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
김진빈 지음 / 다독임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사형제가 북적북적 사건이 없는 날이 없었던 집이라,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억척스러움'과 '엄격함'으로 남아있다. 동생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는 어떻게 우리 넷을 키웠어?'라는 하소연을 하는 걸 꽤 자주 들었다. 아이 하 나, 둘 키우는 것도 매일 전쟁 같다고 말하는 동생들과 우리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그땐 우리 부모님도 어렸고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빠의 수입으론 아이넷을 학원까지 보내기 힘들었던지라, 엄마도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턴 부업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그때부터 칠순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일을 하고 계신다. 이젠 쉬시라는 우리의 이야기에도 본인들의 노년 준비가 아직 안되었으니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일을 해야 한다고 계산중인 엄마.
어렸을 때는 나 혼자만 엄마를 곧 세상이라 여겼다고 생각해왔는데, 다 자라고 보니 엄마도 나를 자신의 전부라 믿어왔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 엄마는 그림 사건 이후로 종일 일에 치여 지쳐버린 몸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날에도 온 힘을 다해 나와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그렇게 강하고 꿋꿋하게 아이의 세상을, 그리고 자신의 세상을 지켜나갔다. /p18
엄마의 모양은 저마다 다 달라도 사랑은 모두 똑같이 크다는 사실을 진리처럼 마음에 품고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p40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하다 보니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크게 남는 것이 없더라..." /p55
자동차 공업사를 다니다 카센터를 시작하시면서 집에 생활비를 거의 가져다주지 못했던 아빠. 엄마는 그때부터 부업을 그만두고 시장에 분식집 자리를 알아봐서 식당 일을 시작하셨다. 그때부터 시작한 일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근 20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요즘은 간간이 투정 아닌 투정을 하기도 하신다. '난 이 나이가 되도록 친구들이랑 술 한잔할 시간도 없었고, 여행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고....' 엄마가 동네 마실 잠깐 나간 사이 아빠가 퇴근하시면 '너네 엄마 데리고 와라! 해 넘어간 지가 언젠데 아직 안 들어오고!'라며 우리를 내보내곤 하셨었는데, 지금 엄마를 보면 예전 하시던 계모임 말곤 친구분들이 없다.
내가 놓친 것은 단순히 전화만은 아니었다. 엄마의 시간을 놓치고 엄마의 말들을 잃게 했다. 때때로 어떤 말은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나면 그대로 형태를 잃는다. 엄마는 우리가 상처를 받을까 혹은 힘든 상황을 알게 될까, 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속으로 숱한 말을 삼켜왔다. 그 말들은 그대로 형태를 잃어 엄마 가슴 어딘가에 응어리로 남았다. 그렇게 이십 년 가까이 살아온 엄마에게 그럴 때마다 왜 바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내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왜 엄마는 한 번도 네가 멀어보기나 했냐고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책임의 주체를 찾아 헤매는 긴 생각 끝에 오늘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책임을 묻는다. /p64
갱년기라는 그럴싸한 프리패스권을 가졌지만 가족에게만큼은 이 찬스를 쓸 수 없다. 눈앞에 들이닥친 변화와 시련에 맞서 내 뒤로 숨어든 가족을 지키는 일에만 익숙했던 터라 가족 뒤로 숨는 일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갱년기를 살면서도 여전히 나는 우리 가족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 헤맨다. 이따금 조금 더 세심한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고 그 뒤로 숨어들 용기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p86
가족들에겐 까칠하지만, 밖에 나가시면 젠틀맨인 울 아빠. 어린 시절 아빠의 '여자?' 문제로 부모님이 들썩이기도 몇 번 이었다. 어딜 한번 나가려고 하면 '빨리빨리' , '짜증나'를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라 알아서 눈치를 보고 움직이는 것도 꽤 스트레스. 엄마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감당하고 사셨으니, 자식들은 우리는 그냥 맞춰드려야지....
" 앞으로 더 많은 슬픔이 찾아올 거야. 살면서 문득문득 생각나면 깊게 생각하면 되고 그러다 슬퍼지면 울어도 된다. 다만 사람들이 말하는 슬픔에 휘둘리지 않아야 해, 또 네 슬픔이 지속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은 오래 담아둘수록 깊어져서 가끔은 삶을 힘들게 할 거야.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 슬픔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과 같아. 얘랑 달리 너는 어른이 다 되어서 다행이구나."
살면서 무수히 많은 슬픔 앞에 놓였던 엄마는 남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제야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두 번의 장례를 치렀는지 알 것 같았다. 어른의 슬픔이라는 건 슬퍼도 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슬픔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울어도 되는 대에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돌본다는 의미다. /p112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를 읽으며 우리 엄마의 모습이 곳곳에 떠올라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울컥하는 마음에 쉬어가며 읽었던 글이었다. 저자는 엄마의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며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을까?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웠지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많았다. 아이들을 위해 워킹맘이 되어야 했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는 자신의 공간을 찾아 독립을 하게 된 엄마. 일련의 과정들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 엄마도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았을까? 정말 절실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생각이 많아진다.
십 년 단위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 나이대의 엄마와 나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맞아'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이 맴돌고 '완경', '갱년기'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숨가쁜 일상을 살아온 엄마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엄마의 삶 전체에서 정말 내가 좋아서 즐기며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네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엄마의 삶은 행복했을까?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보다 '은경 엄마', '쌍둥이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을 조정자 여사의 삶을 생각해보게 한다.
엄마, 아빠의 삶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셨는지, 때론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이해'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앞으로 얼마나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길진 않겠지.... 앞으로의 삶이라도 후회되지 않게 부모님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드리고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두 눈을 감고 늙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나이가 드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눈물이 많아지고 잠이 없어지며 키가 작아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쉽게 다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변하며 혼자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몇 해 전만 해도 여행길에 올라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를 떠들던 엄마는 이제 그 시간에 경치를 둘러보고 생각 속에 깊이 잠긴다. /p213
"엄마가 조금씩이나마 자신의 삶을 찾는 방법을
알아가기 시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