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교토 (꽃길 에디션)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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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음미하는

한 달의 느긋한 일상 산책



   따뜻한 지역에선 꽃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봄, 내가 사는 지역은 봄소식이 왜 이리도 더딘지 바람소리가 봄이 오는 소리보다 더 신나는 3월을 보내고 있다.  꽃 소식보다 먼저 읽게 된 봄 같았던 주아현의 <하루하루 교토>.  우연히 즐겨보던 블로그에서 도쿄 여행기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일본, 그렇게 우연한 스침은 관심이 되었고 『다카페 일기』일본의 평범한 가족의 사진집을 보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에 관련된 영화, 책, 만화, 블로그등을 하나둘 검색하고 봐가면서 2015년 어느 날 첫 오사카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3년 동안 열 번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시간차를 좀 두고 도쿄만 두 번을 여행했는데 북적이는 도심도 좋지만, 도심을 벗어난 조용한 골목길, 신사, 등이 더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여행자지만 현지인처럼 느린 거름으로 그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천천히 골목을 거닐고, 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서점에 들러 책을 펼쳐보는 행위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분명 특별한 게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마 저자도 그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감정을 길게 느껴보고 싶어 한 달간 교토에서 살아보기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까?  딱히 일정이랄 것도 없이 그날그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때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고, 전차를 타고 아무 곳이나 내려 걷기도 했다.  현지인들처럼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느지막히 일어나 먹는 아침, 단골인 듯 들러 밥을 마시고 차를 마시던 작은 카페들...


 짧은 여행에선 느껴보지 못할 여행지에서의 일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여행은 아니지만 그녀가 했던 여행으로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지 않을까?  <하루하루 교토, 꽃길 에디션> 가득 담긴 소소한 교토 한 달 살이, 그리고 감성 가득한 사진들은 봄바람 부는 계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들썩임을 불러올지도 모르겠다.  몇 번이나 교토 여행을 계획했지만 아직도 떠나질 못하고, 가끔 펼쳐보는 가이드북이 무색했는데,  가이드북 옆에 나란히 꽂아두고 언젠가 가게 될 여행지에서 그녀가 갔던 장소들을 만나면 더없이 반가운 마음이 들 것 같은 책이었다.



#하루하루교토 #주아현 #상상출판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교토에 대한 작은 동경으로 남았으면 한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여느 멋진 여행에세이들처럼 삶의 깨달음이나 대단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어도, 살면서 한번쯤 가볼 만한 도시인 교토와 나라에 대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인상을 가졌으면 좋겠다. /prologue



  나는 주로 혼자 밥 먹을 때 주변의 시선이 불편해서 벽을 보고 앉는 편인데 일본에 와서는 혼자 앉아도 늘 홀을 바라보고 앉았다.  혼자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이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이곳 사람들의 문화가 어쩌면 그동안 혼자서 밥 먹는 걸 불편해했던 나의 습관을 바궈준 것 같다.  /p078



  누군가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나의 위시리스트를 세울 필요는 없다.  너무 사소해서 놓치고 있던 것을 적어보자.  여행에선 그 사소한 것들도 크게 다가온다.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작은 것이라도 다시 바라보는 위시리스트.  누군가는 '고작'이라고 말할지라도 내게만 가치가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은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p122



  나의 발자국 소리만 울리는 교토의 골목골목을 사랑한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잔잔한 배경음악, 손님들의 백색 소음, 모든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교토의 카페를 사랑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오는 강가를 사랑한다.

동네를 걷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작은 놀이터를 사랑한다.

그렇듯 이번 여행은, 온전히 그곳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잔잔하고 소박하며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p189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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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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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은 불쑥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너무도 오랜만에 읽는 정이현 작가의 글.  출간 당시부터 지금도 꽤 많은 이들의 손으로 입으로 오르내리던 글이었지만 부러 읽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읽고 싶을 때 직접 문장을 짚어가며 읽고 싶다는 고집 때문이었을까?  꽃샘추위 끝자락을 넘나는 봄의 시작에 <우리가 녹는 온도>를 읽기 시작했다.  총 10편의 이야기 + 산문 형식으로 진행되는 글은 짧은 이야기 뒤에 붙이는 작가의 담담한 에세이를 담고 있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단편과 저자의 조금 긴 댓글 같은 에세이는 단편이라는 호흡을 견디지 못하는 내게,  새로운 즐거움을 알려주기도 했던 책이다.  사실 앞에 실린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글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뒤에 실린 저자의 에세이로 앞에 읽었던 이야기가 스펙트럼처럼 퍼져 내 삶에 와닿는 느낌이랄까?


