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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평점 :

그는 독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독'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략)... 이것은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다시 말하여 그가 들려준 이야기이자 내 속으로 들어와 나의 것이 된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프롤로그 27~30p.
그는 어쩌다 온몸이 망가진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한 것일까?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있고, 화상을 입은 듯 갈라터지고 발진으로 뒤덮인 피부와 손, 발은 퍼렇게 변색된 채 근육이 뒤틀린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는 남자. 피부의 골격으로 보아 삼십 대 후반인 것 같았지만 병원에서도 진단을 내리지 못한 채 위세척과 관장을 반복하며 피부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고 항히스타민제를 투여하며 경과를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침대의 명패로 알게 된 그의 이름은 '조몽구'.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쉬지 않고 이야기하던 조몽구는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중얼거리는 것도 같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두려움과 매혹 ; 조몽구의 유년시절 부모님과 학창시절 / 도취와 환멸 ; 어머니의 죽음, 대학생활과 수호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독에 대해 점점 빠져들게 되고, 군 생활 / 해독과 정화 ; 복학과 졸업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177p.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다만 올바른 용량만이 독과 약을 구별한다."
요컨대 독과 약은 서로 대립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과학적으로는 차이가 없고, 다만 얼마나, 어디에서, 무엇과 함께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거나 약이 된다는 것이었다.
519p.
"이제 네 이야기를 들려줘"
"그래,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들은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상한 이야기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 자신의 이야기인지 알지 못하겠어."
출간 전 연재를 읽고 책의 출간을 기다렸던 작품이었다. '독'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니, 실제 책을 받아들곤 꽤 묵직하고 빼곡한 500여페이지가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대가 되기도 했는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왜?라는 의문에 맴도는 글이었고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독'의 종류가 있다는데 놀랐으며 '독'과 결합된 개념인 '약'의 (약은 독과, 그 독을 중화시키는 또 다른 독) 키워드가 상당히 촘촘하게 이야기 전반에 고르게 퍼져 있어 읽다 보면 점점 중독되어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글을 읽으며 중독되었던 걸까? 맹독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그가, 독에 감염되었으나 살아있는 나에게 남기는 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에, 그리고 그가 성장하면서 관계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이렇게나 '독'과 닿아있는 삶이라니 글을 읽으며 피로함이 몰려오면서도 그의 인생에 빠져들게 된다. 23페이지에 달하는 프롤로그를 읽으며 이미 조금씩 중독되어 책장을 멈출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읽고서도 며칠을 '조몽구'에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지금까지 읽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그의 이야기는 끝났고 이후의 삶은 독자들의 몫. 읽으면서 문장을 짚어가며 필사하고 생각하면서도 '좋다...'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던 #독의꽃. 다른이들의 서평을 읽어봐야겠다.
"일상의 마비에서 풀려나라.
그러려면 네 마음이 미칠만큼 고양되어야 한다.
겁내지 마라. 그러고 나면 각성이 따라올 테니."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78p.
"그날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던 거야. 독은 내게 다정하고 친숙했어. 비로소 나는 내가 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다른 존재에게는 독이라는 것도 알았어. 하지만 또한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의 삶과 세상의 독이 서로 침투하는 음친한 세계를 보았던 거지. 그 두려운 세계에서 내내 살아가야하는 운명,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서 격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어."
🔖100p.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314p.
독살의 역사에서 책을 이용하는 전설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는 없을 터이다. 책장에 독을 묻혀놓아서 손끝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읽을 때 독이 몸속으로 흡수되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책 속의 내용이 재미있으면 그 사람은 그만큼 더 빨리 죽기 마련이다. 그렇듯이 그는 이야기 갈피갈피에 거짓과 과장과 야유와 독설을 섞어놓아서, 그것들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가 독처럼 작용하게 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520~522p.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그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독의 꽃이야.”
”내 이야기는, 한 방울의 물과도 같은 한 인간의 생명, 독일 수도 있고 약일 수도 있는 그 물방울 하나의 생성에서 사멸에 이르는 작은 역사에 대한 거야.”
그렇게 나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이야기의 끝이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원래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 끝나는 것은 다만 나의 이야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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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