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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행복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아끼는 구두를 신고 길을 떠나고 언니, 오빠가 떠나고 함께 있어주었던 조디 오빠마저 떠나갔다. 아빠와 자신만 남겨두고....
가족에게 무심했던 아빠의 관심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아빠마저 떠났을 때, 사회복지사들에게 이끌려 학교를 가보았지만 단 하루를 버티고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늪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가족 이외에 마음을 연 첫 상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해 준 테이트. 늪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사가 같아 미래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테이트는 가까이 있을 때 보지 못했던 카야의 모습을 보고 홀로, 그녀에게 안녕을 고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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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 이별을 겪으며 소녀에서 여인이 된 카야. 다시 혼자가 된 그녀가 마음이 아닌 이성의 호기심으로 만나기 시작한 체이스는 그녀에게 늪지 밖의 삶과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거짓임을 알게 되고 다시 혼자가 된 카야.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테이트는 카야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테이트를 사랑했던 만큼 미움도 컸던 카야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떠나지 않겠다고 했잖아.’ 카야의 성장과정과 러브스토리의 과정을 지나 이야기는 살인 법정 미스터리 소설로 접어든다. 망루에서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 체이스. 어떤 흔적도 없지만 살인자로 지목된 이는 카야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확실하다. 법정 공방도 흥미진진해서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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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면서 러브스토리이고 살해 미스터리 법정소설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특별한 기교는 없지만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던 글이었다. 카야에게 삶이란 기다림, 외로움, 체념이었다. 테이트에게 배웠던 글이 없었더라면, 늪지와 갈매기들이 없었더라면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빠가 떠나고 혼자 남아 살아가야 했을 때, 점핑이 그녀의 홍합을 구입해주지 않았더라면, 메이블이 아이에서 소녀로 여자로 성장하는 동안 살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살아갈 수 있었을까? 잔잔하지만 뛰어난 몰입도에 멈출 수 없는 글이기도 했다.
60p.
“나를 어떻게 알아?” 카야는 재빨리 소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 조디하고 가끔 낚시한 적 있어. 너도 두세 번 봤어. 작은 꼬마였는데. 너 카야지. 응?”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카야는 깜짝 놀랐다. 무언가에 닻을 내린 느낌,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느낌.
101p.
소년에게서 강렬한 이끌림과 강렬한 밀어냄이 동시에 느껴지는 바람에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갔다.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소년을 볼 때마다 그랬다. 왜가리들 바라보듯 보기만 했다.
138~139p.
“점핑 아저씨가 그러는데 사회복지사들이 나를 찾고 있대. 송어처럼 끌려가서 어디 위탁되거나 그럴까 봐 무서워.”
“그래. 저기 어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누군지 몰라도 카야를 데리고 가서 키워야 되는 사람들 참 안 됐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142p.
“첫 문장 읽었을 때 기억나? 몇 단어가 너무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고 했잖아.”
“응. 기억나, 왜?”
“어, 특히 시가 그래. 시의 단어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거든. 감정을 휘저어놓지. 심지어 웃음이 터지게 하기도 해.”
189p.
삶을 살아가며 보관할 수 있는 크기로 감정을 잘게 자르는 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외로움을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카야는 그 다음날에도 그 바닷가로 돌아가 체이스를 찾았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247p.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264p.
카야는 체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340p.
수컷이 생식기로 암컷의 알을 수정시키려 이리저리 찌르는 사이 암컷은 길고 우아한 목을 돌려 수컷의 머리를 물어뜯어 버렸다. 쑤시고 박느라 바빠서 수컷은 눈치채지 못했다. 수컷이 제 볼일을 보는 사이 머리가 뜯겨지고 목만 남은 자리가 흔들렸고, 암컷은 수컷의 흉부를 갉아먹더니 날개까지 씹어먹어 버렸다. 마침내 수컷의 마지막 앞다리가 암컷의 입안에서 툭 튀어나왔을 때도 머리 없고 심장 없는 하체는 완벽하게 리듬에 맞춰 교미했다.
암컷 반딧불은 허위 신호를 보내 낯선 수컷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상대를 잡아먹는다. 암컷 곤충들은 연인을 다루는 법을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354p.
사람들은 그녀 혼자 자기 몸을 방어하며 살라고 저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여기 있게 된 거다.
434p.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