속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 철도 아니고 그저 한 줄기 바람, 하나의 신기루였던 것 같아.,...... 우리에게는 일상의 삶이 빠져 있었어. 다른 무엇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마틸드가 고통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207p/
내가 남보다 명민하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네 나이의 두 배를 살다 보니 내 나름의 깨달음이 생겼다. 삶이란, 네가 아무리 부정하고 무시해도, 너보다 강한 거야. 그 무엇보다 강한 게 삶이야. 전쟁 중에 수용소에 갇혀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본 사람들도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만들었어. 고문당한 사람들, 자기 가족과 집이 불타는 것을 본 사람들도 예전과 다름 없이 버스를 잡기 위해 달음박질을 치고 날씨에 대해서 말하고 자기네 딸들을 결혼시켰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인생이 그런거야. 삶은 그 무엇보다 강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굉장히 대단하다 여기지만, 삶에 맞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목소리를 높이지. 그래서 뭘 어쩌겠어? 그러고 나면 결국 뭐가 남는데?
너무나 사랑했지만 함께 할 수 없었던 여자를 뒤로하고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시아버지. 사랑이란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닐까? 프랑스소설을 부러 찾아 읽지 않는건 어쩌면 '난해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지만 안나 가발다의 섬세하고 간결하지만 때때로 뭉클함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누군가를 평생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운명적인 사랑이란게 나타난 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사랑을 선택 할 수 있을까? 떠난자의 괴로움도 어쩌면 남겨진 사람만큼이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해보게 된다. '사랑' 떠나고 남겨지는 그 과정이 서로에게 아픔으로만 남지 않아았으면 좋겠다. 분명 그들이 사랑했던 시간들 속에도 추억으로 평생갈 시간들도 있을테니 말이다. 언제고 다시 한 번 꺼내 읽고 싶은 책으로 갈무리 해본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