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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평점 :

덜그럭덜그럭 흔들리는 마음이 숭숭 빈 공간을 만들었다. 그 빈틈으로 그림책 한 권이 왔다.
서점의 어린이 코너에서 표지 그림이 예뻐서 별생각 없이 펼쳐본 책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나의 인생 책이 되었다. 책장을 덮을 때는 목울대 근처에서 자꾸만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만져주었다고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다. 애들 보는 책인 줄만 알았던, 나랑은 아무 상관없다고 여겼던 그림책이 마음속 빈 공간으로 들어와 불안을, 조바심을, 자기 증명에 대한 숨 막히는 갈증을 어루만져 주었다. 낯선 환경에서 신경질적으로 작동하던, 앞날을 계산하는 머리도 순식간에 시동이 꺼졌다. 오직 감탄하는 심장만 두근, 두근, 두근, 뛰었다. /프롤로그
누구나 삶에 흔들리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누구와도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없고 아무렇지 않은 듯 보여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위태위태한 순간들이 한 번쯤은 있다. 그런 순간 자신만의 탈출구가 있는가? 개인적으로도 이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어떤 것도, 어떤 시간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았던 건 책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에세이를 가장 많이 읽었던 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다독임을 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책 읽기 영향으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에세이이기도 하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SNS 속 완벽한 그녀를 이제 떠나보내세요. 그녀가 SNS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편집된 몇몇 순간일 뿐 실제로 부러워할 만한 인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설사 실제로도 완벽하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녀를 훔쳐보며 갖게 된 높은 이상이 스스로에 대해 실망감으로 바뀌어 주눅 들게 만드는데 계속 볼 이유가 있을까요? 완벽해지고 싶다는 기대는 우리의 발을 묶어버립니다. 그토록 바라는 당당함에 가장 방해가 되고 있는 건 바로 그 기대, 자신을 향해 들이민 높은 잣대가 아닐까요. /p29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조카들과 함께 그림책을 종종 읽는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지만 때론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뭔가가 있고 그림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은 어른들의 심리나 일상과 관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아이들의 정서나 어른의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그림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게 된다. 오히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그림책이야말로 마음으로부터의 위안이 필요할 때 가까이하면 좋은 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죽음, “네가 거기 있는 이유는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야.”
‘내가 왜 존재하는지, 삶이 왜 가치 있는지 알고자 할 때 죽음에게 질문하라’, 그림책 <커다란 질문>의 메시지를 쉽게 넘겨듣기가 어렵습니다. 내일 죽는다면 무엇이 후회될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오늘 뭘 해야 할까 종종 제 자신에게 질문하거든요, 죽을 각오로 덤비면 뭔들 못 하냐는 선동이 아닙니다. 죽음을 사유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하고 힘든데 꼭 죽음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하느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삶을 사랑하는 법을 깨우쳤습니다. 제가 진심을 담아 해줄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제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황량했던 시기에, 모든 것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까만 옥상 위에서 어렵게 깨우친 이 삶의 자세뿐입니다. /p70~71 커다란 질문
우리는 자주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에 걸려 비틀거립니다. <콩알만 한 걱정이 생겼어요>에서 작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기 전에 한 행동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머릿속에 있던 콩알 같은 근심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야” 라고 결론 내리는 장면이죠. 이때 작가 안느 에르보스는 이런 문장을 씁니다.
그녀는 자기의 생각에 걸려 넘어졌다....(중략).....우리는 많은 오해를 하며 살아갑니다. 꼭 타인과 세사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작은 걱정과 근심에서 시작해 생각을 펼치다가 돌연 자신을 향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려버리기도 합니다. /p86. 콩알만 한 걱정이 생겼어요
저자가 타지 생활을 시작하며 언어도 생활도 익숙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서점에서 읽게 된 그림책 한 권으로부터의 위안, 묵직하게 밀려오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얼핏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 친근하게 다가왔을까? 저자가 그림책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추린 다양한 사연들을 읽어보면 어느 하나 같은 사연이 없고 그에 읽기를 추천하는 책들도 다르다.
책장을 펼치면 침대에서 막 잠이 깬 소녀가 있고, 이런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한 장을 넘기면 더 심각한 문장이 기다립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어둠이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절망감을 상징하는 흉측한 괴물도 등장합니다. 하나같이 쓸쓸하고 기괴하고 우울한 그림인데,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씩 마음이 후련해집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꼭꼭 숨겨두었던 못난 마음을 꺼내서 눈앞에 들이밀고 “자, 봐”합니다. 처음에는 불편해서 피하고 싶다가도 어느새 와락 고백하고 싶어집니다. “맞아요, 내 마음이 지금 이래요”라고요. /p128~129 빨간나무
<무릎딱지>의 아이가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건 잊히는 것, 또 잊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실은 쉽게 잊을 수 있지만 어떤 상실은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후자의 상실은 상처일 테지만 상처를 통해서만 우리는 마침내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p231 무릎딱지
엉키고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처방해주는 책 약국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는 어른들을 위한 약상자 같은 책으로 갈무리해보려 한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의 응원,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그림책은 '어린이 책'이다?! 맞습니다.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의 어린이를 위한 책입니다. /이수지, 그림책 작가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