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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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꽤 오래전부터 그녀의 책표지 사진은 변함이 없다.  나이가 든 그녀는 어떤 모습일지 신간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개와 하모니카』각기 다른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항의 입국장에서 시작되는 <개와 하모니카>에선 다양한 국적과 성별, 나이를 가진 사람들의 순간을 선명하게 담아내고 있다.  문득, 공항이 가고 싶어졌던 건 비밀이 아닌 걸로 하지요.  <침실>, <늦여름 해 질 녘>, <피크닉>, <유가오>, <알렌테주> 등 짧은 단편이지만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일상으로,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



왜 그렇게 피크닉을 좋아하게 된 거야?  쿄코에게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한여름, 처음 시작한 이래 네다섯 번 연속으로 피크닉을 한 후였다.

"그야."  쿄코가 대답했다.

"그야, 바깥에서 보면 당신이 또렷하게 잘 보이니까.  당신이 얼마나 큰지,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어떤 기척을 내는지."

"기척도 보여?"

물론이지, 하고 쿄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든 동물은 우선 기척으로 자기 존재를 주장하잖아?"

게다가 - 생긋 웃으며 쿄코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피크닉을 하면 고독하다는 느낌이 안 들잖아." /p86~87 #피크닉


어쩌면 생이란 찰나의 행복에 의지해 살아가기에,  쓸쓸하고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게 아닐까?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읽으면 좋다!라는 느낌보단 조금 심심한데?라는 생각을 매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읽다 보면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문장들이 소설 속 인물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침실> 5년을 함께 했던 내연녀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죽을 듯이 힘들었지만 잠든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새록새록 한 애틋함을 느끼고, <유가오>는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는 사람도, 그 맹세를 믿은 사람도 '사랑'엔 의심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랑이란 '찰나'의 감정이 아닐까?  그가 맹세한 사랑은 내연녀에게서 새로운 여인에게로 또 새로운 여인에게로 옮겨다니고 있었으니... <알렌테주>는 저자가 포르투갈 취재차 갔다가 집필한 이야기라고 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광경이었다고 하니... 서평을 작성하며 읽어보니 심심하다고 생각했던 글 하나하나가 의미 있고 매력 있는 글이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군상들의 모습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고군분투하거나 지독하게도 고독하고 외롭지만 또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단편을 읽을 때면 늘, 호흡이 짧아 싫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이 다른 글과 다르게 짧아도 그 문장들이 고스란히 와닿는 건 스쳐 지나가버려 여상하게 생각해버리는 일상도 세심하게 담아내는 그녀의 필체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조금은 심심하고 덤덤한 글이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문득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고, 여행가방을 꺼내보고도 싶어졌으며 무엇보다 공항에 가보고 싶게 했던 글이었다. 



