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내일 1~2 세트 - 전2권
라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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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힘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겨우 저것 가지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별것 아닌 일이어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살짝 스친 정도의 통증일지라도 내게는 큰 칼에 벤 듯한 통증으로 느껴질 수도 있듯이, 아픔의 무게는 주관적이니까요. 그 아픔의 크기를 또 다른 누군가가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기 웹툰 <내일>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죽은 사람의 혼을 데려가는 저승사자, 그런데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살리는 저승사자들이 있다?! 620세 구련, 196세 륭구, 그리고 임시 계약직으로 합류하게 된 27세 준웅은 위기 관리팀으로 함께 일하게 된다.

내일1권 ‘낙화’는 학생들의 왕따 문제를 다룬다. 함께 놀던 무리에서 이유도 모른 채 그들의 무리 밖으로 밀려나게 된 은비는 혜원의 괴롭힘으로 인해 반 전체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의 괴롭힘, 학교 밖에선 문자로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선생님에게도 도움을 청해봤지만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란 이야기만 듣는다. 구련의 활약 덕분에 자살은 막았지만 은비처럼 이유도 모르는 채, 이유 없이 당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잊힐만하면 뉴스에서도 꽤 크게 다뤄지는 ‘왕따’문제는 ‘내 자식만 아니면 괜찮아’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되었다.

내일1권 230p.

죽으면 다 끝날 것 같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네가 죽는다 해도 고통은 끝나지 않아.

네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넌 죽어서도 네가 느꼈던 괴로움에 직면하게 될 거야.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잖아.

괴롭힘 속에서도 잘 버텨왔던 너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지 마.

내일 2권 준웅의 합류로 염라의 호출을 받고 ‘저승 탐방’을 가게 되고 ‘위기 관리팀’의 탄생 과정과 구련이 몸담았던 인도 관리팀 팀장 최중길과의 갈등도 살짝 보여주고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숲’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남궁재수의 이야기로 대입에 실패한 이후 좌절하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냥 한심해 보이는 것 외엔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라고 생각했는데, 고교시절까지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다 대입에 실패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생에 실패한 사람처럼 자꾸만 주저앉아버리는 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를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힘들다, 죽겠다 싶어 나 혼자만 끝나면 되는 인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듯했다.

내일2권 189p.

이 생활이 끝나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나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워요.

나 혼자만...

끝나지 않는 시간의 숲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내일2권 194~195p.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다는 건, 네가 그렇게 한심한 인간은 아니라는 증거야.

자기합리화도 심하고...

사람은 기복이란 게 있을 수밖에 없어.

늘 한결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기계가 아니니까.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이상 자기 합리화는 어쩔 수 없는 거야.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며, 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절대 한 심한 사람이 아니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본 실패 때문에 지금 잠시 힘든 상태일 뿐이야.

내일2권 228~229p.

사람마다 걷는 속도는 다 다르잖아.

아빠도 아주 오랜 산 건 아니지만... 아빠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놈은...

잠깐 멈출 때도 있고, 달릴 때도 있고,

천천히 걸을 때도 있는 것.

남들보다 앞서가 보기도, 뒤처져 보기도 하는 것.

그게 인생인 것 같거든.

그러니, 고작 시험 하나 때문에

네 인생이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지 마.

남들하고 널 비교할 필요 없어.

치칠 땐 잠깐 쉬어도 되고, 천천히 걸어도 돼.

힘들면 아빠가 손잡고 함께 걸어줄 테니까,

걷는 걸 포기하지만 마.

죽으려는 자를 살리려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드라마화도 된다니 어떻게 만들어 질지도 궁금해지고, '내일'이 두려운 이들을 위로하는 저승사자들. 죽음을 주제로 한 조금은 무겁게 느껴질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웃음코드도 놓치지 않고 있어 읽다가 빵빵 터지기도 했다.

핫 한 저승사자들의 쿨한 위로. 앞으로 출간될 시리즈들도 기다려지게 된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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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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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아끼는 구두를 신고 길을 떠나고 언니, 오빠가 떠나고 함께 있어주었던 조디 오빠마저 떠나갔다. 아빠와 자신만 남겨두고....

