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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키만소리 지음 / 첫눈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55년생, 엄마의 여행 나이는 고작 다섯 살 정도, 떨어지는 낙엽도 신기할 나이. 혼자보다는 함께 걷는 걸 좋아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을 모르고, 보호자가 사라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나이. 나는 그런 다섯 살 엄마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보일 '효녀' 이미지에만 충실했지 엄마에게 진심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보호자 없이 낯선 땅 위에 혼자 서 있었던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p9~10
어느 날, 배낭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딸에게 나도 그 배낭여행을 가겠노라며 나선 어머니가 있었다. 삼십 대가 훌쩍 넘어서면서부터 여행은 편하게 쉬거나 휴양하기 위한 목적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효도여행을 다니실 나이에 딸의 한 달짜리 배낭여행에 홀연히 나서신 어머니라니!!! 여행길에 나선 두 사람의 이야기는 뒤로하고라도 상황만으로는 많은 부녀지간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호불호를 가릴 한 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던 팍팍한 엄마의 삶이여. 좋아하는 걸 잊어버릴 만큼 빠듯하게 걸어온 세월이여. 좋아하는 걸 잊어버릴 만큼 빠듯하게 걸어온 세월이여. 멋모르는 딸의 무정함에 속마음을 꺼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제야 들렸다. 엄마의 진짜 대답이.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거면) 상관없어.
어디든 (네가 좋아하는 곳이면) 좋아.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다 괜찮아.
처음부터 엄마의 말엔 내가 담겨 있었다. 평생을 엄마 그늘 아래 살면서 엄마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엄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여행이 끝날 즘엔 엄마에게 더 다가섰을까. 이 여행이 왠지 우리 관계를 변하게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28~29
기차를 기다리는 순간과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과정 자체가 다 여행일 것이다. 불편하고, 느리고 번거로운 과정 자체가 다 여행의 일부이기에 나중에는 추억이 되는 것일 거다. 나는 다시 한 번 기차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방콕 여행의 첫 페이지를 향해 걸어 나갔다. /p173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엄마와의 의사소통은 시작부터 불안하기만 하다. 뭐든 네가 좋은 대로 하라 하셨던 엄마는 뒤엔 조금씩 불만을 이야기하셨고, 그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던 딸은 엄마의 마음을 여행하는 동안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된다. 여행 나이 다섯 살, 아이의 다섯 살을 생각하면 부모의 도움 없이는 밖에서 혼자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 한켠엔 아직도 부모님이 우리를 보호해 줘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에선 성인이 된 우리가 부모님을 다섯 살 아이의 눈높이로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맞을 것이다. 환갑이 넘는 나이에도 배낭여행을 나설 용기를 낸 엄마, 그런 엄마와 함게 여행을 하는 딸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서로의 가치관이 여행을 하며 조금씩 바뀌고, 먼 길을 떠나 보니 가까이 선 알지 못했던 모습도 보게 된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지...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했던가, 엄마의 예언은 적중했다. 다음날이 오고, 또 다음날이 와도 나는 아침밥 대신 잠을 택했고, 엄마의 나 홀로 아침 산책은 계속되었다. 다행이 엄마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꽤나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나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죄책감 없이 푹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을 일주일 정도 남겼을 무렵, 우리는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며 여행하는 법을 배웠다.
'진작 엄마를 믿어줄걸. 혼자서도 잘하는데 말이지. 엄마를 짐으로 만든 건 나였어.'/p217
여행을 왜 좋아하는지 누가 물으면 선뜻 대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여행이 좋다고, 내일은 어떤 선택을 할지, 또 그 선택이 내 심장을 얼마나 두근거리게 해줄지, 알 수 없는 여행이 좋다고. 여행의 끝에 다다라서야,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를 알아버렸다. /p241
엄마와 딸의 여행은 어떨까? 조금씩 운전을 하고 있는 요즘, 엄마의 기대가 조금씩 커져가는 걸 느끼고 있다. 하지만 스무 살 이후 각자의 삶으로 바삐 살아왔던 삶을 나이 들어가시는 부모님과 조금 더 가깝게 지내며 추억을 담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진 다는 건, 그 어떤 시간보다 값지지 않을까? 뭐가 그리 바빴을까?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고, 그래서 더 부러웠던 건 아직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딸이라 그랬던 듯하다. 마흔이 넘어서도 부모님 앞에선 언제고 어리고 어린 딸이겠지만 더 늦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 부모님과의 여행시간을 조금씩 만들어봐야겠다. 부모님과 함께 읽어도 좋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목석같던 엄마가 변했다. 여전히 표현에 인색하고 좋다는 말을 서툴게 하지만, 확실히 전과는 달라졌다. 엄마도 세월의 고집을 버리고 달라지고 있는데, 나라고 멈춰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더라도 조금씩 달라지는 중일 거라고 믿자. 엄마가 달라진 것처럼, 나도 내 인생도 달라질 거야. /p248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