친구들은 마누엘을 가리켜 알코올 중독 직전에 있는 애주가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곳에는 대화가 있고 침묵이 있고, 사람이 있고, 인간관계가 생겨난다.(또는 무너진다) 시간이 특별한 방식으로 흐르기에 그 자리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이며 기억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마누엘은 그런 자리가 좋아서 바텐더가 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p148  #알렌테주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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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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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공부는 왜 그리 재미가 없었는지, 특히 뭔가를 분석하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가요, 향가, 고려가요』는 중.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고전 운문을 담았다고 한다.  외우지 않아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구성은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문장을 400장이 넘는 그림으로 세밀하게 표현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보니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그림을 보면 잔상이 남는 효과라고 할까? '공무도하가', '정읍사','제망매가' 등은 저절로 그 내용이 담긴 그림 몇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효과를 보게 한다.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는 <고대가요.향가.고려가요 편> , <시조. 민요. 두시언해 편> , <한시.가사 편> 국어 교육 25년의 노하우를 담은 가장 친절한 문학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듯하다.  시 한 구절에 그림 한 장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암기가 되고 시험 문제에 등장하는 원문도 실려있다.  필수 정보만 간략하게 핵심정리 마무리까지!  이런 책이 학교 다닐 때도 있었다면 조금 더 재미있게 공부하지 않았을까?  고전이 그렇게 어려웠었는데 책장이 술술 쉽게 넘어가서 '이렇게나 쉽고 재미있었던 과목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림도 내용에 충실하게 잘 맞아떨어지고 있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인 조카를 두고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이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이야기 자체만 넘기면 읽어도 좋을만 했던 책이랄까?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가요, 향가, 고려가요』개정 교과 과정의 흐름에 맞추어 나온 문학교과서 최고의 부교재, 모든 과목의 기초는 국어 실력에 있다고 하니 문학. 국어만큼은 이 책으로 쉽고 재미있게 접근해보는건 어떨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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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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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진 않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몇 작가들이 있다.  기회가 닿지 않아 읽지 못했고, 반짝 관심을 가졌다가 이내 다른 책을 읽다보니 잊히는 작가들 중 한 명인 모리미 도미히코.  책 제목이 참 거룩하지 않은가?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이야기를 하는 화자가 따로 있고 등장인물들의 동선에 따라 게으름뱅이라는 제목과 다르게 실재하는 교토의 한 지역 축제, 토요일 하루의 이야기다.  (하루 분량의 글 치곤 내용이 꽤 길다.)



'모험'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행하는 일'이다....(중략)....

필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다. /p041

"잘 들어.  우리에게는 모험이 필요해.  막연히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건 안 돼. 

인생이란 그저 성실하게 일한다고 보상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이야."

"그렇지 않아요.  성실한 게 제일입니다."  /p057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뭐든 한다는 고와다, 최고의 휴일은 이부자리에서 빈둥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폼포코 가면이 자신의 대를 이어 2대 폼포코 가면을 하라고 쫓아다닌다.  교토시 주오구의 야나기코지에 모신 너구리 신, 하치베묘진.  정의 사도로 알려진 폼포코 가면은 너구리 가면을 쓰고 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준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인기를 얻기 위해 짬짬이 착한 일을 하는 너구리 가면.  주말 탐정 알바를 하는 다마가와는 길을 헤매기 일쑤인 엉뚱한 캐릭터이고 우라모토 탐정은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때를 기다려 사건이 해결되길 기다리는 것 같다?  온다 선배와 모모키 커플은 주말 스케쥴을 빽빽하게 채워 알차게 보내고 싶어하고 고토 소장은 평범한 온다와 고와다의 직장 상사이지만 겉모습은 세계 제일의 악당이다!  좋은 일을 하는 폼포코 가면을 잡으려는 이들, 도시 전체가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다.  그를 사로잡아오라고 지시한 상부의 상부의 상부... 대체 왜? 그를 찾는 걸까?



"대다수 사람은 그저 막연히 움직이기를 그만두기만 하면 쉴 수 있다고 믿지요.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움직임을 멈추는 게 아닙니다.  올바른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죠.  참치처럼 계속 헤엄치며 피로 너머로 돌파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따라서 저는 피로하지 않습니다." /p071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대부분은 관광객이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설령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대로 가 보더라도 항상 다른 길이 나왔다.  그녀가 향하는 거리마다 모습을 바꾸고 본 적도 없는 거리가 가로막는다.  어디를 걸어도 기온 축제 음악이 들렸다.

그녀의 헤매는 모습에 어이가 없는 독자도 계시겠지.

그러나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심이다. 

헤매라, 다마가와. 헤매. 

탐정이니까 길을 헤매서는 안 된다고 대체 누가 정했어?  /p191


게으름에 능숙한 사람을 동경하며 집필한 이 글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다듬어 출간한 글이라고 한다.   7월의 토요일 게으르고 이상한 이 교토 판타지는 책장을 덮고 나니 실제 하는 장소를 보고 싶어 그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게으르다는 사람들의 주변에 사건이 이렇게나 많은지..)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게으른것 같으면서도 분주했던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은 시원한 프라푸치노 한 잔 마시며 천천히 읽으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요일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조금 더 게으름을 부리자!



