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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평점 :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변화를 준비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내려놓을 필요도 있지만, 일단 해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흔히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하고 되도록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한데... 안정적인 일상을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길을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그 용기가 참 부럽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13년간 잡지사 기자 생활, 지금은 <보그>코리아의 피처 에디터인 김나랑도 훌쩍 배낭을 메고 남미로 떠났다.
하루는 조식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남미 청년이 기타를 쳤다. 치다가 노트에 필기를 하고 다시 치기를 반복했다. 작곡을 하는 듯했다. 가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같은 익숙한 곡을 연주했다. 아름다웠다. 아침의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온전한 자신이 존재하는 것. 나도 몰두할 예술이 있길 바랐다. /p062
내게도 발파라이소는 남미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들게 했다. 페루, 볼리비아를 여행한 내게 남미는 아름답지만 살기에는 좀 ‘터프’했다. 하지만 칠레의 항구도시들은 달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답게 수많은 해변과 항구도시를 끼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발파라이소는 방랑하는 여행자들을 머물고 싶게 만드는 ‘늪’같은 곳이다. /p097
밤마다 짬짬이 그녀의 글을 읽으며, 호기심은 있었지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남미, 가 궁금해졌다. 이렇게 글을 읽으며 새로운 여행지를 걸어보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인생이란 이런 걸까’라는 같잖은 생각이 들었다. 분화구를 위해 죽을힘으로 올라왔는데, 한 걸음 내디딜 용기가 없어서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 이 등반은 실패일까, 시간 낭비일까. 하산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자위했다. 공포에 질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전과 다른 내가 되었다. /p123~124
난 누군가에게 내보일 만한 재주가 없다. 다이빙, 수영, 요가, 악기 중 하나라도 잘하면 좋을 텐데, 언젠가는 여행자들에게 내보일 만한 재주를 배워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 계기로 쉽게 친해지고 또 다른 여행의 길이 열릴 테니까. /p150
내가 떠나 있는 동안에도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격차가 두려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그러하니까..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의 길 위에서의 이야기는 왜 이렇게 부러운 건지... 나도 언젠가는..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세상을 걷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가보고 싶고 직접 보고 싶은 곳도 많아지는 듯하다.
우연한 여행 덕에 이 동네를 알게 되었다.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에 발을 들이미는 용기도 내볼 만하다. 인생도 그럴까? 국경을 넘다 죽을까 봐 겁나면서도, 시간 낭비일까 걱정하면서도 한 발 내딛는 것, 그것은 불행보단 보상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여튼 가만히 있는 것보단 100배 나은 듯하다. /p267
가보지 않았다면 모를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여행서에 또는 sns에 올라오는 후기들이 다가 아님을..
걸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나만 알고 싶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또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음을...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기전 많은 시뮬레이션을 하고 준비를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 돌아다니다 보면 현지 사정에 따라 조금씩 바꾸는게 여행일정이 아닐까? 그녀가 걸은 길들의 궤적을 따라 일기를 읽은듯했던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잠시나마 일상에서의 팍팍함을 뭉근해지게 해주었던 고마운 글이었다.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며 평생 몰랐을 감각, 들지 않을 감정을 쓰고 느꼈다. 몸은 축축이 젖어 이전의 몸이 아니었다. 이제 강을 되돌아가야 했다. 영원히 건너 버리는 것이다. 평생을, 때때로 슬플 것 같았다. 덜 슬프려면 강의 존재를 잊어야 할까.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다. 젖었던 몸을 상기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정 힘들어지면 다른 강을 건너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자 슬픔이 조금 나아졌다.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