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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회전목마처럼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선택한 결정적인 문장은 "계절을 해야겠어"였다. 일상 속의 미스터리와 애타는 짝사랑의 조합이라니.... 제목도 <계절은 회전목마처럼>이야. 겨울이란 뜻의 후유코, 여름이란 이름의 뜻을 가진 나츠키 이 둘은 고교시절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교복치마의 길이 때문에 난처해하는 후유코를 보고 도움을 준 나츠키와 기묘한 사건의 '계'기를 알아내어 '절'차에 맞게 설명하는 '계절'이란 취미를 공유하게 되는 친구가 되지만 나츠키는 후유코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자연스레 멀어졌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어느 겨울날, 고베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된 나츠키와 후유코는 밸런타인데이 트리를 피해서 기념사진을 찍는 커플을 보고 "계절을 해야겠어." 라는 말로 그들의 과거 한 시절을 소환한다.
“—-계절을 해야겠어.”
—-기묘한 사건의 계기를 알아내어 절차에 맞게 설명하는 것.
이 ‘계절’이란 단어의 어원을 찾으려면 나의 고등학교 입학식날로 돌아가야 한다. /p15
한자로 표기하자면 계기와 절차를 합쳐 ‘계절’인데, 이것은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이름에 공통으로 사용된 요소인 ‘계절’과도 발음이 똑같았다. 우리는 계절이란 단어를 우리 마음대로 쓰기로 했다. 진실을 해명하는 행위를 ‘계절한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둘이 저마다 세우는 가설을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우리끼리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p25
일상의 상황을 관찰하고 그 사건의 계기를 알아내어 절차에 맞게 설명하는 건 나츠키와 후유코의 탐정놀이? 같은 것이었다.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통찰력 있게 추리하는 나츠키의 추리는 명탐정 같았지만 짝사랑하는 후유코 앞에서만은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일 뿐이다. 후유코의 계절도 타당성 있고 조리 있지만 감상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나츠키와의 계절에선 조금 밀리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츠키, 넌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구나. 뭐든지 다 환히 꿰뚫어 보고 말이야. 난 그저 입만 딱 벌릴 수밖에 없고. 넌 왜 그렇게 계절을 잘해?”
후유코의 그 말도 고등학교 때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나는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하니까. 기묘한 사건을 고찰할 때 나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호는 배제하고, 그 장면 속에 나라는 존재를 끼워 넣지 않고. 그렇게 바깥쪽에 머무르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 자체만 살펴보는 거지. 그러면 저절로 중요한 요소만 부각되거든.” /p72~73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저절로 나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누나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머리로는 이미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기적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즉, 방금 하루노가 말했듯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p111
겨울에 다시 재회하여 사계절을 다시 겪을 동안에도 고백을 하지 못하고 타이밍만을 보고 있던 나츠키. 짝사랑의 절절함과 고교시절 고백이 실패로 돌아갔던 사건을 회상하는 부분에선 후유코도 나츠키의 짝사랑을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후유코는 나츠키와 사귀다가 헤어지는 애인보다는 '계절'을 함께 즐기는 친구로 남고 싶었던 걸까? 나츠키와 후유코가 고베에서의 첫 만남 이후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되어 봄이 다가오는 계절의 중간 즈음. 나츠키는 결심을 하게 되고 후유코와 대화를 시작하지만 "네가 할 말이 뭔지, 내가 계절을 해보고 싶은데, 그래도 돼?" /p300 이전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엄한 이야기로 주위를 돌리곤 했던 후유코라 또 그런 건가 싶었다. '지금은 고백의 순간이라고!!!' 소리쳐 주고 싶었지만.... 하지만 뒤통수 맞은 기분. 완전 제대로! 이 부분을 위해서라도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죄책감은 없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보은하는 길이라면, 나는 오늘 정확히 그것을 실행한 셈이니까. 후유코라면 분명히 이해해줄 것이다. /p196
회전목마에 같이 오를 타이밍만을 관찰하던 나츠키는 회전목마에 함께 오르지도, 회전목마 밖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던 건 아닐까? 어릴 적 우상의 아이콘 같은 회전목마 안에 올라있는 후유코를 바라보기만 하느라 주변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너 라는 애매모호한 사이에서, 이제 후유코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게 되어버린 나츠코. 그 이후의 이야기도 조금은 궁금해진다. 일본소설 특유의 분위기랄까? 가을이 가기 전에 읽어야지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10월이 가기 전에 읽긴 했다. '작가의 말'을 읽다 보니 저는 마치 신들린 것처럼 단기간에 일필휘지로 글을 써서 원고를 완성했고, 그래서인지 완성한 순간에는 "뽑히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 작품을 쓰길 잘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스스로 만족했습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책장을 덮고 작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알겠더라는... 이 작가 자신 있을만했네...라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으니 꽤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야겠다.
-하나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중략)...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서로 헤어져 있었던 공백의 시간. 그리고 올해, 겨울로 시작해서 다시 겨울로 끝나는 사계절 한 바퀴. 기억을 더듬을수록 감정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오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도저히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떨쳐내려고 걸음을 빨리했다. 잠시 후 목적지인 공원이 보였다. 거기서 기다려줘. 저절로 시선을 잡아끄는 추억 속에 가둬놓지 말아줘. 그동안 말 못하고 감춰왔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갈 테니까-. /프롤로그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