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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 - 매일매일 소설 쓰고 앉아 있는 인생이라니
고연주 지음 / 달 / 2018년 2월
평점 :

세상에 약간 비스듬한 사람,
세상에서 약간 밀린 기분,
세상이 약간 우스운 느낌,
나쁘지 않아.
나도!! 라는 동의를 먼저 시작하고 읽기 시작한 <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은 고연주 작가의 3번째 에세이다. 어려서부터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써서 글 쓰는 게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저자는 사는 법을 알아버려서,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소설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 뭐 있나? 가끔은 쓰는 것과 사는 것을 혼동해 소설처럼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 얇고 가볍지만 쉽게 넘길 수 없어 책장을 뒤적이기도 했다. 지난 시간들을 풀어내는 저자의 글은 무겁지 않지만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문장을 마주할 때면 며칠이고 그 주변에서만 맴돌며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글을 읽는 중간중간 마주한 평범하지 않았던 그녀의 유년시절이, 청소년기에 마음이 쓰였던 걸까? 지금은 작가로 글을 쓰며, 때론 훌쩍 여행을 떠나 여행자로 살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아직도 과거의 한 부분에 매여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보다 단단해 보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의 삶을 글로 쓴다면...’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는데, 써 볼 용기는 나지 않더라. 그녀의 다음 글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진한 소설..
#인생참재밌는데또살고싶진않음 #고연주
나도 모국어가 한국어인데. 나도 이 사람이 쓰는 단어 다 아는데, 왜 영어 독해할 때 그런 기분 있잖아요. 이 단어도 알고 저 단어도 아는데 얘네가 연결이 안 돼. 분명히 그 문장 안에 있는 단어 다 아는데 문장은 이해가 안 되는 거야. 희안하게. 그런 거예요. 이 단어도 알고 저 단어도 아는데 난 왜 얘네가 연결이 안 되지. /p42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다. 나를 너무 많이 쓰고 있어./p52
나는 자전적인 소설에서 썼던 문체를 가져다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에 넣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내 인생도 나한테 농담을 하는데 그러고도 아무래도 나는 남의 인생에는 농담을 못하겠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함부로 농담하면 안 돼. 소설이라는 걸 쓸 자세가 안 돼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진정한 공감은 하지 못하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연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누굴 연민하고 자시고 할 계제가 못 될 텐데. 연민이 나를 망쳤는지도 모르겠다. /p85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인생에 도무지 새로운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읽은 적이 있다. 그날이 그날 같아서. 우리의 기억은, 비슷하거나 같은 것을 한데 묶어서 하나로 처리하고 새로운 것만 기억하는 거라서, 새로운 일이 하나도 없다면 기억할 게 별로 없으니까. 어렸을 땐 세상 그렇게 신기한 게 많아서 다 처음이니까 기억할 게 많아서, 우와, 오늘 한 게 이만큼이야, 시간이 이만큼 지났네, 했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이제 뭐 세상에 알 거 모를 거 다 알고 놀라운 것도 새로운 것도 줄어드니까, /p109
가장 유용한 것의 가장 무용한 것을 배우고 싶어, 종종.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배우 고서 어디에도 써먹지 못했으면 좋겠다. /p148
우리에게 그런 과거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그러고도 망쳐버린 과거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어떤 과거들은 언어로 표현되고,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나의 슬픔은 왜곡될 수밖에 없어서 나는 도무지 과거를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다. /p157
우리는 결국 서로 다른 언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 언어 밖의 것들은, 외롭게도 우리가 채워나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는 결국 오해들로 똘똘 뭉쳐있다고 하더라도 그 오해가 약간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내가 그 아름다운 오해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사실도 이 단어에 좀 묻어갔으면 좋겠다. /p233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