거룩한 게으름뱅이란 평범한 사람이 보면 이상한 존재이지만 하늘의 질서와는 맞는 존재이며, 쓸모없어 보이는 가운데 쓸모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무용지물'이라는 말을 대대로 물려받은 보물처럼 휘두르며 큰소리로 주장하는 것은 삼가라.  '쓸모없는 것 또한 쓸모 가운데 하나'라며 괜한 애를 쓰다 보면 쓸모를 숭배하는 일파에게 무릎 꿇게 된다. /p328

"멍청하게 넋 놓고 있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월요일이 온단 말이다." 라며 온다 선배는 겁먹은 듯이 몸을 떨었다.

"월요일이 오면 우리는 분초를 아끼며 일해야 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너도 그렇지?  언제까지고 신입입니다.  하는 얼굴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령 내가 허락해도 하느님은 용서하지 않겠지.... 물론 그건 월요일부터 시작될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주말을 만끽해야 하는 거야."  /p417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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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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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인생의 첫 과도기일지도 모르는 그 시절을 다양한 시각으로 만날 수 있는 성장소설.  나는 왜 재미있게 읽을 수 없을까?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렛 잇 스노우』『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작가 존 그린의 신간이다.

작가, 책표지, 제목보다 눈길을 끌었던 건, '빌 게이츠 가족이 사랑한 책!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읽고 푹 빠져 버렸다.' 라는 문구에 이 책이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삶이란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지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작가인 척한다. 그래야만 한다. 12시 37분에 높이 달린 스피커에서 단조로운 삐 소리가 울리면 ‘이제 점심을 먹기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종소리가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화가인 줄 알지만 실은 캔버스에 불과하다. /p9~10

그렇다면 이 연극에서 내 역할은 무엇일까?  조연이다.  난 데이지의 친구, 혹은 홈스 부인의 딸이다.  누군가의 무엇이다. /p10


주인공인 에이자 홈스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을 가지고 살아가는 열여섯 살 에이자가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내면의 갈등 속에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억만장자의 도망 소식이 전국을 뒤흔들고 실종된 러셀 피킷.  어린 시절 친구였던 데이비스의 아버지이기도 한 러셀에게 1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리며 에이자의 절친인 데이지가 이 현상금을 본인들이 받자며 강 건너 사는 데이비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데이비스와 나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고, 왜냐하면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서로 마주 보는 것보다 더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주 보는 것은 누구하고 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p17

진정한 공포는 무서움이 아니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p31


러셀 피킷의 실종으로 커다란 집에 남겨진 형제.  데이비스이 동생 노아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신이 비뚤어지면 돌아올 거라 생각하는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고 데이비스는 그런 동생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르겠다.  러셀 피킷의 실종 단서가 될지 안될지도 모를 단서를 들고 경찰이 아닌 데이비스를 찾아간 에이자는 그들 형제가 안타깝다.  아직 부모의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노아.  아버지의 자산이 있어서 관리인과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아버지의 실종으로 다시 만나게 된 데이비스와 에이자의 사이엔 호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가장 큰 무기는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윌리엄 제임스

윌리엄 제임스에게 어떤 초능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름을 선택할 수 없듯 생각도 선택할 수 없다.

생각에 대한 데이비스의 심정은 나와 똑같았다. 

