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힘들게 찾은 일기를 쭉 읽어보았다. 지금껏 살아온 내가 모두 그 안에 있었다. 훈버터(남편)는 기록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다.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게 되었기에 주로 엄마가 나오는 일기를 찾았는데, 20대부터의 일기에서는 엄마가 몇 번 나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일기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엄마가 등장하는 반면 20대의 나에게는 친구, 미래, 연인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하고 엄마와 가족 이야기는 아주 적었다. 자라면서 겪게 되는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엄마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도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하니 그때 느끼게 될 감정이 벌써부터 걱정되기도 한다. /서문
책의 무게만큼이나 제목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는 얇은 페이지를 들춰내면 그냥 숲길이 나오고 엄마와 아이는 따로 떨어져 보인다. 평생을 살아가며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얼마나 될까? 저자의 글처럼 이십 대 이후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일상을 어린 시절만큼 공유했던 적이 있었던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엄마이기 이전에 엄마의 삶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엄마가 암에 걸리고 항암치료가 끝나고 그러고도 가족이 모여 살면서 되짚어보게 된다. 결혼에 대해 큰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에 대한 생각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엄마의 항암 치료가 끝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5년 동안 지속되었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언제나 계속될 것 같았던 그 일상 속에서 마주했던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뭘까, 엄마가 즐거워하는 일이 뭐였더라. 우리와 함께인 엄마가 아니라 엄마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똑같이 방 안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도 아빠는 걱정되지 않는데 엄마는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빠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즐거움을 잘 찾을 것 같다. 하지만 늘 가족 아니면 다른 사람이 우선인 엄마가 자신만의 즐거움을 알고 있을까? 아이를 낳고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즐거움은 잊어버리게 되는 걸까? 그동안 우리가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엄마가 해준 것처럼 나도 엄마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우리 없이도 즐거운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p27
엄마의 옛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철없는 딸로서 존재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멀리서 한 번쯤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어린 엄마가 그리는 꿈과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음, 그렇게 되면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p43
저자의 일기 쓰는 습관은 저자의 엄마가 키워주신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글 중간중간 어린 시절의 일기와 엄마의 코멘트는 어린 시절 나의 일기장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시절 일기를 지금 찾아보면 부모님 이야기가 참 많았을 것 같은데... 결혼한 동생들도 있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그 딸이 결혼을 하며 미혼인 딸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결혼, 임신,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먼저 경험한 인생의 선배인 엄마와 그런 삶을 시작하는 딸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힘든 일은 대신해주고 싶고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손자 손녀는 더 이뻐 보인다고 하시니....
엄마가 아플 때는 병이 낫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았다. 엄마의 투병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전에 없던 큰일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완치 판정을 받고 건강을 되찾게 되자 그것조차 일상의 기억으로 남았다. 커다란 상처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으로 큰 상처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우리 가족에게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함께 있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엄마가 살아있기에 함께할 수 있다. 지금 엄마와 함께하는 소소한 순간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낮잠을 자고 여행을 다니는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기적같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가족에게 남은 다른 문제들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p60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집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시간보다 서로 떨어진 채 보낼 시간이 더 많이 남아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이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을까. 한집에서 살면서 부딪치고, 등 돌리고, 미워하고 싶어도 마음껏 미워 할 수 없었던 그런 시간들도 사실은 소중한 순간이라고 여겼어야 했던 걸까. /p77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엄마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귀찮을 때가 많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내 모습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엄마는 언제나 우리를 보고 있었고 보고 싶어 했다. /p128
저자 자신의 결혼 과정,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엄마가 건강하게 계실 때 할 수 있었던 저자의 시간은 어쩌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자매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선물이 아니었을까? 글을 읽으며 저자의 나이와 돌아가신 엄마의 나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막냇동생보다도 어리고 내 엄마보다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신 저자의 엄마는 자식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그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아 먹먹함에 책장을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도 흘러가 버린다.
저자의 엄마가 두 번째 암이 발병했을 때는 그 전이 속도가 너무 빨라서 어떤 선택을 해야 엄마가 조금이나마 더 편하실지 생각하는 과정도 남은 가족들에겐 아픔이었을 것 같다. 그들 곁에 하루라도 더 머물고, 털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반면, 엄마는 점점 깊은 잠으로 빠져들고 있었으니까...

엄마가 떠난후 찾아온 그리움은 이미 떠난 엄마를 더이상 볼수도 만질수도 없어서 더 애틋하고 애잔했다. 수시로 눈물이나고 마음이 아려서 더 보고 싶었던 엄마, 시간이 흐르고 동생들과 엄마의 묘소에 앉아 일상을 이야기하며 편하게 엄마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건 살면서 이따금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엄마와의 시간을 되새기며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신기하게도 임신했을 때는 임신부만 보이고 솔이가 아기일 때는 아기들만 보이더니 이제는 길거리에서 엄마와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고등학생 딸과 엄마. 카페에서 손주를 안고 있는 엄마를 찍어주는 딸, 쇼핑몰에서 엄마와 팔짱 끼고 걸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기 바쁜 딸.... 부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갔다.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를 보고 계실까 아니면 우리에 대해선 전부 잊고 다음 생을 준비하고 계실까. 아니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우리를 잊었더라도 상관없으니 엄마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든 슬픔은 우리에게 남겨두고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p269
장례식을 함께해준 내 친구들은 엄마아게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일들이 많았지만, 왜 우리 엄마의 죽음으로 모두가 이런 깨달음을 얻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왠지 심술이 나기도 했었다. 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우리 엄마의 죽음이 되어야 하나. 지금 저렇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 나와 우리 엄마였으면, 나도 우리 엄마도 다른 사람의 일로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이나 일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하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욕심이었다. 다들 처음이라 우리에게 더더욱 마음을 써주었고 힘든 순간순간을 끝까지 함께해주었다. /p285~286
내 엄마가 아플 수 있다는 생각을 아직 해보지 못했다. 14년쯤전, 4년 전 아빠가 탈장수술을 한 번씩 하셨는데, 가벼운 수술임에도 온 가족이 들썩였었고 16년 전 엄마의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로 큰 수술을 했을 때는 집안이 휘청거리고 온 가족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병원 생활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해마다 건강검진으로 부모님의 건강을 챙기지만 최근 들어 다시 함께 살게 된 부모님이 어린 시절처럼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누구든 그러하지 않을까? 계실 때 조금 더 잘 할걸... 매번 매 순간하는 후회지만 또 잘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내 삶의 간극을 잘 조율하는 것도 살아가며 잘 조율해나가야할 일이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곁에 있어주셨으면 좋겠다.
읽기 전부터도 쉽게 읽을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수시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때문에 책 몇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읽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삶에 대해 오늘 나의 행복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계실때 잘 하라는 말... 정말 많이 듣는 말이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모쪼록 저자의 어머님도 (저자의 말처럼 사후 세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래본다.


숙모는 "적어도 3년은 지나야 괜찮아지더라"하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남겨진다는 것은 내 상상보다 훨씬 슬픈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슬픔에 적응하고 익숙해져서 언젠가 괜찮아지는 것도 싫다. 그만큼 엄마가 희미해져버릴 것 같아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생일이 지나도 나는 잘 살고 있겠니만 여전히 많이 슬펐으면 좋겠다.
『여우 나무』이야기는 "내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답니다"로 끝난다. 예전에는 당연히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음속에. 영원히. 같은 말들. 돗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 또 올게. 잘 있어. 답을 들을 수 없는 인사를 남기고 뒤돌아섰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p328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