  10년전 <너는 모른다>로 처음 알게 되었던 작가, 아마 마지막에 읽었던 책이 9년 전 <달콤한 나의 도시>였던 것 같다.  그녀의 글에 대한 느낌이 너무 오래되어서 일까?  새로운 작가의 글을 읽는 것처럼 새롭고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눈사람이 녹는 걸 알면서도 정성스럽게 만들고 꾸미는 마음,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문득 그동안 스쳐갔던, 또는 놓치거나 놓았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한때는 그 누군가에게 나도, 나에게도 그 누군가가 소중한 이였겠지... 그들은 나는 우리는...



처음도 끝도 아닌, 처음과 끝을 포함한 여러 개의 조각들에 관하여...(프롤로그)



#우리가녹는온도 #정이현 #달



  세상의 모든 어리고 늙은 동물들과, 그들의 검고 약하고 동그란 눈망울에 대하여, 인간의 언어로는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대하여, 인간의 눈으로는 완전히 감지할 수 없는 어떤 시야에 대하여, 거기 고인 암흑과 가느다란 빛줄기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은우는 제 곁에 엎드린 작은 생명체의 메마른 등뼈를 밤새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아직 함께여서 다행이었다. /p019~020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에게서 '무슨 말을 듣든 다 괜찮다는 말을,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는 말을, 여하튼 언제나 당신의 진심을 말하라고.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는 '좋은 관계'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p044



  상대방이 싫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그 옆의 내가 싫어서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 옆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어색할 때, 혹은 그 모습이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변해갈 때 우리는 이별을 결심한다.  일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일 년 후의 삶이 까마득한 암흑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게 모두 '그 사람과의 관계'탓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내 탓'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과는 이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이별한다.  가장 가까운 옆 사람과 헤어지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p093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었다면 모두 백 개의 텍스트가 된다는 말.  다들, 따로따로 읽는다.  따로따로 느낀다.  개별적으로 살고, 개별적으로 사랑한다.  이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별에 이르는 과정, 이별을 결심하거나 받아들이는 마음, 이별과 대결하는 태도도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별이라는 점, 온전히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p124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기어코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 작게 기록해 둔다.  /p170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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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 독립근무자의 자유롭고 치열한 공적 생활
서메리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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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체질은 아니지만

막무가내로 퇴사하기도 싫은

당신이 읽어야 할 독립근무 이야기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지만, 막상 시작한 회사일은 내 취향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많은 취준생을 뒤로하고 어렵게 입사한 회사.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꽂히는 월급을 보고 버텨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탈 회사를 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기술 하나 없던 사무직 퇴사자의 프리랜서 도전기, 하지만? 정말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녀에겐 잠재적인 프리랜서의 기질이 조금쯤은 있었다.  나름 영문과 출신에 번역도 어느 정도 가능했고, 일러스트(그림)도 취미로 꾸준히 하고 있었으며, 법률 관련회사 사무직 경험도 있었다.  퇴사를 결심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  프리랜서, 나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퇴사 디데이를 정하고 차근차근 퇴사 이후의 일도 계획하기 시작했다.  수입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최소 1년 이상의 생활비를 잔고로 가지고 있어야 하며, 4대 보험이 있을 때 금융권의 마이너스 대출을 최대로 신청해두었다.  한 달의 시간을 여유롭게 쉬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고, 번역가 과정을 들으며 프리랜서로서의 준비를 착실히 준비해 갔다.  물론 처음부터 일이 잘 되었던 건 아니다.  장당 3500원의 번역일을 받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생계가 불안하다고 느껴졌을 땐 잠시 직장생활을 다시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히 프리랜서로 입지를 다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일러스트를 그려 블로그에 글 올리기도 시작했다.  기회는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찾아왔고 그렇게 프리랜서로 일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 많은 갈등을 하게 된다.  생각만 하고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부딪혀보고 선택에 대한 결과과 어떻게 나타났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든 세상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길이 있기에 다양한 선택지에서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선 때론 결단의 순간도 필요하다.  프리랜서의 삶은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았다.  조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좀 덜하고,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무한정 쉬는게 프리랜서가 아니라 어쩌면 꼬박꼬박 월급을 받은 직장인들보다 더 치열하게 영업도 해야 하고, 일에 대한 결과도 만들어내야 하는게 프리랜서가 아닐까?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글이라, 난 정말 회사 체질이 아닌가 봐!! 하고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글이었다.




