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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스노보드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니, 이미 시작해버렸다.
돌이켜보면 이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여정이 참으로 길었다.
얼마 전 동생들과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는 하다 하다 보드 타러 다닌 이야기까지 썼다고 이 책까지 소장용으로 구입해야 하는 건지 고민된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했었다. 다작하는 작가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그가 스노보드를 얼마나 열심히 탔길래, 책 한 권 분량으로 글을 썼을까? 2002년, 2003년 월간 제이노블이란 잡지에 연재된 글을 모은 책으로 글을 읽다보면 작가의 짧은 소설들도 만날 수 있다. 이 책? 소장가치의 고민이 무색하게 재미있다!!
리프트에서 내려 드디어 본격적인 보드 타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 내용을 일일이 적어봤자 아마 별 쓸모가 없을 것이다. 간단히 줄이자면 타기, 돌기, 멈춰 서기의 연습이었다. 나도 S편집장도 수없이 넘어졌다. 타고 내려가려다 넘어지고, 커브를 돌다가 넘어지고, 멈춰 서려다가 넘어지고, 넘어지기도 전에 미리 넘어지는 판이었다. 하지만 이게 아주 재미가 있었다. 44세와 43세 아저씨 둘이 눈범벅이 되어 콰당콰당 넘어지고 있으니 재미있지 않을 리가 없다....(중략)... "엇, 엇, 엇, 탄다, 탄다, 엇, 엇, 돌았다, 돌았다, 엇, 엇, 또 돌았다, 돌았다, 잘 타네, 잘 타네, 보드가 쭉쭉 나가네, 쭉쭉 나가네, 아저씨가 스노보드 쭈욱쭉 잘 타네." 설마 그런 식으로 입 박에 내서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의 부르짖음은 대략 그런 느낌이었다. /p16 (2002년 3월)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나도 이 시기 즈음 스키에 미쳐 살았었다. 2000년? 2001년 친구에게 이끌려 스키장에 발을 들인 이후 회사 스키동호회 가입해서 주말, 휴일이 생기면 스키장으로 달려가기 바빴었던 시절이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시즌이 시작되는구나라는 두근거림에 시즌권을 준비하고 장비를 점검하고, 주말마다 강원도 지역의 적설량을 검색하고 스키장에서 제공하는 웹캠으로 스키장 슬로프의 상태를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 주말 이틀을 꼬박 채워 타고 또 타도 힘든 걸 몰랐고 조금씩 늘어가는 스키가 재미있어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마음... 나도 안다.
"네, 잘 봤습니다. 잘못된 습관도 없고, 아주 좋아요. 다만 몸이 좀 앞으로 숙여지는군요. 턴의 후반에는 중심을 뒤쪽으로 옮기도록 해보세요." 스피드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앞쪽에 둔 것인데 계속 그 자세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인 모양이다. 혼자 연습해서는 결코 알지 못할 결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레슨을 받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밖에도 잘못된 부분을 이것저것 지적해주었다. 거기에 새로운 테크닉도 배웠다.
"네, 좋아요,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잘 타시네요."
마쓰무라 씨의 말에 마음이 턱 놓였다. 책이나 비디오로 배워서는 내가 과연 제대로 타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독자들 중에 만일 스노보드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분이 있다면 꼭 정식으로 강사에게 배울 것을 추천한다. /p107~108 (2003년 2월)
혼자 연습도 어느 선에 올라서면 강사의 지도가 필요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또 새로운 걸 찾게 된다. 시즌이 아닌 비시즌엔 인라인스케이트, 수상스케이트를 타며 시즌을 기다리는 게 아마도 겨울 스포츠인 스키, 스노보드를 즐기는 이들의 비슷한 패턴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5~6년 정도? 겨울을 미친 듯이 즐겼던 것 같다. 2002년 이후부터 국내에도 스노보더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던 때라 슬로프에 올라서면 스키어들과 보더들의 묘한 신경전도 꽤 있었는데... 슬로프 나들이를 하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져드는 과정은 과거, 나의 어느 한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두근거리는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 손에 즐거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어느 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꽤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이렇게나 겨울스포츠를 즐기면서도 작품도 꾸준히 집필했다니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16년 전의 글이라 시간차는 꽤 크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눈 깜짝할 사이에 푹 빠져버린 '아저씨 스노보더'의 글은 읽는이의 마음을 하얀 설산 앞으로 슬금슬금 데려다 놓는다. 겨울 스포츠 다시 시작해볼까?
<연애의 행방>, <눈보라 체이스>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자타공인 겨울 스포츠 마니아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머러스한 취미생활
아저씨 스노보더의 설산 무한도전기!!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