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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오랜 연인과 헤어짐으로 힘들어하던 직장 동료가 오래도록 들고 다니며 읽던 책의 제목이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이었다. 책의 제목이 독특하기도 했고,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는 그가 신기해 책을 빌렸는데, 몇 장 읽지도 못해서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 년째 책장에 방치된 상태였는데... (결국 그 동료에게 책을 돌려주진 못했다.)
5년이 지나 출간된 책으로 읽게 된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 이전의 책표지가 강렬했다면 새로 출간된 책은 차분한 느낌이랄까? 조금 상반된 느낌이었다. 이전의 내용을 과감하게 덜어내기도 했다고 하니 이전의 책도 읽어봐야겠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배였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p26
이별은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연은 언제나 뒤로 온다.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p44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이라는 간판을 건 레스토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침 일곱시 옷을 갖춰입고 따뜻한 식사를 하며 '실연 기념품'을 교환한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내놓고 의미가 없는 물건이 되어버린 다른이의 물건을 교환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랑의 종착은 무엇일까? 사랑에 종착이 없다면 '실연'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일은 있을 수 없겠지? 이별의 순간은 아프겠지만, 이별을 함으로써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과정을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이야기 하면서 치유하고 치유되어가는 과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삶에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믿을 수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 불행을 예감하고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불행은 결코 보험 광고 속에 등장하는 낯익은 에피소드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위험을 대비하고 불행을 대비한다는 건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도 그 순간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때의 일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을 뿐이다. /p83
'실연'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떠오르는 감정들은 너무나 많지만, 이별이 있어야 새로운 사랑도 시작할 수 있고, 그 실연의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만남이 달라진다는 생각에도 동의하는 편이다. 이십 대에 시작했던 조금은 늦은 사랑을 삼 십 대에 들어서 힘겹게 실연하고 애써 외면하고 괜찮다고 덮어버렸는데, 그 어설픈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사랑', '실연' 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 감정을 추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의 경우, 우연한 여행 때문에 낯선 곳에서의 삶이 결정되곤 한다. /p237
스스로의 삶을 관통하는 말은 하기 힘들다.
죄책감은 말의 껍질을 깨뜨리고, 분노와 슬픔은 껍질 안의 말을 짓눌러 부숴버리기 때문이다. /p280
타인의 비밀을 듣는다는 건 큰 책임을 요구한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책임. 간직하는 동시에 떠나보내야 하는 책임. 묵언의 서약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꺼내놓아야 하는 책임. 비밀은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그에 짓눌린 무게의 짐을 스스로 덜어놓는다.
'간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기억 따위를 마음속 깊이 새겨두는 것'이다. 비밀은 누군가에 의해 간직된다. 우리가 '간직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오래된 장롱 '속'이나, 복잡한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금고 '안'이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어렵게 끄집어내야 한다. '속'과 '안', '곳'에 넣어두는 깊숙한 기억과 물건들, 마음의 가장 어두운 곳에 닿아야 비로소 꺼낼 수 있는 것. /p284
사강은 점심을 잊은 채, 옛날 사람들이 독서했던 고전적인 방식대로 책을 읽었다. 눈이 아닌 입으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문장을 따라 읽었다. 책 속의 세실이 걸음을 멈추면 그녀도 잠시 읽기를 멈추고, 슬픔에 빠진 안느가 울면 그녀 역시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슬픔을 느꼈다. 사강은 문장을 입으로 읽고, 귀로 듣고, 마음에 새겼다. 책의 문장을 읽는 게 아니라, 그것을 쓴 사람의 마음을 구현해내는 사람처럼 그녀의 눈은 단어와 단어 사이를 주의 깊게 살폈다. 이 소설을 썼던 열아홉 살, 프랑수아즈 사강이 느꼈을 감정을 그녀 역시 느끼고 있었다. /p309~310
등장인물들의 감정흐름과 시선을 쫒다보면 내가 외면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고,
갈무리 해 둔 문장들이 밟혀서 몇 번이고 읽었으며, 글 속에 등장하는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와즈사강의 슬픔이여안녕 부터... 폭염이 조금 누그러들고, 선선한 가을이 오면 여유롭게 다시 한 번 읽을 책으로 갈무리해본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