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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집구석 내가 들어가나봐라
글쓰는 청소부 아지매와 모모남매 지음 / 베프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혼자 살기도 벅차니까 함께 살아보기로 한 가족이 있다. 부모님의 이혼, 은둔형 외톨이, 가난... 혼자라도 살아보려고 온갖 자기계발에 목을 맸지만, 모든 노력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더 이상 나아갈 곳도, 나아갈 힘도 없어지만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혼자만의 노력으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위축되곤 했다. 매일 생활비 때문에 싸우던 부모님, 다른 부모님처럼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던 부모님, 난 그게 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난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님의 특성을 나에게서 지우려고 노력했다. 성공 비법을 소개하는 자기계발을 통해 나를 새롭게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나를 보는 시선 정도는 수정할 수 있어도 자신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다. /p59
가족의 시련은 긍정의 죽비소리 같다. 각자의 일상에 덮여 서로를 보지 못할 때, 따끔한 시련으로 서로의 존재를 깨닫게 하니 말이다. 이제는 '이쯤이면 시련이 올 때가 됐는데...'하고 예측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가족 문제를 긍정하기 시작했다. 긍정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련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도망가면 시련에게 잡아먹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마치 나의 불안함을 먹이 삼듯이 시련은 끝까지 따라와 더 커져간다....(중략)...그때는 정말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딱 그만큼 성장했다. 물론 시련을 잘 해결했을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여기서 잘 해결해냈다는 것은 실패를 하더라도 그 일로 인해 내 영혼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시련이 와도 바늘구멍 같은 긍정을 찾으려고 또 노력할 것이다. /p70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글 쓰는 청소부 아지매, 장남으로 성장하면서 자신이 엄마와 동생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던 꿈야신, 은둔형 외톨이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 모모. 이 가족들이 함께 하기 위해 선택한 건 글쓰기였다. 글을 쓰다 보면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진심이 쓰이기도 한다.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고 현실감 있게 쓰셨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6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 20대 동생이 연습장에 쏟아낸 감정들을 읽고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며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아직도 내가 중년의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그런 가정형편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여자로써 중년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곤 한다. 아직도 딸, 아들을 결혼시켜야 되고 앞으로 열 개도 더 넘는 높은 산이 내 앞에 놓여 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 중년의 나이에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104~105
나는 단순히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는 착한 아들이 아니다. 엄마가 동기분들과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런 경험이 쌓여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책임감을 덜 느끼며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보는 자유를 느끼고 싶다. 언젠가는 가족에서 독립해야 할 때가 온다.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과 같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내가 함께 공부하면서 성장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p160
아버지와 이혼 과정이 힘들었던 엄마가 중년이 되고 '엄마'로서의 삶만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모모 남매에게 엄마의 연애와 중년의 위기,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과의 삶에 불안 등을 읽으며 부모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준비된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지만, 가정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데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이젠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 가족들에게도 '이놈의 집구석'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이 넷이나 되던 집이었으니 바람 잘 날 없었고, 조용해질만하면 또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서 빨리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시기가 나도 있었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빠져나가기 바빴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족회의'라는 시간을 만들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날도 있었다. 2~3년? 정도 유지하다가 머리들이 커지면서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어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어서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이해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가족이 살아가는데 끝이라는 게 있을까? 그 시간들을 지나와 부모님은 칠순이 다 되어가시고 동생들과 나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얼굴 붉히고 싸울 일은 없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든든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다.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오히려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 버렸다. 이런 현실은 일상이 되고 스스로를 챙기기도 버거워서 가장 익숙하고 쉽게 대하는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풀기 쉽다. 가족을 위한다는 목적은 어느새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족쇄로 느껴지게 되고 분노의 대상이 된다....(중략)....감정만으로는 소모적이고 일회성일 확률이 높다. 가족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가족은 나와 함께 행복해질 필요가 있는 평등권을 가진 존재이다. 가족의 행복 평등권은 서로를 위해 주지 않으면 효력을 발하지 못한다. 다른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국가적, 시민적, 이웃 같은 평등 의식이다. 가족끼리 서로를 위할 때 가족은 평등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중략)...가족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족 서로의 평등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관계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나부터 점검해봐야겠다. /p170~171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가족이 어디 있을까. 엄마도 아버지도 사랑표현이 어색한 분들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스스로 벌어먹고 살면서 책임지는 일들을 경험하며 부모님의 어색한 사랑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 분 다 먹고 사느라 힘들어 사랑표현에 인색했지만 삶으로는 사랑을 표현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나도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보니 집에 들어와 가족과 대화하기 보단 혼자 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는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노래가사처럼 이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태어날 수 있게 밑거름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턴 표현하지 못했던, 무언의 사랑을 이해할 때가 많아졌다. 서로 밉고 짐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가족은 어찌하지 못하는 정에 이끌리나 보다. /p246~247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우리집은 글렀어.' , '이놈의 집구석 내가 빨리 탈출하고 만다.' 등의 생각을 갖고 있는 해체되어 가는 가족들에게 때론 상처받고 짐으로 느껴질 지언정, 부대끼며 살아가는게 더 행복하다고 일독해보기를 조심스레 권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놈의 집구석 내가 들어가나봐라>의 많은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이놈의 집구석'이 가.족.으로 단단하게 뭉쳐가는 과정을 읽으며 책 읽기와 글쓰기로 글쓰는 청소부 아지매와 모모남매 의 가족에게도 '봄날'이 왔구나 웃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부모님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 -생텍쥐페리
/p287~288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