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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 - 인생, 힘 빼고 가볍게
김서령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9월
평점 :

이틀을 꼬박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었던 소설가 김서령의 산문집 <에이, 뭘 사랑까지하고 그래> 제법 가을인가 싶었는데,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선 9월의 마지막 즈음, '올 한 해도 이렇게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빠져 허무함과 뒷걸음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자괴감에 정신줄을 살짝 놓고 며칠을 그냥 보내고 있는 요즘이었다. 어떤 게 나다움인지, 내 나이 즈음의 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라앉지만 이내 또 일상에 젖어들어 금방 잊어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꽃이라는 것을 잘 몰라서,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고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한 날도 많았다. 내가 나를 미워하기도 했고 아주 허황한 이별을 여러 번 겪기도 했다. 저마다 꽃이라는 것을 잠깐 잊은 대가였다. 그래도 나는 나를 여태 예뻐한다. 예뻐해서 이렇게 책 한 권을 또 낼 수 있었다. 서툴고 모자라지만 그러라지 뭐. /프롤로그
'이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라며 읽으면서도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던 건 이전 산문집에 등장하는 지인들이 이 책에서도 등장하기 때문인데, 책을 읽다가 중간에서야 찾아보니 이미 3년 전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로 친숙해진 작가였던 것이다. 하... 건망증인가?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를 읽으면서도 이 작가 글을 참 읽기 편하게 잘 쓰는구나, 소설도 궁금하다 생각만 했는데, 소설가의 산문집은 읽었으면서 정작 소설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가 깊어질 만하면 수트케이스를 꾸리는 나 때문에 애인들은 골이 날 대로 났다.
“제발 연애에 집중 좀 해줄래?”
그들은 화를 내다가는, 미뤄 두었던 고백들을 줄줄이 읊었다. 그러면 내가 가지 않을 줄 알고, 그래서 나는 또 말하지. 눈을 게슴게슴 뜨고 입가엔 웃음을 단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신과의 이별은 하나도 겁나지 않은 것처럼, 때로는 내 속의 두려움들을 온전히 숨긴 채. 그렇게.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 대충 해.”
허리께를 툭 치면, 익숙한 감촉. /p026~027
여전히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그 사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기도 했지만 자신을 놓지 않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김서령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이거 내 이야기?' 하는 생각이 막 든다. 42살, 고령의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였던 자신의 삶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과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생을 살아가는데 '사랑'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근본적인 밑바탕은 사랑이지만 그 외에 많은 것들이 있다. 사랑 그 주변의 삶을 이야기한 글은 때론 뭉클하고 반짝이기도 했으며 현실을 훌쩍 떠나 타지에서 몇 개월씩 떠도는 그녀의 삶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인의 삶을 읽으며 때론 나의 시간을 보는듯한 놀라움도 경험하기도 하고, 마음 깊이 감춰두었던 내면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들을 경험하고 지나온 그녀의 글은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도 썩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다독이는 것 같아 느리게 읽었던 것 같다. 산문글, 에세이를 계속 읽게 되는 건 글을 읽으며 '넌 괜찮은 사람이야, 잘 살아가고 있어.'라는 위로와 응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계절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책 읽기 참 좋은 계절이다.
한 번만 더 많을 아끼면 내가 이기는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헤픈 말은 미련을 만들고 미련은 슬픔을 만들기 마련이고, 그렇게 슬퍼지는 사람이 지는 거니까.
내가 지금 이별을 하는 중이구나, 생각이 들면 나는 말이 줄었다. 나는 참 고백을 잘하는 여자인데도 입을 다물었다. 네가 떠나려고 해서 슬퍼, 그런 말 따위는 하기 싫었다. 내 뒤끝이라는 건 결국, 저 여자가 나를 정말 사랑하기는 한 건가, 그런의심이 들게 하는 일인 건지도 몰랐다. 언제쯤 능숙하게 이별을 잘하는 여자가 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구질구질한 미련을 들킨 적 없지만, 나는 가끔씩 지나간 내 애인들에게 가만히 못 다한 인사를 한다. 혼자서 우물우물. /p029~030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