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평점 :

‘그 사람’이라서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던 책들의 경우 이런 편애는 조금 더 심한 편이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출간 소식에, 언젠가 겨울 제목에 이끌려 무작정 읽었던 <소란>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책이었고 문장이었다. 장석주 시인과 함께 집필했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으며 조금 더 깊이 빠져들었던 작가였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되는 대로 즐겁게
그렇게 우리는 가벼워지고 삶은 말랑하고 행복해진다.
책표지의 그림이 갸웃? 하게 도하지만 글을 읽다 보니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라는 제목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듯한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것, 좋은 것만 하고 살아도 짧은 생이다. SNS의 홍수에 보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욕심도 많아지고 ‘나’라는 사람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내 생각을 펼치기 전에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검색해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빠져들기 보다 글에 나를 맞춰가기도 했다. (이렇게 읽는 거라고 했어. 누가?) ‘나’자신의 삶을 살기보다, 누군가 보게 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박연준 작가가 고향같은 동네 ‘면목동’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층 팬심이 두터워짐을 느꼈다. 홍대 애정 하는 가게들은 하나같이 궁금해지고, 서울이었다면 당장 달려가보고 싶을 정도... 집 주변에 동네 서점이 있는지 마실을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꼼꼼히 읽고 싶었던 5부 믿지 않으면, 좀처럼 읽을 수 없는 책은 읽었던 책들은 정독했지만, 읽고 싶어 담아두었던 책은 살짝 넘어가기도 했다. (책을 읽은 후 다시 찾아 읽어볼 예정).
에세이, 산문집을 읽다 보면 이렇게 쓰고 싶다.라는 닮고 싶은 글이 있는데, 박연준의 책 이야기가 그러했다. 얼마나 읽고, 얼마나 생각을 하고 얼마나 글을 써봐야 이렇게 쏙쏙 읽어지는 글을 쓸 수 있지?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풍선같이 둥실 부풀어 오른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 상태로 그렇게 꾸준하고 소소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길, 마음이 흔들릴 때면 꺼내 읽고 싶어지는 글이다.
62p.
오늘 아침 소파에서 남편의 신간 시집을 읽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세월이 가면 우정은 사소해진다.” 별일 없이 마음을 다치게 하네. 시는 이게 문제다. 읽다 자꾸 베인다. 다쳐도 피가 나지 않는 상처가 있다.
119p.
휴가는 행복을 더 이상 유예시키지 않아도 되며 지금 이 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다. 나의 오늘이 어제와 분명히 다름을 선언하고, 비로소 내 의지대로 주어진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휴가는 ‘인생’이란 큰 덩어리에 갈라진 틈, 어떤 ‘사이’에 도착하는 것이다. ‘사이’에서 우리는 목적에서 놓여나 자연스럽게 머물거나 스밀 수 있다. 쉬자, 주먹을 펴고, 욕심과 걱정에서 놓여나자. 나는 가벼워지고 내 삶은 더 말랑하고 행복해지리라.
145p.
책을 사는 일도 물건을 사는 일이다. 물건을 가지려는 ‘소박한 탐욕’으로 빛나는 눈과 신중한 손이 합작하는 일.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신간 몇 권을 골라든다. ...(중략)... 잠깐 들릴 수 있는 동네 책방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삶은 작고, 또 작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179p.
누가 누구를 더 잘 아는 것(그것도 불가능하지만 안다고 치고), 그게 권력이 될 수 있는가? 아는 게 권력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굳이 능력을 논하자면 사람을 아는 게 권력이 아니라 끌어안는 게 권력이다. 그 사람을 끌어안고, 품고, 아끼는 것. 그때야 그 사람에 대한 지분이 생기고, 무언가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184p.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는 바보가 되고 있다. 남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자극적으로 편집된 텍스트와 이미지에 노출된 덕에 읽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긴 글을 읽지 못하고 남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구별하지 못한다. 진득하게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한다. 일찍 스마트폰에 노출된 어린아이들은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226~227p.
시는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가짜’를 다 버리고 ‘진짜’만을 벼르고 별러 쓰는 게 시라면, 불편하더라도, 시를 시 자체로 견디어줄 필요가 있다. 이 땅의 여성들이 모르고, 혹은 알아도 어금니를 깨물고 그 무수한 총알 세례를 견디었듯이. 그러나 시를 견디는 것은 능사가 아닐지 모른다. 견디기보다는 그대로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255p.
좋은 문장은 독자를 피로하게 하지 않는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