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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읽고 보자,라고 정하긴 했지만 개인적인 지극한 독서 취향을 무시할 순 없었던 것 같다. 너무나 어렵게 읽었던 작가의 후속작이 ‘연애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게다가 예쁜 책표지까지 입고 출간되었으니 줄거리는 알아볼 생각도 않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할 이야기가 단 하나밖에 없다. 우리 삶에서 오직 한 가지 일만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로 바꾸어놓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최종적으로 이야기 할 가치가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이건 내 이야기다. /p14
19살 소년과 48살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 어쩌면 케이시 폴이라는 한 소년이 사랑하게 된 여연과의 사랑은 첫사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기록된 글은 때론 거칠고, 문장들의 서사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되었던 테니스 클럽에서 이 둘에게 동시에 사정상의 탈퇴 요구를 받은 부분에서부터 야 뭔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가? 싶었지만... 글쎄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 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p75~76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오는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성에 근접한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심장이 식었을 때 오는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진 애인은 사랑을 ‘이해하고’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 싶어하고, 그 강렬함, 사물의 초점이 또렷이 잡히는 느낌, 삶이 가속화하는 느낌,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이기주의, 욕정에 찬 자만심, 즐거운 호언, 차분한 진지함, 뜨거운 갈망, 확실성, 단순성, 복잡성, 진실, 진실, 사랑의 진실을 느끼고 싶어한다. 사랑과 진실, 그것이 나의 신조였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나는 진실을 본다. 그렇게 간단해야 한다. /p141~142
케이시 폴과 수전의 사랑 이야기가 파격적이라는 게 '나이차'때문이었던걸까? 분명 폴이 수전에게 반했던 부분도 있었을 테지만 이후 수전의 행동에서도 뭔가가 보였으면 했는데 그들의 도피 이후부터는 수전의 방황하는 모습들만 조명되었던 것 같다. 수전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녀를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였던 폴은 자신이 수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사랑을 지켜낼 수 없다는 걸 직접 겪어냈던 시기를 서사하고 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오래전 함께 사는 동거인의 형태로 바뀌어 매일 같은 일상을 살아가던 차에 그녀에게 다가온 새로운 사랑 앞에 속절없이 빠져든 수전, 차라리 온전히 폴에게 빠져들었다면 그녀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사랑의 반짝임은 순간이고 남편과 폴 사이에서의 갈등은 그녀를 술에 빠지게 만들고, 그녀는 끝내 폴과 멀어지는 순간에도 술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된다. 수전이 술에 의존하는 걸 알면서도 약간의 시도를 하다가 이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정말 길게도 이야기했던 폴은 결국. 그녀로부터 도망쳐 긴긴 삶을 해외에서 살다가 그녀가 죽기 전 돌아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면서 예전 그들의 찬란했던 시절의 수전을 잠시 기억하지만 이내 지극한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그는 가끔 자신에게 인생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행복한 기억과 불행한 기억 가운에 어느 게 더 진실할까?
그는, 결국,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p289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정리되고 걸러진다.
기억은 무엇이 되었든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이 계속 살아가도록 돕는 데 가장 유용한 것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39
"다른 식으로 표현해보자.
나는 열아홉이었고, 나는 사랑은 썩지 않는 것이라고, 시간과 퇴색에 내력이 있다고 믿었다.” /p102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형태도 아주 잠시 볼 수 있었고 이들이 왜, ‘도주’까지 해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필요로 했던 건지도 그러한 과정에서 ‘사랑’에 대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 마지막까지 폴과 수전에게 집중하고 싶었지만 <연애의 기억>에서 무엇을 읽어냈어야 하는 건지 도돌이표처럼 돌아가게 하는 글이었다. '사랑'을 제3자가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만의 이야기고 역사일테니... 하지만 중간중간 자신이 불리한 순간에만 자신은 열아홉이었다고 이야기하는 폴이 생각할수록 얄밉다. 수전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면 분명 달랐겠지. .. 열아홉과 마흔여덟, 소년과 가정이 있는 유부녀의 사랑, 도피, 파국이라는 시도는 뒤로하고 그들 간의 스토리만이라도 잘 풀어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짙어지는 글이었지만, 몇 문장들을 건졌으니 그것으로 만족해볼까 한다. ‘사랑’이란 어렵고도 어렵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