#회사체질이아니라서요 #서메리 #미래의창




  일이 아니라 조직이 싫다면 조직을 떠나야 하고, 조직을 떠나려면 이직이 아니라 ‘프리 선언’을 하는 편이 이치에 맞을 테니까.  딱 한 가지 현실적인 조건만 빼면 프리랜서는 지금 이 시점의 내게 꼭 맞는 결론으로 느껴졌다.  자격증 하나, 심지어 운전면허조차 없는 문과 출신에 줄곧 사무직으로만 일해 온 내게 프리랜서로 일할 기술이 전혀 없다는 딱 한 가지 조건만 빼면. /p31~디33



  내가 이 바닥에 뛰어든 목적은 쇼핑이나 여행에 쓸 용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여유자금으로 재테크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남에게 손을 벌리거나 저축을 까먹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면 일을 몇 건을 했든 진짜 프리랜서가 아니라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p185



  무제한의 자유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그만큼 큰 불안이 존재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보호해 줄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편안한 차림새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프리랜서는 사실 한가로운 모습 뒤에 돈벌이에서 오는 초조와 불안, 어쩌면 분노와 굴욕감까지 억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p211



  프리랜서를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자유라는 동전의 뒷면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현직 프리랜서 입장에서 문제 극복에 반드시 필요한 현실 인식을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 프리랜서는 자유롭다. 하지만 그 자유에는 나름의 고충이 따르고, 그중에는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부당한 것들이 적지 않다. /p27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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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 - 매일매일 소설 쓰고 앉아 있는 인생이라니
고연주 지음 / 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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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약간 비스듬한 사람,

세상에서 약간 밀린 기분,

세상이 약간 우스운 느낌, 

나쁘지 않아.



  나도!! 라는 동의를 먼저 시작하고 읽기 시작한 <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은 고연주 작가의 3번째  에세이다.  어려서부터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써서 글 쓰는 게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저자는 사는 법을 알아버려서,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소설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 뭐 있나?  가끔은 쓰는 것과 사는 것을 혼동해 소설처럼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  얇고 가볍지만 쉽게 넘길 수 없어 책장을 뒤적이기도 했다.   지난 시간들을 풀어내는 저자의 글은 무겁지 않지만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문장을 마주할 때면 며칠이고 그 주변에서만 맴돌며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글을 읽는 중간중간 마주한 평범하지 않았던 그녀의 유년시절이, 청소년기에 마음이 쓰였던 걸까?  지금은 작가로 글을 쓰며, 때론 훌쩍 여행을 떠나 여행자로 살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아직도 과거의 한 부분에 매여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보다 단단해 보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의 삶을 글로 쓴다면...’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는데, 써 볼 용기는 나지 않더라.   그녀의 다음 글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진한 소설..



