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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p11
그의 전작들인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 와 달리 첫 장의 시작이 무겁게 느껴져서 읽기를 미뤄왔던 책이었다. 감기가 하루 만에 심해져 목도, 코도 지독하게 아프고 재채기가 끊임없이 나왔지만 책장 넘기기를 멈출 수 없었던 건 프레드릭 배크만 특유의 스토리를 이끄는 힘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너무너무 아팠다. 그럼에도 늦은 새벽까지 책읽기를 멈출 수 없었...) '베어타운'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아이스하키가 주인공인 이야기. 아이스하키로 전성기도 있었던 베어타운은 이제 아이들의 경기에 마을이 다시 일어서느냐의 기준을 두고 맹목적으로 아이들을 응원하고 아이들의 세계는 마을과 아이스링크내의 세계를 이중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구단과 선수, 코치와 구단, 마을 사람들과 선수의 가족들 등 다양한 군상의 모습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 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ㄷ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p88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 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p153
스포츠에 맹목적일 정도로 열광적인 마을 사람들, 그리고 아이스하키만 알고 자라온 아이들은 전국 청소년하키선수권대회 4강에 진출하게 되면서 온 마을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뭉친 그들의 구심점인 캐빈이 '강간'이라는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덮으려 하면서 이를 은폐하려는 마을 사람들과 사건 당사자인 마야가족의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왜!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덮어지고 여자아이의 행실로 몰아 은폐하려 하는가의 과정을 너무나 현실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읽는 과정에 마음이 더없이 무거웠다.
사장실에 모인 남자들이 어떤 식으로 바꾸려고 애를 쓰는지 몰라도 이건 여전히 운동경기일 뿐이다. 한 개의 퍽, 두 개의 골대, 열정으로 가득한 심장, 하키를 종교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하키는 믿음과 같다. 종교는 나와 타인들간의 문제고 해석과 이론과 견해로 가득하다. 하지만 믿음은....나와 신의 문제다. /p178
사람들은 가끔 슬픔은 정신적인 것이고 갈망은 육체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상처고 다른 하나는 절단된 팔이나 다리, 꺾인 줄기에 달린 시든 꽃잎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바짝 붙어서 성장하다 보면 결국에는 한 뿌리를 공유하게 된다. 우리는 상실을 논하고 치유하고 시간을 두고 기다릴 수는 있지만 생물학적인 특성상 특정한 원칙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운데가 부러진 식물은 치유가 되지 않는다. 그냥 죽는다. /p193
프레드릭 배크만의 글은 삶을 재단해서 정의하지 않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며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며 방향을 조금씩 제시하는 느낌이랄까? 아이스하키라는 스포츠에 대한 대략적인 느낌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스링크, 과격함, 남자들의 스포츠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꽤나 속도감 있는 전개 사이사이 각 가정마다의 가족사와 부모와 자식들 간의 미묘한 감정들까지 세세하게 담고 있기도 하다.
인사이더가 되기 쉬운 만큼 아웃사이더가 되기도 쉽다. 선을 그어서 남들을 만들기 쉬운 만큼 우리도 만들기 쉽다. /p313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 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p374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신기하다. 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시작하게 된 기점이 있는데, 이 사랑만큼은 아니다. 항상 사랑했고 심지어 아이가 존재하기 전부터 그랬다. 아무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도 엄마와 아빠들은 감정의 파도가 그들을 치고 지나가서 완전히 나가떨어지는 충격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 사랑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불가사의하다. 평생 암실에서 지낸 사람에게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 모래나 혀끝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그 사랑은 영혼을 비행하게 만든다. /p487
군중심리. 한가지 목표를 향한 이들의 믿음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상황도 아닐 거라고 애써 외면하게 만든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마야의 주장은는 외면하면서 사건의 당사자인 케빈과 유일한 현장 목격자인 아맛의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진실인 것일까에 대해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과연 현실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을 때 우린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총소리로 시작된 이야기는 중간 중간 총소리를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배치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아이스하키가 빠진 베어타운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십 년 후 모습을 살짝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결말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기대감 없이 읽기 시작한 글은 즐거웠고, 안타까웠으며, 때론 함께 울기도 했다. <베어타운>의 후속을 예측하게 하는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베어타운의 정경을 조용히 상상하며 책 읽기를 마무리해본다.
아이들은 자기들 발밑에 그려진 곰을 내려다본다. 어렸을 때는 곰이 무서웠고 지금도 가끔은 그렇다.
아맛, 사카리아스, 보보, 그리고 벤야민. 두 명은 이제 막 열 여섯 살이 되었고 두 명은 조만간 열여덟살이 될 것이다.
십 년 뒤에 그중 두 명은 프로 선수로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한 명은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한 명은 죽었을 것이다. /p563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