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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평점 :

한국인들에게는 '뜨거운 에너지'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뜨거워야 할 때를 모른다면 그 에너지가 무슨 소용인가. 과거에는 이상한 뜨거움을 지닌 이들 때문에 고통받았던 A는 지금은 이상한 뜨거움으로 무장하여 남을 괴롭히며 살아간다. 고작 회사에서 인정받고자 타인에게 수치심을 심어주는 걸 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소탐대실' 한국사회의 투박한 민낯이다. /p009 prologue
사회학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살아가는데 당장 큰 지장이 없으니까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책을 받아들고 읽기도 전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살아가며 우리가 받는 희로애락은 모두 사람으로부터 오는 건데, '싫다'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적시의 상황에 제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다들 이렇게 하니까, 하고 넘기거나 큰 문제를 만들기 싫어 두루뭉술하게 지나가게 된다.
'연민'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는데 틀린 말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가려서 연민한다. /p032
"전신이 마비됐던 환자가 어떤 신비한 자극에 의해 감각이 되돌아오는 일이 있다면, 필시 이렇게 고통스럽게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렇게 환희롭게."
나는 이 표현이 너무 좋다. 고정관념을 깨면서 흥분할 수 있는 건 만물의 영장이니 가능한 특권 아니겠는가. 고통이지만, 기쁠 수밖에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다. 화목한 나의 가정이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떠올리기 바란다. 정말로 달라지려면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할지어다. 오랜 기간에 걸쳐 퇴적물이 쌓여 지층이 형성되듯이 '다른' 사회구조 역시 지난한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 내야지만 도래할 수 잇다. 갈 길이 이리 먼데 매번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하니 답답하다. /p087~088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격은 일화들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제대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회학이라는 분야가 쉽게 다가와서 어려움 없이 잘 읽힌다. 층간 소음, 폭력, 장애아 운동장, 부지런을 권하는 사회, '다움'에 집착하는 사회, 체면, 소비 등등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성장해왔고 중년이 되었지만 딱히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튀지 않게 무난하게...
'이기적인' 공동체에서 '이타적' 개인이 존재할 리 없다. 결국 각자도생만이 해법이기에 '나'는 우리로 뭉치지 못하고 원자화된다. 연결되지 못한 원자들은 '약하기에' 어떻게든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최소화하는 걸 상책으로 여긴다. 그것이 의무라도 말이다. 공공선을 파괴하는 행동을 감히 절약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우리의 불안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거다. /p108
행복에 성실이 필수라면 한국에 불행한 사람은 존재해선 안 된다. 그만큼 모두가 바쁘게 살지만 실제로는 '지나치게 바쁘기에' 불행하다. 하지만 주변의 조언들은 우리들을 기만한다. 성공했다는 사람은 죄다 잠을 아꼈고, 휴가도 몰랐던 독종이었으니 너도 그렇게 하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한다고 했는데'라면서 현실과 타협하지말고 '될 때까지 하라'고 주술을 건다. 여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성공한 자는 '시간을 아낀 사람이기에' 모든 생각과 행동이 정당화되고 그 문턱에 이르지 못한 경우는 '시간을 낭비했으니' 차별과 혐오를 받아도 별수 없다. 그 결과, 모두가 시간에 지배당해 살면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는 현실 앞에서 '시간을 악착같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p144~145
출퇴근 시간이 왕복 4시간이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6개월여를 채웠을 즈음 재정상태를 이유로 나에게 퇴사를 권고했고 자존심이 상했던 난, 더 이야기를 해볼 생각도 없이 그날로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자유시간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열심히 일했던 게 과연 나를 위해서였던 걸까?라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보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좋은 인간관계란 관행을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기득권에 그만큼 잘 적응한다는 말일뿐이다. 인맥조차 없는 순수한 사람들에게 이 문화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p182
누가 무엇에 어떻게 노출되었느냐에 따라 감정은 학습된다. 슬픔에 공감할 적절한 나이가 있다는 고정관념은 공부만이 중요한 세상에서 그런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지만 이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드러내고 감춰야 하는지는 철저하게 그 사회가 무슨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아이가 제대로 슬퍼할 줄 아는 시민이 되길 바란다면 '어른이 되면 알겠지'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p243~244
법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옳은 방향으로 실천하는 건 시민의 의무다. '그래도 된다'의 유혹이 넘실거리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 노력이다. 법문을 외우자는 게 아니다. 자유와 저의가 왜 법의 큰 틀인지만 이해하자. 법은 내 자유를 허락하고 내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규제를 가한다. 제한을 통해 허용을 보장받는다. 故노무현 대통력은 "민주주의는 탐욕으로 탐욕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라 했다. 이 시스템의 기초는 헌법이다. 23조 1항을 보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자본주의의 대표적 특징이다. 그런데 단서가 한 줄 있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자본주의랍시고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2항은 1항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 화폐가 등장했을 때부터 떠돌던 말이었던 '사람 나고 돈 났음'을 잊지 말자는 거다. 내 가게니까 '노키즈존'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도 않고 내 집 근처라서 '장애인 학교'에 반대할 권리도 없다. 개인이 우주 최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모두가 행복의 최소 기준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을 때만 정당하다. 좋은 법은 이를 잊지 않게 우리를 감시한다. /p264~265
제대로 부끄러워할 줄 몰라 감정의 온도 조절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의 촌극을 모은 이 책은 쉽게 읽어지지만 사회에 대해 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마주하며 바로 볼 수 있어야 개선의 여지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지금 당장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읽었다고 내가 티가 나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괜찮아지기 위해, 좋은 사회를 위해 '나'부터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작은 실천. 많은 분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해법은 제대로, 제때 성찰하며 사는 거다. 나중이 아니라 당장 해야 한다. '어떻게'가 고민일 때, 이 책이 기억났으면 한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하지는 않을 거다. 악기를 배워도 지겹도록 기초 과정을 반복하고, 수학 문제에도 단계가 있는데, 하물며 얽혀 있는 나와 사회의 실타래가 책 한 권 읽고 풀리겠는가. 고정관념은 오랜 시간의 결과물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도 그만큼의 시간 동안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그러면 어제보다 괜찮은 오늘이,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이 우리를 기다린다. 너와 나, 우리가 객관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은 이뿐이다. /p279 epilogue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