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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정동현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7월
평점 :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생각해 보면 하루 두, 세끼 꼬박 먹는 음식의 종류는 얼마나 다양하고 많았을까?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유롭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 젊은 두 부부는 사 남매를 최선을 다해 키웠다고 떠올린다. 무언갈 조르지 않아도 어떻게 아셨는지 요즘 유행하는 음식이라며 미제 프랑크 소세지, 스팸, 코코아 등을 사 오셨던 아버지. GOD의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를 들었을 땐 입학, 졸업 때면 동네 중국집에서 엄마와 함께 마주 앉아있었던 단편적인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다.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서른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사표를 내고 영국 요리학교로 유학을 떠나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른 정동현 셰프. 그가 살아왔던 삶에 함께 했던 음식들과 경험했던 현장과 음식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음식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음식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했다.
특별한 날이면 특별한 음식으로 그날을 기념해주곤 하셨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가 부모님의 나이보다 더 먹어 그 시절을 추억하며 이야기하다 보면 사 남매에게 각자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음식’은 단순히 생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게 아닌 시간과 시절의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한 번쯤 먹어봤던 음식이라, 또는 비슷한 추억이 있어, 읽으면서 때론 더 군침이 돌기도 했지만 인생을 떠올리게 했던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요 며칠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끼니 거르기를 자주 했는데, 없는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맛깔스러운 글이었다.
33p.
어묵 하면 반찬이 아니라 소주가 생각나는 어른이 된 지금,
갓 나온 어묵을 먹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50p.
김밥은 한국에서 가장 싼 음식 중 하나다. 어설프게 원가 타령을 하며 어떻게 김밥 한 줄에 몇천 원이냐 하는 불평은 재료비 외에 드는 부대비용과 노동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엉터리요, 허리를 숙여 김밥을 마는 곱은 손을 보지 않는 못된 심보다.
...중략...
김밥은 내가 먹기 위해 싸지 않는다. 누구를 먹이기 위해 만드는 음식이다. 그래서 더 애틋한 음식이다. 그래서 그 한 줄로 배가 차고 때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85p.
분주함 속에 다시 찾아온 오늘, 기어코 찾아올 내일, 그사이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며 한 숟가락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문득 궁금해진다. 같은 하늘을 지고 사는, 저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숨 쉬는 당신, 당신이 씹어 삼키는 작디작은 한 숟가락에 담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신경 써본 적 없다고, 배만 부르면 된다고 말하지 말길. 독하지도 순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생은 추억 없는 인생처럼 너무 쓸쓸하니까.
131p.
그는 바다를 건너 한국에 왔고 한국에 오면서 우동을 가지고 왔다. 어디론가 떠나고 떠나지만 결국엔 어디론가 도착하고야 마는 삶. 누군가를 먹여야 하는 삶. 그 오고 감에 우동이 있고 그 한 그릇이 한 사람을 일어서게 하고 종국엔 생계를 지게 한다.
154~156p.
‘장사 안 되고,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칼을 갈았다. 오늘은 두 시간 정도 갈았던 것 같다. 둥근 칼이 이제 일자가 됐다.’
나를 얼마만큼 갈고 또 갈아야 할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바다 건너 울적할 때마다 칼을 갈았던 이를 떠올리며 아침을 맞이했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나는 칼을 잡을 때의 짜릿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를 피로하게 만들고 한밤중 울게 하였던 그 막막함 역시 마찬가지다.
176p.
취업 준비를 하며 홀로 밥을 먹던 이십 대 후반, 그 시절 나는 냉이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에 얼마나 힘을 얻었던가? 웃자라 버려 쓸모 없어진 냉이 줄기처럼 몸만 커지고 나이만 들었다며 자책한 순간은 없었던가? 시간이 갈수록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연민만 많아진다. 찬란한 봄처럼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