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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걷는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역사산책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8년 6월
평점 :

경복궁의 서쪽 마을이란 의미로 '서촌'이라 불리게 된 지역. 사실 경복궁 인근으로 한창 출퇴근을 했던 6개월 정도가 있었다. 예스러운 돌담길을 따라 걸어 출퇴근하던 그 길이 참으로 좋았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빌딩 숲이 가득한 도시인데 길을 건너 조금만 걸어들어가면 옛날 풍경이 조금 남아있는 돌담길과 마을을 만날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던 그 시절, 일이 고되서 몸은 힘들었지만 조용한 동네를 걸으며 예전에도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이 마을의 옛이야기가 가끔은 궁금했는데 <서촌을 걷는다> 라는 책에서 그 이야기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서울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경복궁 서쪽마을(서촌)은, '북촌'이라 불리는 경복궁 동쪽 마을에 이어 도심 관광지로 개발되며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세상은 '본 만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또한 특정 대상을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애정이 싹트게 마련이다. 나는 서촌 구석구석을 걸으며 지난날의 흔적을 살피고 그것들을 좀 더 깊이 느끼고 싶었다. /머릿말
느리게 걸어보자 서촌(광화문 일대) /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서촌 (사직동, 체부동, 통의동 일대) /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누하동, 통인동 일대) / 도심의 살아있는 박물관 서촌 (옥인동 일대) / 우리가 몰랐던 서촌 (효자동, 궁정동, 신교동, 청운동 일대)
동네 이름만으로도 아는 동네가 꽤 된다. 그런데 이 지역에 관련된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 길을 걸으며 안내를 받는 것처럼 청계천 물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길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골목으로, 사람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며 이야기를 하나둘 읽어가다 보면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오마주 되기도 한다.
TV사극을 보노라면 '종묘사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바로 그 종묘사직의 한 축인 사직단이 종교교회 네거리의 서쪽 길 끝에 있다. '종묘'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곳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한편 '사직단'은 국가에서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결국 종묘와 사직은 나라와 왕실의 상징인 셈이다. /p61
청계천, 광화문, 교보단지, 세종문화회관등을 돌아 금천교, 보안여관, 김가진 가문, 이상과 구본웅의 이야기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역과 역사속 인물의 이야기들은 일제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사와 오늘날에 이르른 우리의 현실을 재조명 하기도 했다. 단순히 더 이상 개발 될 곳이 없어 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사적으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서촌은 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고 우리 선조들의 삶이 녹아나는 곳이다.
김좌진의 권고로 무장투쟁을 위해 만주로 가려 했던 김가진은 1922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건 물론이고, 육신마저 이국땅에 의탁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해방이 되자 김의한 내외는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하지만 또 다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의한은 북을 선택했다. 전쟁도 분단도 잠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70여 년이 지나고 말았다.
동농 김가진은 평양 재북인사묘에, 며느리 정정화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상하이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산가족인 셈이다. /p93
1926년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이때 구본웅은 자신이 선물로 받은 사생상(화구를 담는 상자)을 이상에게 주었다. 가난했던 이상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필명에 '상자'를 의미하는 '상'(箱)을 넣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앞글자는 흔한 성씨를 사용하되, 사생상이 나무로 만들어졌으니 '나무 목'(木)이 들어간 성씨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무 목'이 들어간 성씨 중 다양성과 함축성을 지닌 이씨와 상을 합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이 탄생되었다. /p98~99
노천명은 대표작 「사슴」때문에 시적 낭만을 지닌 순수한 소녀처럼 연상되지만, 오만할 정도의 도도함과 결벽증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한 성품 때문에 동료들과 충돌이 잦았으며,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아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녀는 자신의 성격을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처럼 휘어지거나 구부러지기는 어려운 성격"이었다고 시 「자화상」에서 고백했다. 하지만 그런 도도함조차 절대권력 앞에서는 한낱 갈대에 불과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의 권력에 굴복했고, 6.25 때는 인민군과 유엔군으로 교차되는 무력에 굴종했다. 따라서 그녀에게 도도함이란 기회주의와 동의어에 지나지 않았다. /p107
역사는 정말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했고, 무조건 암기하는 과목이라 재미없었는데 이렇게 현재와 닿아있는 과거의 서촌을 하나씩 짚어가며 이야기하는 책을 읽다 보니 생생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서촌을 걸으며 과거 역사와 현재를 다시 이야기해보는 것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교과서의 역사가 아닌 우리가 생활하며 접하는 현실적인 역사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남산골 한옥마을은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 민족의 전통가옥을 보고 체험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옮겨지거나 새롭게 지어진 한옥 다섯 채 가운데 세 채가 대표적인 친일파의 가옥이다. 무릇 인간이란 현상적으로 보이는 건축물만이 아니라 그곳에 거주했던 이들의 삶까지 느끼고 상상하게 마련이다. 한옥마을을 기획한 이는 관광객들에게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려 한 것일까. 집과 주인은 결코 분리될 수 없지 않을까. /p162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