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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 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로,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여성을 여성 자체가 아니라 남성이 아닌 성 혹은 결함 있는 남성으로 간주함으로써 야기 되는 여성문제에 주목하면서 올바른 전방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포함한다. 즉, 여성을 억압하려는 객관적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해결을 모색하는 것, 남성 특유의 사회적 경험과 지각 방식을 보편적인 것으로 표준화하려는 태도를 근절시키는 것, 스스로 억압받는다고 느끼는 여성들의 관심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것, 여성적인 것의 특수성이나 정당한 차이를 정립하고자 하는 것 등이 페미니즘의 목적이다. 때문에 페미니즘에서 문제삼는 것은 생물학적인 성(sex)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gender)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사실 그동안 못 한 말이 있는데, 저는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너무 많아 여기에 다 적을 수도 없을 정도인데,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제 일이 단절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사춘기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공부만 했으니까요....<중략>....이제야 조금 내 인생을 돌아보고 계획하고 스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요. 제 삶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저는 출산 계획이 없습니다. 게다가 오빠는 기대에 차서 ‘강현남 주니어’니 ‘해랑 강씨 12대손’이니 그런 말을 하는데, 저는 해랑 강씨도 아니고 대를 이어야 하는 의무감을 지고 싶지도 않아요.....<중략>....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p33~34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청혼은 거절합니다. 저는 더 이상 ‘강현남의 여자’로 살지 않을 거예요. 오빠는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없어서 제가 망설이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아니라는데 왜 자꾸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고 너랑 결혼하기 싫은 겁니다....<중략>....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p37~38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7명의 여성작가들의 단편집을 모아 집필한 <현남 오빠에게>는 얼핏 제목만 보면 청춘연애소설? 쯤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책표지에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 한켠이 콕콕 아파왔고, 나도 무심코 엄마에게, 동생들에게 또는 지인들에게 여자인 나의 성을, 생물학적인 기준과 가부장적이었던 예전의 관습대로 무심코 했던 말들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를 길들여 자신에게 맞추려 했던 남자, 상대방에 대한 의견은 전혀 없이 사회 흐름상 이러해야 하지 않겠냐고 강요하는 사회. 이러한 강요는 비단 남자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 사회에서, 심지어 친구들이나 지인들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곤 했던 이야기였다.
정순은 남편이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 외롭다는 다른 파일럿 부인들의 말을 듣고 의아했다.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녀는 그 외롭다, 라는 말을 가만히 생각했다. 외로움이라는 건 대체 뭘까. 밤새 잠들지 못하고 울어대는 예민한 아이를 키우면서 벽을 보고, 젖을 물리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럴 때면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얼굴을 덮었다. 외로움이 너무나 익숙하고 너무나 당연해서 정확히 무엇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외롭지 않다는 감각을 알아야 외로움이 무엇인지 떼어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넌 내 유일한 친구야." 정순은 유진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딸이 있어 참 다행이야." 언제나 유진이었다. /p57 당신의 평화, 최은영
여성주의가 남녀의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사랑을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은 틀렸다. 나는 여성주의야말로 사랑을 향한 투쟁이며, 사랑을 죽이는 가부장제의 해독제라고 생각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굴종을 요구하고 오만 가지 방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방식으로는 어떤 인간도 해방될 수 없다. 다른 인간에게 굴종을 요구하는 인간마저도 말이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받아 마땅한 고통은 없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 당할 이유 같은 건 없다. /p74 당신의 평화, 최은영, 작가노트
'엄마는 역시 딸이 있어야 해.' , '결혼은 아무것도 모를 때, 어릴 때 하는 게 좋다!', '엄마는 아빠 있잖아...!' 각자의 생각이 있고 인생이 있는 건데, 자신의 문제를 상담해 오는 이들에게, 또는 곁에서 지켜보다 던지는 한마디 말들이 이런 것들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이 기회의 평등인지, 결과의 평등인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야기는 무척이나 잘 읽히고, 나의 모습이며 또한 당신의 모습이기에 여자든 남자든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꽤 많을 것 같다.
이 소설집의 인세 일부는 여성인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직 페미니즘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뜻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글을 읽으며 가족이나 남자,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신 스스로의 삶을 믿기로 선택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진 글이었다.
"당신 아줌마야, 아줌마가 아줌마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지. 포기하라니까. 내가 언제 당신한테 뚱뚱하다고 뭐라 했어? 아니 남편이 괜찮다는데 뭐가 걱정이야. 뭘 입어도 마찬가지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니까 그래."
불쑥불쑥 떠오르는 남편의 말 때문에 부아가 치밀었다. 남편에 대한 적의가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니? 나는 놀란 듯이 흡, 입을 다물었다. 요즘 자꾸 혼잣말을 했다. 소리 나게 혼잣말을 하면 늙는 거라는데. 아랫배를 내려다봤다. 불룩 튀어나온 배 때문에 발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라니. 내 몸을 당신이 왜? 관리 안 하는 게으른 여자이거나 팔자 편한 여자 취급은 차라리 나았다. 어디 아픈 사람은 아닌지 걱정해주는 건 끔찍했다. /p88~89 경년, 김이설
"그럼요, 우리 윤서는 그저 순진해빠져서 공부밖에 몰라요."
윤서는 되바라진 여자애구나. 그럼 윤서 엄마는 어떤 여자아이였을까. 나는 또 어떤 여자아이로 사람들에게 평가받았을까. 그 평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왔던 걸까. 그나저나 그 평가는 누구의 시선에 의해 결정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p113~114 경년, 김이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외로울 것이라고 왜 그리 섣불리 확정지었을까. 다수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삶도 있다는 걸 왜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까. 결국 나나 진아나 똑같았다. 각자가 알아서 선택한 삶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고 있을 뿐이었다. /p112 경년, 김이설, 작가노트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