가족에게 무심했던 아빠의 관심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아빠마저 떠났을 때, 사회복지사들에게 이끌려 학교를 가보았지만 단 하루를 버티고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늪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가족 이외에 마음을 연 첫 상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해 준 테이트. 늪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사가 같아 미래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테이트는 가까이 있을 때 보지 못했던 카야의 모습을 보고 홀로, 그녀에게 안녕을 고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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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 이별을 겪으며 소녀에서 여인이 된 카야. 다시 혼자가 된 그녀가 마음이 아닌 이성의 호기심으로 만나기 시작한 체이스는 그녀에게 늪지 밖의 삶과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거짓임을 알게 되고 다시 혼자가 된 카야.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테이트는 카야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테이트를 사랑했던 만큼 미움도 컸던 카야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떠나지 않겠다고 했잖아.’ 카야의 성장과정과 러브스토리의 과정을 지나 이야기는 살인 법정 미스터리 소설로 접어든다. 망루에서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 체이스. 어떤 흔적도 없지만 살인자로 지목된 이는 카야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확실하다. 법정 공방도 흥미진진해서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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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면서 러브스토리이고 살해 미스터리 법정소설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특별한 기교는 없지만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던 글이었다. 카야에게 삶이란 기다림, 외로움, 체념이었다. 테이트에게 배웠던 글이 없었더라면, 늪지와 갈매기들이 없었더라면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빠가 떠나고 혼자 남아 살아가야 했을 때, 점핑이 그녀의 홍합을 구입해주지 않았더라면, 메이블이 아이에서 소녀로 여자로 성장하는 동안 살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살아갈 수 있었을까? 잔잔하지만 뛰어난 몰입도에 멈출 수 없는 글이기도 했다.

60p.

“나를 어떻게 알아?” 카야는 재빨리 소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 조디하고 가끔 낚시한 적 있어. 너도 두세 번 봤어. 작은 꼬마였는데. 너 카야지. 응?”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카야는 깜짝 놀랐다. 무언가에 닻을 내린 느낌,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느낌.

101p.

소년에게서 강렬한 이끌림과 강렬한 밀어냄이 동시에 느껴지는 바람에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갔다.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소년을 볼 때마다 그랬다. 왜가리들 바라보듯 보기만 했다.

138~139p.

“점핑 아저씨가 그러는데 사회복지사들이 나를 찾고 있대. 송어처럼 끌려가서 어디 위탁되거나 그럴까 봐 무서워.”

“그래. 저기 어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누군지 몰라도 카야를 데리고 가서 키워야 되는 사람들 참 안 됐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142p.

“첫 문장 읽었을 때 기억나? 몇 단어가 너무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고 했잖아.”

“응. 기억나, 왜?”

“어, 특히 시가 그래. 시의 단어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거든. 감정을 휘저어놓지. 심지어 웃음이 터지게 하기도 해.”

189p.

삶을 살아가며 보관할 수 있는 크기로 감정을 잘게 자르는 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외로움을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카야는 그 다음날에도 그 바닷가로 돌아가 체이스를 찾았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247p.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264p.

카야는 체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340p.

수컷이 생식기로 암컷의 알을 수정시키려 이리저리 찌르는 사이 암컷은 길고 우아한 목을 돌려 수컷의 머리를 물어뜯어 버렸다. 쑤시고 박느라 바빠서 수컷은 눈치채지 못했다. 수컷이 제 볼일을 보는 사이 머리가 뜯겨지고 목만 남은 자리가 흔들렸고, 암컷은 수컷의 흉부를 갉아먹더니 날개까지 씹어먹어 버렸다. 마침내 수컷의 마지막 앞다리가 암컷의 입안에서 툭 튀어나왔을 때도 머리 없고 심장 없는 하체는 완벽하게 리듬에 맞춰 교미했다.

암컷 반딧불은 허위 신호를 보내 낯선 수컷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상대를 잡아먹는다. 암컷 곤충들은 연인을 다루는 법을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354p.

사람들은 그녀 혼자 자기 몸을 방어하며 살라고 저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여기 있게 된 거다.

434p.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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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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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클라우드 그 10번째 책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었다. 아직 읽지 못했던 <설국>을 허연 시인의 여행과 해설로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일본 근현대 소설을 읽어가던 허연 시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느끼게 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013~014p.

1968년 노벨상 시상식 장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본 순간부터였다. 장신의 백인들 틈에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서 있던 백발의 노인. 그는 무림의 고수 같았다. 사진 속 그에게는 주변 백인들을 모두 장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우라가 있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그는 <설국>이라는 그의 작품과 책에는 지명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작품의 배경이 된 에치고유자와, 그가 살아왔던 삶을 좇는 여행을 시작한다.

생에 대한 기억은 이미지로 남는다.

