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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성장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인생의 첫 과도기일지도 모르는 그 시절을 다양한 시각으로 만날 수 있는 성장소설. 나는 왜 재미있게 읽을 수 없을까?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렛 잇 스노우』『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작가 존 그린의 신간이다.
작가, 책표지, 제목보다 눈길을 끌었던 건, '빌 게이츠 가족이 사랑한 책!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읽고 푹 빠져 버렸다.' 라는 문구에 이 책이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삶이란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지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작가인 척한다. 그래야만 한다. 12시 37분에 높이 달린 스피커에서 단조로운 삐 소리가 울리면 ‘이제 점심을 먹기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종소리가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화가인 줄 알지만 실은 캔버스에 불과하다. /p9~10
그렇다면 이 연극에서 내 역할은 무엇일까? 조연이다. 난 데이지의 친구, 혹은 홈스 부인의 딸이다. 누군가의 무엇이다. /p10
주인공인 에이자 홈스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을 가지고 살아가는 열여섯 살 에이자가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내면의 갈등 속에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억만장자의 도망 소식이 전국을 뒤흔들고 실종된 러셀 피킷. 어린 시절 친구였던 데이비스의 아버지이기도 한 러셀에게 1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리며 에이자의 절친인 데이지가 이 현상금을 본인들이 받자며 강 건너 사는 데이비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데이비스와 나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고, 왜냐하면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서로 마주 보는 것보다 더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주 보는 것은 누구하고 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p17
진정한 공포는 무서움이 아니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p31
러셀 피킷의 실종으로 커다란 집에 남겨진 형제. 데이비스이 동생 노아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신이 비뚤어지면 돌아올 거라 생각하는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고 데이비스는 그런 동생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르겠다. 러셀 피킷의 실종 단서가 될지 안될지도 모를 단서를 들고 경찰이 아닌 데이비스를 찾아간 에이자는 그들 형제가 안타깝다. 아직 부모의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노아. 아버지의 자산이 있어서 관리인과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아버지의 실종으로 다시 만나게 된 데이비스와 에이자의 사이엔 호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가장 큰 무기는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윌리엄 제임스
윌리엄 제임스에게 어떤 초능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름을 선택할 수 없듯 생각도 선택할 수 없다.
생각에 대한 데이비스의 심정은 나와 똑같았다.
내게 생각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의식의 영역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p71
"전 제 생각을 통제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그 생각들은 진짜 내가 아니에요. 난 땀을 흘릴지 말지, 암에 걸릴지 말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레에 감염될지 말지도 결정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내 몸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죠. 이들 중 어느 것도 내가 결정하지 못해요. 외부의 힘이 결정하죠. 그러니까 난 그냥 소설 속 인물인 거예요. 내가 곧 환경이라고요." /p182
자신이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데이비스와 하는 키스에도 신경이 곤두서서 급기야 손 세정제를 먹기에 이르른 에이자는 데이비스를 좋아하지만 더 이상 가까이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게 된다. 데이지의 팬픽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자신과 흡사한 캐릭터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상처를 받지만.... 아빠가 실종될 경우 전 재산을 투아타라에게 상속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150년 이상을 살 수 있는 마법의 동물 투아타라를 연구하고 최상의 보살핌을 제공하기 위해 재단까지 설립했다는데, 경찰을 피해 도망가면서 남는 아들들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걸까? 데이비스와 함께 올려다봤던 하늘, 이야기들... "마주 보는 것은 누구하고 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에이자가 가진 강박과 불안감을 타인이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일 테니까. 하지만 같이 바라봐 줄 수는 있지 않을까? 고치려 들지 않고 함께 곁에서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큰 맥락의 사건은 데이비스의 아버지 실종이지만 에이자가 자신의 삶과 주변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글은 점점 빠져들어 에이자의 강박과 불안감은 개인차만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열린 결말!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의 마무리가 너무나 좋았다.
단수 고유명사인 '나'는 늘 주위의 영향을 받으며 계속 살아 나갈 거야.
하지만 넌 아직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해. 너와 나는 데이비스의 손을 꽉 잡아. 데이비스도 우리 손을 꽉 잡지. 넌 그와 함께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참 후에 데이비스가 그만 가야겠다고 말하고, 넌 '잘 가.'라고 말하고 데이비스는 '잘 있어, 에이자'라고 말하지. 우리는 정말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이니까. /p312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