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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찌질한 나는 행복하다 - 이 땅의 늙은 아이들을 위한 제2의 인생상륙작전!
최정원 지음, 정영철(정비오) 그림 / 베프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나이가 뭐라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체면을 생각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마흔도 훌쩍 넘긴 나 역시, 돈도, 애인도 아이도 없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점점 꺼려지는 나이. 나만 그런가? 싶어 점점 움츠러든다.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아둥바둥하고 노후대책 따윈 있지도 않다. 지인들을 만나면 재테크,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어느 쪽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뭐라 할 이야기도 없다. 그냥 매일매일이 크게 부족하지 않고 살아갈만하니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할 뿐이다.
그래, 내 삶 중에 기념할 날이 하나 생겼다. '늙은 어린이날'. 내일도 난 결혼식에 가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지인들처럼 바쁘다는 핑계,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말로 피하지 않을 것이다. 백수가 무슨 바쁜 일이 그리 만고 중요한 약속이 있겠는가. 결국엔 돈이 없다는 말을 자존심 때문에 돌려 말하는 핑계일 뿐이지. 이제 확실한 핑곗거리가 하나 생겼다. 난 어린이날 선물을 받기 위해 결혼을 안 하는 영원한 '늙은 아이' 이지 '프로 불참러'가 아니라고. /p34
결혼 안 하거나 못한 사람의 마음. 아무리 잘 나가는 골드 미스들도, 일명 잘 나가는 억대 연봉맨도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고상한 척해도 1인당 한두 병 마시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진심이 담긴 주정이랄까?
"편하지만 외롭다."
강의 마지막에 말하려고 했다가 멈춘 한 문장.
외로움과의 싸움은 끝이 없지만 이제 면역력이 생길 때도 됐지요?
단지 바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게 혼자 살고 싶을 뿐입니다. /p57
칠순의 노모와 살고 있는 저자의 삶은, 사 오십대의 싱글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것 같다. 글쓰는 작가의 삶이 규칙적이지 않아 노모와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어머니 강단있고 멋있으시다. 본인이 힘들지언정 자식의 기를 살리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옛날 어머니상이랄까? 구수한 어머니의 사투리, 아들의 술상을 차려내고, 어린이날 아들에게 돌침대를 선물하는 어머니라니. 최정원작가가 어머니와의 일상을 이야기한 책도 출간되어 있어 찾아 읽어볼 예정이다. <말순 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내가 마흔이 넘어서도 흔들흔들, 우왕좌왕하는 것도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발악일지도 모른다. 나름 오랜기간 대쪽같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죽을 것 같아 이 생활을 선택해 놓고 다시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아침에 동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고, 한낮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여유와 머리 쓰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었던 적이 없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난 혼자 있는 법을 너무 몰랐다.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 집단으로부터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래, 저절로 람이 살아지는 시기가 있고, 지금처럼 또 다른 방법으로 살아내야 하는 시기가 있는 것. 어르신의 말씀처럼 저 소나무는 한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적응해가며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나는 움직일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지 않은가. 사람들의 시선이 무슨 대수인가. 현재 내가 이생을 살아내는 방식인데 말이다. /p75~76
삶이 나에게 줄 수 없는 것을 간절히 원할 때 고통이 시작된다.
때론 무엇이든 없는 게 나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래. 현재의 내 삶을 긍정하고 내 삶의 주인공이 될 때 빼앗긴 내 마음에 봄이 오지 않을까.
가끔 기다림은 즐거운 꿈을 꾸게도 하니까. /p167
저자의 일상엔 술이 참 많이도 등장한다. 글로 읽는 저자의 술자리, 술을 마시며 하는 생각, 일상들 지인들과의 이야기들을 읽을때면 맥주라도 한 캔하며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카들은 내 아이가 아니니 너무 공들이지 말고, 나이들어갈 수록 체면을 생각해 참석해야 할것 같은 자리도 과감하게 자를줄 알아야한다고 한다. 물론 자신만의 기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어야겠지... 솔직히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만 유지할 수 있다면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부담이 없는 지금 삶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장 내일의 삶도 알 수 없는데 긴 생을 너무 걱정만하며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노총각, 노처녀, 결혼 안한, 못한 "늙은 아이", "철없는 늙은 아이"인 당신은 잘 살아가고 있나요?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