035p.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설국>7쪽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독자들은 이 문장을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흡사 자기가 터널을 지나 설국을 마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기차에 타고 있는 듯한 착각. 이것이 소설의 시작 부분이 지닌 묘한 매력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읽는 소설’이 아니라 사색하고 깨달아야 하는 소설이며 ‘이미지를 감상하듯 읽어야 하는 소설’ 인지 알 것 만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들을 열거해놓고 보면 그를 움직인 가장 큰 동인은 콤플렉스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귀족, 죽음, 고아, 왜소함, 패배한 일본 콤플렉스.... 이러한 콤플렉스들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이라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작품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거겠지... 그의 문학은 유쾌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은 다가오는 겨울 읽어보고 다시 리뷰를..) <설국>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책을 읽기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가까이할 수 없는 먼 작가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허연 시인이 이야기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그리고 그의 인생을 깊고도 다정한 문장과 사진으로 읽어가다 보면 호감을 갖고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작가와 작품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살을 빼고 수영을 시작해야지.. 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뛰어들어 체험하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0인을 기획으로 시작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난 이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데, 관심은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되는 인물인데.. 등등의 이유로 멀리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이전 시리즈 도서인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인적으론 어렵게 느껴지는 인물이었는데 생각보다 한층 가깝게 느껴졌고 #클래식클라우드010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고 책장을 덮으며 ‘이 시리즈들은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권 한 권, 잘 읽고 조카들, 동생과 부모님까지 온 가족이 함께 읽어보고 싶은 시리즈가 되었다.

062p.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리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082~084p.

사실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읽으면서 소설 전체의 인과관계를 찾거나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냥 나열된 이미지 하나하나를 감상하듯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어가다 보면 독자 스스로 어떤 ‘종합’에 이르게 된다.

138p.

‘체념’이라는 단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운 자는 잔치가 끝난 다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안다.

211p.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소설은 하나의 이미지다. 양적 결과물이 아닌 질적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의 수려한 문장에서 ‘허무’를 만난다. 그것이 승자도 패자도, 옳고 그른 것도 없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미학이다.

278~280p.

줄거리 진행을 기준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이게 뭐지’ 하는 의문에 빠지기 쉽다. 그의 소설에는 환희와 분노도, 선과 악도, 적과 동지도 없다. 이런 것들을 일부러 거세한 듯 그의 소설은 무한을 향해 갈 뿐이다. 그의 소설에는 궁극이 있다. 궁극의 욕망, 궁극의 삶, 궁극의 관계, 궁극을 찾아간 그의 귀착지는 허무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인간의 인생은 허무한 것이므로.... (중략)...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은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경전 같다. 그의 문학에는 숨겨놓은 장치가 너무나 많다. 드러난 언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숨은 언어가 너무나 많다. 안타까운 건 그의 이 ‘숨은 언어’들을 번역을 통해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명하면서 목적지에 가닿지 않았다. 그는 생략하면서 목적에 가닿는 작가다.

우리에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오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그를 모른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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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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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시크릿 포레스트 복숭아 농장에서 태어난 어피치. 유전자 변이로 자웅동주가 된 사실을 알고 복숭아나무에서 탈출한 이 악동 복숭아는 애교 넘치는 표정과 행동으로 카카오 프렌즈에서 귀요미를 담당하고 있다. 남녀노소 어피치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사랑스러움에 빠져들고 마는데... 핑크한 책표지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데, 새침하고 엉뚱한 표정의 어피치가 내 마음의 엉덩이가 되어주겠다고 찾아왔다.

내가 너의 엉덩이가 되어줘도 되겠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문득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는 서귤 작가. 토실토실 말랑말랑.. 넘어지는 순간 뼈와 장기를 다치지 않게 보호 역할을 해주는 엉덩이처럼 마음에도 엉덩이가 있다면, 우린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어쩌면 나의 이야기, 그대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한 번쯤 생각하고 경험해봤을, 그리고 아팠던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길지 않은 글을 읽으며, 페이지마다 만나는 어피치를 보며 마음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라는 노래가 리뷰를 쓰는 내내 흥얼흥얼 거리는 걸 보니, 어피치의 말랑말랑함이 옮아왔나 보다.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지닌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 어피치 / 튜브 / 콘 / 무지 / 프로도 / 네오 / 제이지

다른 캐릭터를 가진 카카오 프렌즈처럼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로 출간되고 있는 글은 앞으로 만나게 될 캐릭터와 작가들의 이야기도 기대해보게 되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처음엔 라이언이 좋더니 이제 어피치로 옮겨갔담 말이지? 튜브는 어떤 작가와 이야기로 찾아올지 궁금해진다.

19p.

너무 부지런히 살았던 건 아닌지. 돈벌이에 눈이 멀어 나의 귀여움을 뽐내는 걸 소홀히 했던 건 아닌지. 내일은 더 대충 살자. 다리가 짧아 엉덩이 대신 허리로 앉는 판다처럼.

120p.

어째서 미처 무엇이 되지 못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쉽게 저리게 만들까. 너와 내가 한 번도 누군가가 되지 못한 채 늘 과정 위에 선 사람이어서일까.

149~150p.

