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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추억 - 한가람 대본집
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2월
평점 :

한파가 엄청났던 한 겨울에 방영했던 <한여름의 추억>은 본방송을 보지 못했던 터라, 책을 읽기 전에야 찾아서 다시 보기를 했다. 아직 찬바람이 남은 겨울의 끝자락. 화면 속엔 한 여름의 더위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 생생한 더위와 싱그러움 속에, 지난하다 생각했던 사랑의 절절함이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빠져들고 있었다. 드라마는 '내가 죽으면 슬프다고 울어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작은 질문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12년 차 라디오 작가인 한여름은 37살의 미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었는데 아무도 울지 않는다면? 어쩌면 살아가며 내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의 의미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난 지금의 내가 너무 거지 같아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그 언제가의 일들이 전부... 꿈같아. /p132
저는요, 외로워요.
외로워서 누가 내 이름 한 번만 불러줘도 울컥하고 밥 먹었냐는 그 흔한 안부 인사에도 따뜻해져요.
스치기만 해도 움찔하고, 마주 보기만 해도 뜨끔하고,
그러다가 떠나버리면, 말도 못하게 시려요. 그런 저한테, 그리고 당신이 연락을 주고받은 수많은 여자들한테, 이런 몹쓸 짓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이 한 번 실패한 뒤 그 무엇도 가지려 들지 않는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왜... 실패를 나아가는 성장판으론 삼지 않는 거죠? /p119~120
대사 한 줄에 순간 뭉클하기도 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한여름의 이야기는 때로는 집요하고, 욱하고, 못되기도 하지만 지난 인연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진심과 가식을 구분할 줄도 알게 되며 점점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37살의 현재를 살아가는 한여름이 썸을 타던 PD 제훈과 3주 후 만나게 될 6년 전 연인이었던 해준과 만나게 될 일을 눈앞에 두고 미국 언니네 집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한 여름의 생은 그렇게 마감되고, 한여름의 과거 남자들이 여름과의 사랑에 대해 회상되며 진행되는 신들이 인상적이었다. 10대 한여름이 첫사랑이었던 최현진은 그녀와의 사랑을 통해 첫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다. 20대의 연인이었던 지운은 불같은 여자가 싫다. 30대의 연인이었던 해준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현재의 제훈은 꼭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냐고 그냥 만나자고만 한다. 한여름은 그랬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 시작인지 아닌지 감을 잡았고, 그 예감은 예외 없이 적중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감이 없어지고 조심스럽게 된다. 사랑 후에 좋은 기억만 남을까?
외국에서는 장례식이 유쾌하대. 그 사람 좋은 곳으로 가라고 보내주는 의미가 있어서 다들 웃고 즐긴대.
내 장례식도 그랬으면 좋겠어. (활짝 웃으며, 손 팔랑팔랑 흔들며) 안녕! 잘 가세요!! 가서 행복하세요!! 한여름 양!!
엄청 빛났었던 것 같은데 (약간 시무룩) 단숨에 초라해졌어.
꼭 누가 불 끄고 가버린 것 같애.
분명....사방이 빛이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별거 아닌 나를, 한때라도 빛나게 해준 당신. 감사합니다. /p104~106 여름
최강희가 연기했던 한여름 역할은 그녀가 아니면 누구도 소화해 낼 수 없었던 역할이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이건 뭐지? 싶었는데 극의 구성도 전개도, 지난 시절들의 사랑을 잠시 떠올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행복했다. 한여름이 부딪히며 살아왔던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와 현재의 사랑들. 그 사람들에게 그녀는 모두 다른 색깔로 남았던 사람이었다. 그녀도 그 사랑들 헤어지고 나서도 나쁜 기억보단 '잠시라도 좋았던 사람'으로 남고 싶은 건 큰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너는, 나와 함께했던 시간 내내 어서 내가 지나가주길 성큼 다음 계절이 다가와 주길 바라고 바랐겠지만. 이것 봐 나는 그리 길지 않아. 이렇게 찰나인 걸. /intro
여자도 남자랑 똑같아요. 단순해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내숭 떨게 돼 있어요. 왜? 잘 보이고 싶으니깐. 예뻐 보이고 싶으니깐. 여우들의 본성이라니. 그건, 내숭이 역겹다고 생각하는 최현진씨의 오해 같은데요? /p156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구겨서 버린 편지 속에
두 갈래로 찢긴 사진 속에
평생 열지 않을 상자 속에
서랍의 끝머리와 삭제된 메일함 속에
고함 한 번 지르고 온 바닷속에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
그러니
그곳에서 내가 가끔 울고 있더라도
나를 불쌍하다 생각하진 말아요.
난,
빛나고 아팠어.
모두 네 덕분이야.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