내게 생각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의식의 영역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p71

"전 제 생각을 통제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그 생각들은 진짜 내가 아니에요.  난 땀을 흘릴지 말지, 암에 걸릴지 말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레에 감염될지 말지도 결정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내 몸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죠.  이들 중 어느 것도 내가 결정하지 못해요.  외부의 힘이 결정하죠.  그러니까 난 그냥 소설 속 인물인 거예요.  내가 곧 환경이라고요." /p182


자신이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데이비스와 하는 키스에도 신경이 곤두서서 급기야 손 세정제를 먹기에 이르른 에이자는 데이비스를 좋아하지만 더 이상 가까이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게 된다.  데이지의 팬픽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자신과 흡사한 캐릭터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상처를 받지만....   아빠가 실종될 경우 전 재산을 투아타라에게 상속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150년 이상을 살 수 있는 마법의 동물 투아타라를 연구하고 최상의 보살핌을 제공하기 위해 재단까지 설립했다는데, 경찰을 피해 도망가면서 남는 아들들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걸까?  데이비스와 함께 올려다봤던 하늘, 이야기들... "마주 보는 것은 누구하고 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에이자가 가진 강박과 불안감을 타인이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일 테니까.  하지만 같이 바라봐 줄 수는 있지 않을까?  고치려 들지 않고 함께 곁에서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큰 맥락의 사건은 데이비스의 아버지 실종이지만 에이자가 자신의 삶과 주변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글은 점점 빠져들어 에이자의 강박과 불안감은 개인차만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열린 결말!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의 마무리가 너무나 좋았다.



단수 고유명사인 '나'는 늘 주위의 영향을 받으며 계속 살아 나갈 거야.

하지만 넌 아직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해.  너와 나는 데이비스의 손을 꽉 잡아.  데이비스도 우리 손을 꽉 잡지.  넌 그와 함께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참 후에 데이비스가 그만 가야겠다고 말하고, 넌 '잘 가.'라고 말하고 데이비스는 '잘 있어, 에이자'라고 말하지.  우리는 정말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이니까.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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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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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로니아 공화국 대통령 김강현이다.
"나는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최선을 다하여 헌법을 준수하고 보호하며 보존할 것을 블루토피아 아래에서 엄숙히 선서합니다."
2028년 7월 7일, 쏟아질 듯 눈부시게 빛나는 멋진 날이었다. 나는 파랗고 하얗게 빛나는 '블루토피아'깃발을 왼손으로 꼭 움켜쥐고 아로니아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을 향하여 오른손을 높이 치켜든 채 굳은 맹세를 했다.
빌어먹을! /p11


해가 바뀔수록 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만족을 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은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나라를 만들어가는 신명 나는 이야기이다.  2028년 아로니아 공화국의 대통령 김강현의 선서로 시작하는 글은 그의 어린 시절과 아로니아 공화국을 오가며 진행된다.  친구들과 만화방에서 놀던 시절, 동구 만화방 텔레비전이 박살 나서 돈을 모아 텔레비전을 구입해주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결론은 강현이 친구들의 돈을 갈취해서 모금의 대부분을 채웠는데, 아버지인 동국건설 김기천 씨에게 그 현장을 들켜 그동안 돈을 갈취했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사과하고 돈을 다 물어주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만약 그때 아버지에게 그 현장을 들켰던 건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다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죽는 날까지 무르거나 되돌릴 수 없는 맹세는 결코 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다고 무조건 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멍청하게도 그날 나는 맹세의 엄중한 의미를 정말로 몰랐다. /p74
김대중 정권은 어이없게도 그들의 더러운 코를 대신 풀어준 셈이었다. 기업은 망해도 재벌기업 회장들과 자식새끼들과 일가붙이 나부랭이들은 망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고 길거리를 헤매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재벌기업 회장들과 자식새끼들과 일가붙이 나부랭이들은 갈 곳을 잃거나 헤매지도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않았다. 사재를 털어서 기업을 살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기업 구조를 개선하여 공적자금이 들어간 자신의 기업을 국가에 헌납하는 아름다운 기업인들을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늉이라도 바라며 일말의 양심을 기대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자의 착각이었을까? 착각은 무슨, 어리석은 민중이지. 자본은 양심이 없다. 결코 자본은 아량과 관용과 선의라는 단어들과 양립할 수 없다. /p92
익숙한 것은 사람을 무심하게 만든다. 무심한 것은 사람을 외면하게 만든다. 외면하는 사이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 지나온 동안 수영과 나는 누나였고 아내였고 또한 남편이었다. 지민이 태어났고 어머니가 자리를 지켰고 우리는 언제나 가족이었다. 사람들은 가족을 영원할 것처럼 말한다. 틀렸다. 부모 자식은 비가역적일지 몰라도 부부는 떨어지면 깨지는 그릇이다.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인 관계. 부부는 믿음이라는 약속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신뢰해야만 유지되는 잠정적인 관계일 뿐이다. /p143


