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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4 ㅣ 아르테 오리지널 4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평점 :

대륙 스케일 인정! 지난 4월 시작된 잠중록 앓이. 드디어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권이 출간되었다. 열일곱 소녀 황제하는 자신의 가족을 독살한 사건의 살해범으로 수배당하게 되고 몰래 장안에 숨어드는데 성공하지만 몸을 숨기려 올라탄 마차가 기왕 이서백의 마차였다. 황제하를 알아본 이서백은 신고하지 않을 테니 조용히 사라지라고 하지만, 황제하는 이서백만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란 걸 직감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왕부에 숨어들어 새로운 신분의 환관 양숭고로 지내며 사건들을 하나둘 풀어가기 시작하는데....
내치려 했던 황제하가 사건 해결을 꽤 잘 해나가면서 이서백과 주변 인물들에게 조금씩 관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그럴수록 이서백이 질투하는 듯한 모습이 조금씩 보이는 게 또 묘미!!
황재하의 첫사랑 우선, 재하가 사랑하게 된 이서백, 재하의 약혼자 왕온 이 네 사람의 관계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조금은 무모한 선택도 할 줄 아는 사람들, 노력했으나 인연이 아니기에 포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의 뒷모습까지, 시리즈 내내 맹활약을 한 주자진의 캐릭터를 어느 배우가 맡을지도 드라마의 흐름을 이끌어가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앞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하나씩 맞춰들어가며 마침내 진실에 마주하게 된 서백과 재하. 이 과정에서 두드러진 왕종실과 왕온의 활약이 이야기를 더욱 긴장감 있게 이끌어간다.
잠중록의 묘미는 재하를 중심으로 이서백, 왕온, 우선의 로맨스 라인과 사건을 수사하는 스릴러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범인을 지목하는데 감이 좋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읽으면서 이 사람이? 얘가? 짐작하며 읽었지만 마지막장까지 그 무엇을 상상하든 이상을 보여줬던 이야기.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세하게 묘사하는데도 지루함이 없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서 읽는 재미를 주었던 잠중록. #삼생삼세십리도화 의 #조우정 주연으로 드라마화가 제작 예정이라 하니 더욱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서백씨, 재하야, 자진공자, 왕온 덕분에 올여름 즐겁고 행복했어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고요?
미스터리 사극 로맨스 잠중록 세트로 들이셔야 합니다. 진짜 강추!!
78p.
내가 가진 기억이라는 것은 참일까, 거짓일까. 지금까지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곡해되거나 왜곡된 것은 아닐까. 의심할 여지도 없어 굳게 믿었던 것이 사실은 누군가가 보태 넣은 기억이거나, 마음 깊이 새겼던 것이 누군가에 의해 철저하게 지워진 것은 아닐까.
137p.
“전하께서는 비바람이 저를 해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저를 지키시고 싶겠지만, 저는 전하께서 홀로 그 모든 시련을 감당하시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저는 전하의 인생에서 화려한 비단 위에 더해지는 한 송이 꽃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전하와 손을 잡고 나란히 설 수 있는 한 그루 오동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서로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존재 말입니다.”
이서백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물고기가 마른 바닥에서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며 목숨을 잇느니, 차라리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사는 것이 낫다고 하지 않느냐.”
159p.
왕종실은 유리병 속 물고기를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 생애에는 나도 저들처럼 아는 것도 없고, 느끼는 것도 없으며, 기억하는 바도 없이 그저 얕은 물속에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네.”
316p.
“제가 원하는 건,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과 밝은 햇살을 느끼며, 둘이 손을 잡고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함께 가는 삶이에요. 그런 인생을 살 수 없다면... 이 일로 죽는다 해도 무엇이 아깝겠어요?”
422p.
황재하는 속으로 간단한 길을 선택하자고 생각했다. 황재하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연루되었다. 황재하도 이젠 지쳤다. 인생을 어떻게 걸어가든, 결국 그 걸음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와 함께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서백에게 다른 인생이 주어질 수 있다면, 그리고 소중한 이들이 더 이상 자신 때문에 비참한 결말에 이르지 않을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무엇이 대수겠는가?
520p.
“그날 이후, 난 마음속으로 거듭 생각했다. 만약 너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네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네 손을 꼭 잡고 절대 놓지 않을 거라고. 만약 너를 품에 안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너를 품에 꼭 안고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만약 다시 한 번 네게 입을 맞출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이 네 손이든, 네 이마든, 아니면 네 두 입술이든...”
527p.
“네. 이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습니다.”
528p.
이서백은 황재하를 응시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살면서 많은 사람과 거래를 해왔지만, 너와의 이 거래가 가장 남는 장사였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직 제가 전하께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벌써 남는장사라고 단정하십니까?”
“설령 네가 나를 돕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 인생에서 너와 만날 수 있던 것만으로 그 거래는 이미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