‘애써 숨기지 않아도 돼’라고 누군가가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저마다 무언가를 잔뜩 숨기고 사는 데 기력이 다한 우리는 서로에게 그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고, 그렇게 숨기다 숨기다 겨우 빠져나오는 몇 가지 것을 민망해하고 부끄러워해. 드러내다 못해 줄줄 흘러나와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을 텐데. 편하게 내보여도 좋을 텐데. 기침과 가난과 사랑 같은 거. 눈물 같은 거. 바라건대 과민성대장 증후군도.

156p.

내 미래는 내가 걱정하게 놔두세요. 어차피 안 하지만.

넘어오지 마세요.

부디 당신 발밑의 그 노오란 안전선 안에 서주세요.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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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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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상조차 못했던 짓까지도 하게 만든다고?

12년 전, 운명의 여자라고 생각했던 레일라가 사라졌다. 중간중간 기억이 끊겨 혹시라도 자신의 폭력성에 다친건 아닐지, 놀라서 잠시 사라진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꽤 긴 시간이 흘러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는 레일라의 언니인 엘런. 그녀와 결혼을 앞두고 레일라가 살아있는 듯한 단서를 알려오기 시작했다. 레일라, 핀 그리고 엘런과 해리 형만이 알고 있는 마트료시카의 마지막 작은 인형이 나타났다.

핀 앞에 나타나는 작은 인형, 그리고 루돌프 힐이라는 메일 주소로 오기 시작한 문자. 레일라는 정말 살아있을까? 핀은 과거 그녀와 둘만 알고 있던 장소에 놓여있던 인형을 보고 레일라가 살아있다고 확신하는데.... 그렇다면 그녀는 왜 12년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엘런과 결혼을 발표한 시점에 나타난 걸까? 엘런을 사랑하고 레일라와는 다르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그녀와의 삶도 기대하고 있던 핀이었지만 레일라가 살아있다고 확신한 순간 그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248p.

예전에는 레일라를 죽이는 악몽을 꿨지만, 이제는 엘런을 죽이는 악몽을 꾼다.

핀, 그러면 안 되지!!! 레일라를 대신해서 엘런을 사랑했던 거니? 레일라가 핀을 흔들수록 핀은 자신이 아직도 레일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되고... 그럼 엘런은? 핀과 엘런의 삶을 압박해오기 시작하는 레일라. 급기야 핀은 엘런을 죽이는 악몽을 꾸기에 이르는데... 레일라의 등장 이후 핀은 주변 모든 인물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그의 생각을 좇으면서 열심히 추리했다. 하지만 애초에 맹목적으로 의심이 가는 인물이 있었으니.... 설마설마했지만 끝자락에 가서... 읭? 이라고 끝이 난 이야기가 아쉬울 뿐이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헛다리만 짚던 핀이 불쌍해졌던 브링 미 백. 패리스 여사님의 이번 작품은 아쉬웠어요.

73p.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어. 자기가 나한테 와주길 내내 기다렸거든. 그러다 깨달았어. 자기는 안 올 거란 걸. 내가 먼저 와 주길 기다리고 있을 거란 걸 말이야.” 네가 내게 속삭였지.

84p.

엘런은 지방이 단 1그램도 없을 정도로 말랐지만, 열량이 조금이라도 나가는 음식을 그녀에게 먹일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 레일라한테는 너무 많이 먹는다며 놀렸고, 데번으로 이사한 이후에는 체중이 꾸준히 늘어서 체중을 가지고도 놀렸다. 사람을 잃는다는 건 바로 그런거다. 그저 웃자고 무심코 던졌던 말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된다는 것.

121p.

레일라를 향한 내 마음을 닫아보려 아무리 노력해도, 앨런을 사랑하고 있음에도, 한순간도 레일라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기에.

168p.

“그 여자, 정신이 나갔다고, 핀.”

“정신이 나갔다고?”

“유리 멘탈이라고. 살짝 미쳤을지도 모르고.” 나는 이렇게 말하는 루비를 빤히 바라본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작은 러시아 인형을 여기저기 남겨놓고 남에게 찾으라고 하지 않아.”

246p.

그토록 핀을 사랑하면서도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다는 게 아직도 놀랍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핀이 망가지길 바란다. 그래야 그를 내가 원하는 대로 다시 조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내 실종도 그를 그다지 망가뜨리지는 못했다.

352p.

절망감이라는 주먹에 급소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엘런과 함께하면서 발견한 행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그 행복이 거짓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니! 나한테 상처를 주고 싶었다면 엘런은 더없이 훌륭한 방법을 고른 셈이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힘이 든다. 내가 알던 엘런과는 다른 모습이기에. 레일라와 1년 조금 넘게 함께 살면서 사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엘런과도 1년 조금 넘게 함께 살며 사랑했다. 두 사람과 거의 똑같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점에 어떤 의미라도 있는 걸까? 정말 타이밍이 문제였을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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