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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평점 :

사 남매 중, 잔병치레가 유난히 잦은 큰 딸이었다. 아빠도 해외 몇 년을 나가계셨던 시절, 올망졸망 4남매를 혼자 키우셨던 엄마는 날 업고 동네 응급실로 뛰기를 얼마나 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했다. 국민학교 시절,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귀가 조치를 받기도 했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씩 건장한(?) 체형으로 잘 자랐고,
아주 가끔 스트레스로 인한 심한 위통이나 두통을 제외하면 건강한 편이고 건강검진도 2~3년에 한 번씩은 챙겨 받고 있는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아팠던 덕에 생긴 건강 염려증이겠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주변 지인들의 투병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곤 한다.
죽는 것과 사는 것, 둘 중에 하나는 쉬워야 되는 거 아닌가요?
19세, 대학 졸업전시를 무사히 마치고 멈추지 않는 생리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다가 알게 된 재생불량성빈혈. 19세에 졸전이라고? 했는데 중간 이후쯤 보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15세에 대학생이 되어 마냥 즐거울 것만 같았던 학창 생활은 그녀의 수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서울을 오가며 기록과 사진으로 남긴 수연의 투병기를 읽으며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내게 된다. 쉽게 백혈병이라고 하지만 재생불량성빈혈은 가벼운 병이 아니다. 조금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저자가 지나온 시간들을 써 내려간 투병기는 그녀가 기나긴 터널을 지나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골수이식 7년이 지났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건강한 삶을 응원한다. 이 글을 읽으며 의료현장에서 오늘도 일하고 계실 보람님 생각이 많이 나기도 했다. 사람을 위하는 직업 늘 응원합니다.!! 나이 들어 갈수록 절실해지는 건 다이어트도 주름도 아닌 건강이 되어가고 있다. 최대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나도 그대들도...
💉224p.
나는 내 안에서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책에는 투병을 시작한 열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서 유랑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121p.
병이 힘든 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구토 때문도 아니고
손가락 까딱하면 몸이 조각날 듯한 근육통 때문도,
멈추지 않는 출혈 때문도 아니다.
확신 없는 하루, 이틀, 보름, 한 달, 세 달...
내가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나조차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제일 힘들다. 시간만 지나면 되겠지 하고 시작한 투병인데 사실 제일 무서운 건 시간이었음을 깨달을 때.
💉237p.
건강을 잃는 건 단순히 몸이 아픈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상실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평소 건강한 몸에 감사하고 산 것도 아니면서 아프게 되면, 특히 큰 병에 걸리면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워하고, 힘들어하고, 마음 아파한다.
영원할 거라고 약속했던 건강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곧 일상을 되찾겠다 다짐하지만 이내 혼란스러워진다.
어떤 게 일상이고 어떤 게 비일상이란 말인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일상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픈 시간들마저 나의 일상이다. ⠀⠀⠀⠀⠀⠀⠀⠀⠀⠀⠀⠀⠀⠀⠀
💉288p.
내 과거는 현재를 지탱한다.
발밑에서 흉터로 자리 잡은 내 아픔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주며 어떤 일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히 받치고 있다. ⠀⠀⠀⠀⠀⠀⠀⠀⠀⠀⠀⠀⠀⠀⠀
💉325p.
‘아, 나 정말 환자 맞구나.’ 하고 끄덕일 뿐이다.
삶의 모든 것이 재배열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알던 보편적 개념들이 파괴되며 내 가치관이 산산이 쪼개진다.
무너져 널브러진 나를 주워 새로 쌓아야 한다.
나를 무너뜨린 것이 새로운 나를 만드는 발판이 된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