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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평점 :

대략적인 줄거리도 모른 채, 이 책 참 좋더라... 라는 이야기에 구입한 책들이 책장에 꽤나 꽂혀있다. 그 책들 중에도 <도쿄타워>는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채 근 10년이 흘러 개정판으로 읽게 되었다. 20대 중반부터 일러스트, 칼럼 연재, 구성 작가, 디자이너, 뮤지션, 사진가, 소설가, 배우, 방송 음악 제작까지 닥치는 대로 일한 경력이 전설처럼 남아있는 릴리 프랭키는 '일이 들어오면 모조리 받아들인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라는 정신으로 일을 해왔다고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한 영화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총 8편의 영화에 출연해 영향력 있는 배우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전차나 버스 안에서 읽는 것은 위험하다.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될 테니" 라는 유명한 입소문을 남긴 이 책은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책이다. <도쿄타워> 어떤 글이길래? 이 글은 저자인 릴리 프랭키가 엄니가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쓰기 시작한 글이다. 엄니 아부지의 짧은 결혼 생활, 아버지는 그들의 삶에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독특한 가정이었다. 부모님이 왜 따로 살기 시작했는지, 서류상의 정리는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필요할 때 엄니는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다. 요술램프도 아닌데 필요한 게 생기면, 갖고 싶은 게 있을 때면 어떻게든 준비해주었고 엄니 곁을 떠나고 싶어 할 때도 오히려 '남자라면, 사내라면!!'이라며 등을 떠밀어주던 엄니였다.
저자의 독백 같은 글을 읽으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아버지는 둘째치고 엄니의 삶은?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어머니의 자매간 우애가 좋아 저자가 몰랐던 엄니의 삶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가고 싶어 했던 도쿄에서 그야말로 바닥을 치다가 엄니가 함께 살면서 웬일인지 일이 잘 풀리게 돼서 살만해졌다 싶을 즈음 엄니를 덮친 병마는 모자간의 애틋함도 무색하게도 엄니는 힘든 투병생활을 마감했다. 엄니의 죽음을 아들만큼이나 슬퍼하는 지인들과의 장례중에도 엄니는 유쾌한 분위기를 좋아했을 거라며 먹고 마시며 엄니와의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엄니와 이별했다.
왜 늘, 후회는 뒤에 오는 걸까?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이 절실하지 않은 걸까?
이 책을 읽는 중에, 일을 하다 아빠랑 감정 상하는 일이 있어 눈도 제대로 맞추지 지 않았던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 제가 죄송해요.' 이 한 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는 자식과 그 뒤에서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며 자신들의 마지막을 조용히 준비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엿본 것만 같아 덜컥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닥칠 일이겠지... 죽음이라는 이별은... 부모 앞에선 안타깝기만 한 자식인 것을... 부모님의 눈높이도 맞추지 못한 채 나잘남이 앞서 세상 밖으로 튕겨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몇 번이고 꺼내 읽으며 웃고 울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읽으세요, 이 책은 꼭...
모두들 참 대단하다, 모두 애쓰고 있구나.
사람의 목숨에 끝이 있는 한,
사람이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한,
'상실'이라는 슬픔과 공포를 마주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5p.
5월에 어느 사람은 말했다.
그 도쿄 타워를 바라보며 쓸쓸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저 우두커니 선 채 한낮을 채색하고 밤을 화려하게 비춰내는 그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래서 더욱더 동경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텅 빈 도시에서 홀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늠름하게 빛을 발하는 그 풍정에서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휩쓸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친해졌다 배신하며 서로 속고 속이며 넘어가는 우리는 그 고독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끌려드는 거라고.
🔖36~37p.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건 간단한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말이 되면 그 관계는 '부모자식 사이'만큼 간단하지 않다.
'부모자식'은 계속해서 덧셈이지만 '가족'은 더하기뿐만 아니라 빼기도 있는 것이다.
'부모자식'보다 더욱더 간단하게 이루어져 버리는 '부부'라는 관계.
그 간단한 관계를 맺은 것뿐인, 장난질을 친 남자와 여자가 일이 흘러가는 과정상 부모가 되고, 어쩔 수 없이 '가족'이라는 어려운 관계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77p.
아부지와 별거하여 이 동네에 온 뒤로 벌써 몇 년이 지나고 있었다. 엄니는 부부간의 문제와 자신의 앞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었을까.
기껏해야 약간의 교제 기간과 기껏해야 약간의 결혼 생활을 거쳐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보내게 된 데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 키는 자꾸 엄니와 비슷해져 가고 엄니는 자꾸 나이를 먹어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한참 떨어진 도시에서 사는 아부지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82p.
어렸을 때 상상해보는 우리 자신의 미래.
가수나 우주 비행사는 못 되더라도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버지'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히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당연한 일'이 내게만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 있다. 누구에게라도 일어나는 '당연한 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까지 저절로 찾아오는 '당연한 일'이 나에게만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전혀 힘든 일이 아니었을 터였다.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 아니었을 터였다.
남에게는 '당연한 일'이 나에게만은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된다. 세상의 일상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평범한 현상이 나에게는 완전히 '기적'으로 보인다....
🔖183p.
돌연 아무런 맥락도 없이 찾아오는 죽음도 있었다. 그 죽음을 의식하면 살아있는 것조차 두려워진다. 어떤 그리움도 미래도 그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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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p.
엄니라도, 물론 아부지도, 모두가, 모든 부모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였던 게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와 똑같이 얼치기 짓을 하고 다닌 나날과 달콤새콤한 연애시절을 경험한 끝에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된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뭔가 낯 뜨겁기도 하고 또한 귀엽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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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p.
누구나 예전에는 크게만 보이던 어머니의 존재를 조그맣게 느끼는 순간이 다가온다.
크고 부드럽고 따스했던 것이 작고 꺼칠꺼칠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어머니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자식이 그만큼 커버렸기 때문도 아니다. 분명 그것은 자식을 위해 애정을 토해내고 또 토해낸 끝에 풍선처럼 쪼그라든 여인의 모습일 것이다.
5월에 어느 사람은 말했다.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를 했어도 언젠가는 분명 후회할 것이다. 아,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줄 것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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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p.
내 가장 소중한 사람. 단 한 사람의 가족.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살아준 사람.
내 엄니.
엄니가, 죽었다.
🔖435p.
지금껏 엄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분명하게 해본 적이 있었던가.
작은 일, 큰 일, 하루하루의 일, 지금까지의 일. 그때그때 반드시 했어야 할 감사의 말. 언제부턴가 당연한 일처럼 받기만 한 채, 마지막까지 분명한 감사의 뜻을 전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껏 고생만 시키고 그저 받기만 하고 내내 걱정만 끼쳤던 것, 그 모든 것을 언젠가 갚을 거라고 생각하며 미뤄두었다. 그러다 결국 은혜를 갚기는커녕, 고맙다는 감사의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엄니를 보내고 말았다.
희망사항이던 '언젠가'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다가오지 않지만, 몹시도 두려워하던 '언젠가'는 돌연히 찾아왔다.
'엄니, 고맙습니다.'
편지로밖에는 말하지 못했다. 살아있을 때 말해 주었으면 엄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