아버지에게 끌려다니게 된 무림합기도에서 만난 첫사랑 수영.  그녀를 위해서 성당을 다니고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강현은 그녀와 같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열심히 외운다. 그저 외워서 법대를 나와 검사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굵직한 사건들은 '아로니아 공화국'이라는 국가의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야기한다.  검사로 살아가며 부와 권력 때문에 스러져간 국민들의 삶을 보면서 미련 없이 검사직을 내려놓는다.   참 어이없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허투루 여기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 자격이 없고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마땅하다. 잘라서 말한다. 아로니아 시민은 곧 아로니아 국가 그 자체다. /p151~152

"세상에 태어난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좋든 싫든 꼼짝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죠. 저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들이 장악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진 채 평생 의무를 지고 권리를 찾아다니며 허둥지둥 살아야 한다면 슬프고 불행한 일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만들 겁니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살고 또 그 자식들이 살아갈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이렇게 멋진 일을 하지 않는 건 제 자신에게 죄를 짓는 거죠." /p261


검사직을 내려놓고 집에서 쉬던 중 송성철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큰놈 하나 작은 놈 하나' 서류를 주고 간다.  신나게 놀겠다던 어른들이 바다 한가운데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야기글 듣다 보니 묘하게 설득되고 '큰놈 하나 작은 놈 하나' 프로젝트에 동참하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과연 국민들이 평등하게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천문학 적인 돈이 들어가고 나라 간의 외교 문제도 걸려있다.  한. 중. 일 간의 미묘한 외교 문제를 아내인 수영과 딸 지민으로 인해 돌파구를 찾게 되고...

"넌 아로니아를 만들겠다는 나에게 가타부타 말을 안 했어. 그리고 에크로피아에 들어왔고 하호하오츠바를 했고 아로니아를 만들었지.... 왜 허무맹랑했을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했어?"
수영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도 일어나 수영의 어깨를 감쌌다.
"너니까... 네가 하겠다고 하니까... 너잖아. 뭐가 더 필요한가?" /p411


처음엔 모 작가의 글과 비슷한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갸웃 했는데 읽다보니 김대현 작가의 글에 빠져들게 된다.  무조건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김강현과 그의 사람들, 하지만 마지막 즈음 아내인 수영은 아로니아 공화국을 없애겠다고 한다.  행복을 강요받는 사람들이 과연 진정 행복하겠는가? 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이 힘들고, 싫어서 떠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간히 듣게 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해외에 내보내 그곳에서 자리잡기를 유도하는 부모들도 있다.  사실 가끔 생각한다.  이 나라가 참 살기 힘든 나라가 아닌가 하고, 조카들이 살아갈 10년후, 20년 후는 지금보다 나아졌으면 하는 생각도 더불어...  국가를 바꿀 수 없어서 국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발적이지만 경쾌하다.

언제나 살았고 어디서나 살았던 사람은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산다. 세상의 사람은 영원하고, 사람이 만든 국가는 영원하지 않았다. 지나온 세상의 역사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원하지도 않은 국가를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헛되고 터무니없는 아집이다. 사람과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추잡하고 초라하고 조잡스러우며 너절하고 파렴치하고 무능력한 국가가 왜 필요한가? /p412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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