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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이 세계를 걷는 나만의 방식
한수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4p/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착각이다. 미안하지만 새로운 인생 같은 건 여기에도 없으니 아마 저기에도 없을 것이다. 장소가 바뀌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새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전과 같지만 어딘지 예전과는 다르다.
<온전히 나답게>를 통해 처음 알게 된 한수희작가, 비슷한 나이대에 작가이면서 동네에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데 더 공감이 가고 끌렸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신간 소식을 접하고 무조건 출간되자마자 읽어야겠는 생각에 바로 읽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읽어지지 않았던 건, 책의 내용보단 글씨가 너무나 작아서 이동하며 읽기에 불편했다는 걸 핑계로.....어쩌면 그래서 더 집중하며 읽게 된 책이기도 하다.
60p/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는 잠시 숨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정은 족쇄가 된다.
78p/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사랑을 하지 않았더라면 또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무섭고 위험한 롤러코스터에 올라탔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세상 모든 것들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사랑에는 목적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이렇게 애써 바보 같은 짓을 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바로 그것이 우리가 연애를 해야 할 이유라는 것을.
<온전히 나답게>가 오롯한 저자 자신의 이야기였다면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는 좀 더 넓게 확대된 이야기랄까? 책과 영화에서 읽은 이야기를 현실의 삶과 시대를 아울러 이야기하는 글은 많은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좁은 시야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담담할 것/ 씩씩할 것/ 우아할 것 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래서 뒤로 가서 다시 읽고 또 읽어보게 되는걸지도 모르겠다. 읽으며 마음에 맺히는 글도 있었고 소개하는 책속의 문장이나 영화들은 궁금해서 찾아보고 싶게 만들게 했고 책을 읽으며 짬짬히 메모하기도 했지만 맨 뒷장에 친절하게도 모아서 정리해주었으니 편하게 읽어가도 좋을 글들.
120p/
나이가 든다고 해서 특별히 확실해지는 건 없다. 계속되는 불안함과 막막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걸 못하고 저걸 잘해. 나는 이걸 좋아하고
저걸 좋아해.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을 하느라 급급한 대신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145p/
일의 바깥에도 삶이 있다.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다. 일이 우리를 의심이 없는 괴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또는 자신이 만든 고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때가 비로소 잠시 멈춰 서서 의심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의심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출 퇴근길 읽던 은유 작가의 글을 읽으며 글쓰기를 위해선 책을 가려 읽어야하는구나 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읽어갔는데 다시 돌아와 한수희 작가의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를 읽으면서는 선을 긋고 잣대를 대어 살아가지 않아도 살아가는대로 살아지는 것도 인생이라고 다독임을 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동네 작은 카페(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함) 에서 책을 좀 많이 읽은, 그리고 인생을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살아온 여자이자, 작가이며, 아이들의 엄마인 그녀의 이야기는 마흔 가까운 삶을 살아오며 이렇게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겠구나. 나에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기도 했다.
150p/
소비는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쿨한 사람, 의식 있는 사람, 트렌디한 사람, 잘나가는 사람, 괜찮은 사람, 자신
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돈을 써야 했다. 돈을 쓰지 못하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174~177p/
가장 큰 문제는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전혀 반갑지가 않다는 거였다. 마치 내 집에 들어온 낯선 침입자를 보는 것처럼 당황하고 놀라는 일의 연속이었다. (정말로 놀라서 꿱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그러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면 '이러다 망하지'라는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정말 장사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니었다.....<중략>.... 장사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아프나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같은 시간에 문을 닫는 그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오늘은 손님이 없지만 내일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카페의 주인으로서 환대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말 그대로 뼈저리게 배웠다. 무엇보다 그저 버티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기본이라는 것을 배웠다.
위의 글을 읽으며 어찌나 공감을 했던지, 매일 같이 출근해 일을 도와주고 있는 동생이랑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언니 이거 우리 이야기 같은데?' 하며 놀랍다고, 언니도 책을 그만큼 읽었으면 글을 써보아도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 하며 몇 번을 읽었는지.... 아마도 자영업을 하는, 또는 내 가게를 꿈꾸다 시작했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한 생각이 아닐까?
199p
내가 살고자 하는 모습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대다수가 옳다고 믿는 것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실이 가끔 두려워진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나라의 낯선 거리에 떨어진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소심한 내게는 삶을 위한 가이드북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줄 가이드북이. 이 두 권의 책은 내게 그런 가이드북이 되어 준다. 그리하여 나는 깨닫는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남들이 사는 모습과 조금 다른 것일지라도, 아주 작은 것부터 원하는 방향으로 움지이기 시작한다면 어느덧 내가 원하던 삶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라고.
쉼 없이 매일같이 출근해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매장에서의 하루 하루들이 어느덧 4년째를 맞이했고, 조금씩 그 마무리를 준비하는 중이다. 어쩌면 마음먹은대로 살아지지 않는게 인생이고 수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지만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늘 같은 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원을 맴돌고 있었던게 아니라 조금 멀리 돌아가는 나선을 돌고 있는게 아니었을까...라는 저자의 시작글처럼 더 나아지지 않는 오늘이라도 시행착오들 속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며 조금씩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