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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잠시 독립해서 살다가,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결혼은? 아이는?' 이었다. 혼기가 한참 지났는데 왜 결혼을 안 했냐고, 호구조사를 시작하다가 주변 지인들을 소개하겠다며 순식간에 결혼소개소에 와 있는듯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왜?' 그렇게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걸까?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고, 정말 혼자가 편해서 일 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걸까? 제발 그런 관심은 사양하고 싶다.
히로키와 결혼한 당시는 그야 기뻤다. 히로키를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새로운 사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컸다. 사랑은 귀찮다. 음식 호불호는 물론이고 실내파인지 야외파인지, 또 가족 구성이나 저축 성향 같은 것을 조금씩 살펴 기억해두어야 한다. 성적 취향을 맞춰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p53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을 굳게 믿는 사람이 이따금 있다. 겉으로는 사이좋게 지내지만 속으로는 헐뜯고 깎아내릴 것이라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아줌마는 젊은 여자를 질투한다고 믿는 사람 역시 꽤 있다. 대체 그런 편견이 왜 있는 걸까? 여자들의 싸움을 보면 이상하게 흥분하는 성벽이 있어서 싸워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같은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것도 에너지 낭비다. /p71~72
남편과 별거 중인 유미코와 5년간 다니던 절임 공장을 그만둔 카에테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데 그녀들의 독백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 라는 생각에 그녀들의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보통 여자'의 굴레를 쓴 채 직업도, 가족도 없는 유미코와 카에테는 이웃에 살게 되면서 친해진다. 카에테의 직장 사장은 가정도 있는 주제에 끊임없이 카에테에게 추파를 던진다. 나이가 든 여자는 누구라도 남자가 관심을 보여주면 호응을 해야 한다는 것처럼, 함께 일했던 사람에게도 조용히 의논했었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공장 사람이 그 소식에 대해 알게 된다. (어차피 곧 그만둘 직장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거절해도 추근거리는 사장의 행태는 정말 때려주고 싶었다. (이런 사람 꼭 있지!!)
유미코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지만 그녀가 집을 나가자 사라져버린 남편 때문에 이혼 절차를 밟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 동네 사는 미츠에씨 (남편 히로키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함께 보자며 미츠에씨의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같이 있어서 죽을 것 같으면 헤어지는 편이 낫지" 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히로키를 고향에서 본 것 같다고 연락을 받았으니 거기 가면 찾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넌지시 말을 건넨다.
부부든 친구든 같이 있다고 ‘둘’이라는 새로운 무언가가가 되지 않는다. 그저 외톨이와 외톨이일 뿐이다. /p250
원하는 것이 다를 뿐인데 어느 쪽은 옳고 어느 쪽은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다.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원하는 것을 원할 권리가 있다. 얻으려고 할 권리가 있다.
나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내 삶은 분명 아름답지 않다. 수도 없이 틀리고 남에게 수도 없이 상처를 주고, 과거에 저지른 죄와 부정을 불에 태워 용서를 받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옳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게 산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대상을 가치 없다고 비웃거나 부정하지는 않겠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남을 비웃는 것은 비겁하다. /p254
유미코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고 카에테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게 되면서 집을 나간 유미코의 남편을 찾아 보자며 남편의 고향으로 향한다. 가끔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이웃에서 목적이 있지만 함께 여행을 하게 된 유미코와 카에테. 두 여인은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서로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섬에서의 두 사람의 성격은 더 극명하게 비교되어 보였다.
사회의 틀에서 살짝 벗어난 두 여자는 서로 가까워지는 것 같다가도 멀어지지만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함께한 시간만큼 유미코와 카에테의 우정은 조금 더 견고해진 것 같았다. 같은 동양의 정서라 그랬을까? 우리나라의 3,40대 독신 여성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게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건 '내 이야기' 인것 같다. 라는 마음으로 읽어 더 깊이 와닿았던 글이었다. 마음 같지 않은 삶, 버겁고 힘들지만 묵묵하게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평이한 이야기 같았지만 유쾌하고 치밀한 감정선에 한껏 빠져들어 읽었던 데라치 하루나의 <같이 걸어도 나 혼자> 그녀의 다른 글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당신이 나를 감정해줄 필요 없어요.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내가 정하니까."
세상의 보통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일일이 '왜?'라는 의문을 던지려고 하면 피곤합니다. 주변 사람들 얼굴에도 '거참 예민한 사람이네'라고 쓰여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왜?'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보통이라고 믿었던 것이 정말로 옳은지 하나하나 검증하고 싶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왜?'라는 의문을 진솔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여자는 이래야 돼'라는 편견에 멋대로 휩싸이기 싫고, 저 또한 '남자는 이래야 돼'라는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경계하며 살고 싶습니다.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런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세상의 보통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겁니다. / 데라치 하루나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