#인생참재밌는데또살고싶진않음 #고연주



나도 모국어가 한국어인데.  나도 이 사람이 쓰는 단어 다 아는데, 왜 영어 독해할 때 그런 기분 있잖아요.  이 단어도 알고 저 단어도 아는데 얘네가 연결이 안 돼.  분명히 그 문장 안에 있는 단어 다 아는데 문장은 이해가 안 되는 거야.  희안하게.  그런 거예요.  이 단어도 알고 저 단어도 아는데 난 왜 얘네가 연결이 안 되지. /p42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다.  나를 너무 많이 쓰고 있어./p52



나는 자전적인 소설에서 썼던 문체를 가져다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에 넣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내 인생도 나한테 농담을 하는데 그러고도 아무래도 나는 남의 인생에는 농담을 못하겠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함부로 농담하면 안 돼.  소설이라는 걸 쓸 자세가 안 돼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진정한 공감은 하지 못하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연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누굴 연민하고 자시고 할 계제가 못 될 텐데.  연민이 나를 망쳤는지도 모르겠다. /p85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인생에 도무지 새로운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읽은 적이 있다.  그날이 그날 같아서.  우리의 기억은, 비슷하거나 같은 것을 한데 묶어서 하나로 처리하고 새로운 것만 기억하는 거라서, 새로운 일이 하나도 없다면 기억할 게 별로 없으니까.  어렸을 땐 세상 그렇게 신기한 게 많아서 다 처음이니까 기억할 게 많아서, 우와, 오늘 한 게 이만큼이야,  시간이 이만큼 지났네, 했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이제 뭐 세상에 알 거 모를 거 다 알고 놀라운 것도 새로운 것도 줄어드니까, /p109



가장 유용한 것의 가장 무용한 것을 배우고 싶어, 종종.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배우 고서 어디에도 써먹지 못했으면 좋겠다. /p148



우리에게 그런 과거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그러고도 망쳐버린 과거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어떤 과거들은 언어로 표현되고,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나의 슬픔은 왜곡될 수밖에 없어서 나는 도무지 과거를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다. /p157



우리는 결국 서로 다른 언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 언어 밖의 것들은, 외롭게도 우리가 채워나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는 결국 오해들로 똘똘 뭉쳐있다고 하더라도 그 오해가 약간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내가 그 아름다운 오해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사실도 이 단어에 좀 묻어갔으면 좋겠다.  /p233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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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의 주문제작 만화
키크니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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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을 잘 모르다 보니 가끔 낯선 책을 마주 하곤 한다.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이 그런 책이었는데 SNS 20만 팔로워를 웃고 울린 반전 개그 만화를 그리는 키크니의 첫 책이 되시겠다.  최초의 '댓글 주문형' 개그 만화로 이미 꽤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9년 차 일러스트레이터 이자 1년 차 풋내기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아!!! 진짜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래!!! 단어를 잘 못 읽은 줄 알곤 몇 번 다시 읽었던 단어, 책을 펼치기 전에 휘리릭 펼쳐보았는데 댓글이 있고 뒤 페이지에 그에 해당하는 그림이 등장한다.  이걸 이걸 모르곤 나란히 읽었으니.. 이건 뭐지??? 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다.   (글의 순서는 앞 페이지에 댓글의 내용이, 뒤 페이지에는 댓글에 대한 한 컷의 그림이 수록되어있다.)


키크니를 몰라도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 솔직히 좋아하는 그림체가 아니어서 그냥 웹툰이겠지, 하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웬걸!  이 작가 뭐지?  팔로워들과 댓글로 소통하며 댓글 확인 후 그에 맞는 한 컷의 그림을 그려내는 키크니.  이건 센스, 드립력, 감성, 섬세함 등등 모두가 조합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했다.  이 댓글엔 어떤 그림이 등장할까?라고 잠시 상상해 봤는데 번번히 맞추지 못했다.  (진심 창의력 대단!!!)  질문의 허를 찌르는 매력은 말을 말아요!!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다. 


극한 일상이든 / 격한 소망이든 / 찐한 사랑이든 / 어떤 가족이든 / 쿨한 농담이든 / 묘한 상상이든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일단은 해보겠지만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다!  이런 패기 덕분일까?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바램, 고민을 때론 가볍게, 때론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키크니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앞으로도 계속 소통하며 그림을 그려가고 싶다는 그는 한 200년 정도? 열심히 한 번은 웃고 한 번은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한다.  댓글 주문 제작만화, 이런 장르는 처음이지? 키크니의 주문 제작 만화 읽어보시겠습니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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