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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故박완서 선생(1931~2011) 8주기
‘사람다운 삶에 대한 추구’ 라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보여준 박완서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책으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29인의 작가가 개성 넘치는 재치가 담긴 콩트 오마주.
강화길, 권지예, 김사과, 김성중, 김숨,
김종광, 박민정, 백가흠, 백민석, 백수린,
손보미, 오한기, 윤고은, 윤이형, 이기호,
이장욱, 임현, 전성태, 정세랑,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조남주, 조해진, 천운영
최수철, 한유주, 한창운, 함정임
박완서 선생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29인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모였다. 문득, 난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었던가? 생각해보면 기억이 가물가물, 아마도 꽤 오래전 읽었거나 읽지 않은 듯... 작가들이 기억하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어떤 작가였길래 이렇게 작가들이 한데 모을 수 있었던 걸까? 작가들이 박완서 작가를 기억하는 글은 그립고 또 그리운 힘들 때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엄마'를 회상하는 듯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난한 쉰 살의 독신 노처녀는 세상 천지에 홀로된 고아의 외로움과 서글픔을 깨달았다. "엄마! 안아줘. 날 좀 안아줘, 엄마" 하고 조르던 늙은 아기였던 망령 난 엄마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그녀를 괴롭혔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외동딸을 키우며 살아온 어머니는 한평생 얼마나 따스한 사랑과 위로의 품이 그리웠을까.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꿈에서라도 어머니를 만나면 몸이 부서져라, 뜨겁게 안아드리고 싶었다. /p32 권지예
만 원에 일곱 장하는 돈가스는 '가정의 평화'라는 성찬식 풍경을 완성하며 저녁 식사로 준비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미움을 감춘 채, 가엾고 무해한 자기 딸의 평화에 금이 가지 않도록 고기를 질겅질겅 씹을 것이다. 이것이 비극보다 오래가는 시트콤의 힘이라고, 나 자신의 인생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얼마나 산문적인가. /p53 김성중
29인의 작가의 글을 책 한 권에 담다 보니 한 작가의 분량이 길지 않다. 호흡이 짧은 글임에도 글 전체의 흐름은 끊김이 없어 단편을 모은 글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29명의 문체도 작가의 스타일도 다를 텐데 글 전반에 녹아든 '사람, 삶'에 대한 생각을 같이 했기 때문일까? 짧은 글이라 생각되어 가벼운 생각으로 읽으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글에선 잠시 숨 고르기를 하기도 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변을, 사람을 한 번쯤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글.
그는 그 레고 박스를 신용카드로 구입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조금 화가 나 있었다. 머릿속에선 자꾸 반복, 반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봄이 다시 돌아오고, 또 봄이 돌아오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그렇게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것이고, 늘 집세와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진땀을 뺄 것이며, 어쩌다가 봄 점퍼 한번 구입할 때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고려할 테고, 그러다가 다시 어느 봄이 돌아오면 허망하게 몸이 아파오겠지...그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껏 아들에게 레고 하나 사주면서 그런 생각을 반복하는 자신이 못 미더워, 그는 자신에게 더 화를 냈다. /p181 #이기호
나이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는 일이 끊길까 봐 고민이 되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지워지지 않기 위해 아라는 언제나 치열해야 했다. 가만 서 있으면 파도가 발밑의 모래를 끌어가듯이 자꾸 토대가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싸우고 또 싸워야 족적을 남길 수 있으리란 걸 잊을 날이 없었다.
그래도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박완서 선생님이 계시는 듯했다. 세상을 뜨고 나서도 그렇게 생생한, 계속 읽히는 작가가 있다는 게 좋은 가늠이 되었다. /p229 정세랑
"엔딩이 어떻든, 언제나 다시 시작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 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작가들의 개성이 담긴 문장들을 짚어가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을 다 읽으며 책장을 덮게 될 것이다. 너무 빨리 읽어낸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한편, 읽으며 갈무리한 문장들을 다시 짚어보며 나의 생의 결도 보듬어보게 된다.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일상들은 괜찮지 않은 순간이 더 많을 것이다. 괜찮다... 라는 위로와 스치듯 반짝이게 해주는 순간이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게 아닐까? 우리가 또 언제 읽어볼 수 있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29인의 작가들이 한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자는 취지에서 작성한 책을....부디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은 글이다.
일상이라는 커튼이 휙 젖혀질 때
번쩍, 비춰 보이는 짧고도 강렬한 '생의 맛!'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면, 나는 늘 박완서 선생님을 떠올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한참 그녀의 작품을 떠올리고 있다 보면 위로가 된다. 잘 할 수는 없어도 계속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으로 충분히 위로가 된다. #강화길
인생은 나의 것, 활자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해준 분, 소녀 시절의 꿈과 희망을 오롯이 환기하는 분. #박민정
흙을 주무르다 까매진 손톱 밑을 며칠 방치하면 거기서 푸릇한 싹이 돋아나지 않을까, 언젠가 박완서 선생님의 이 고백에 홀딱 넘어간 적이 있다. 활자 몇 알이 내 안의 후미진 곳마다 들어와서 수상한 발아를 시작했으니, 이제 나는 맨손으로 책을 펼칠 때도 맨손으로 흙을 만질 때만큼이나 다부진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윤고은
결코 쉽게 쓰일 수 없는 문장들이 쉽게 읽힐 때, 어떤 배려 깊은 다정함도 함께 읽게 된다. #임현
소설은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는”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그 가치를 보여주신 분 #조경란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