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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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하루여서 좋았다. 목표가 단순한 만큼 여행의 순간은 더욱 선명해졌다. 영원하지 않은 이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드로잉북을 펼쳤다. 밤 10시의 석양 속에서, 템페레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정리했다. _89p.

여행과 드로잉이라니!! 여행을 하면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좋지만,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은 희망을 가지게 된 건 오래된 꿈이기도 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늘 설레지만, 카메라나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이 아닌 내가 머물렀던 현장에서의 드로잉은 그곳의 느낌과 시간을 기억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해보고 싶은 경험이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저자는 여행과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여행 드로잉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행동으로 옮겼으며, 몇 권의 드로잉북을 출간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겠지?)

복잡한 현실을 떠나고 싶을 때 혼자서, 천천히, 북유럽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여행하며 광활한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곳에서 자신만의 선과 색채를 그려낸 드로잉 에세이를 넘기다 보면 "나도!!"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되는 책이다. 그림으로 생생하게 재현되는 북유럽 도시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을 그린 그림은 저자의 다음 드로잉 여행도 기다리게 되는 책이었다. 북유럽여행, 또는 드로잉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길 강력추천하는 책! (그림만 봐도 충분히 너무 좋은책!)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였기 때문에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 공간을 차분히 그리기로 했다. 펜이 미끄러지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이 위에 교회의 디테일을 천천히 옮겼다. 느리고 침착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헬싱키 사람들이 아끼는 이 공간이 더욱 경건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_61p.

여행을 하면 하루의 목표는 단순해진다. 현지인에게 말 한마디를 거는 사소한 일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아닌 이곳의 낯선 음식을 먹는 것 그 자체가 하루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숨 가쁘게 다가오는 순간들에 집중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먼 미래에 대한 염려는 잠시 설득력을 잃는다. 지금의 여정이 모두 끝나기 전까지는 너무 멀리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실체가 없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여행은 어쩌면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다시 배우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닐까. _85p.

인생의 고비를 넘긴 후 트롤퉁가가 잘 보이는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가방에 넣어 두었던 점심을 꺼내 먹었다. 오랜 산행으로 다리는 무거웠지만, 기분 좋게 번져 오는 성취감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가방 속에서 펜과 물감을 꺼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날의 기억은 그렇게 소중한 한 장의 기록이 되었다. _269p.

#혼자천천히북유럽

#리모 #김현길

#상상출판 #여행에세이 #드로잉에세이 #여행드로잉 #드로잉여행

#북유럽여행 #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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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간호사 - 가벼운 마음도, 대단한 사명감도 아니지만
간호사 요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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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계획을 세우고 줄을 그어나간다.

연말이 다가오면 거의 모든 계획 위에 줄이 그어지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대로인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지나 한 해가 가지만 헛헛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병원에서의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_40p.

최근 몇 년 사이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이, ‘왜 자영업을 시작했을까?’였다. 시작하기 전엔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의욕에 차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좋은 점 보단 좋지 않은 점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일에 불만이 많아지고 있었다. 1년 365일 중 열흘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아파야 반나절~하루를 겨우 몸 회복을 위해 쉬고, 여행을 좋아하지만 일터를 비우고 며칠이고 비울 수가 없으며, 집과 매장을 매일같이 오가는 생활. 어쩌다 자영업자가 되었지만 어쨌든 자영업자. <어쩌다 간호사>를 읽으며 직업은 다르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괜스레 울컥!

“어쩌다 간호사가 되었지만 어쨌든 간호사다.”

아주 어렸던 시절 간호사의 꿈을 키웠던 시절도 있어 늘 궁금했던 간호사라는 직업. 인스타그램 지인 중에도 간호사가 계셔서 그 고단함을, 녹록지 않음을 조금 알고 있는데, 이들의 직업은 일반적인 직업과는 차원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전문적인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벼운 마음도,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간호사는 일반적인 직업으로 분류할 수 없는 분야의 직업군이다. 감정노동과 희생이 필요한 일이 그들의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게 했던 이야기는 그들의 일상을 읽으며 힘든 일만큼이나 감정노동을 하는 그들의 직업을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다. 단짠단짠 간호사의 삶, 오늘도 버텨내는 간호사들의 이야기 앞으로도 계속 간호사 요님의 웹툰으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를...

때론 허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하루 더 살게 했을 거라고.

어쩌다 간호사가 되었지만

어쨌든 간호사다.

내 일을 하자.

#어쩌다간호사

#간호사요 #에세에 #웹툰 #네이버웹툰

#알에이치코리아 #rhk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https://comic.naver.com/bestChallenge/list.nhn?titleId=68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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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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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 한마디, 그 목소리, 그 태도.

헤어질 때 '나중에'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굳이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무심함을 가린 냉정하고 퉁명스러우며 어쩌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말이라고 여겼다.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이 바로 이 한마디다. _10p.

소설도, 영화도 유명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퀴어 소설로 알려진 이 책이 개정의 개정을 거듭하며 북 커버가 바뀌고 최근 출간된 리마스터판으로 읽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의 해안가 별장, 여름이면 아버지의 번역 작업을 위해 여름마다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손님을 맞이하는 열일곱의 소년 엘리오, 그해 여름엔 곧 출간을 앞둔 24살의 젊은 학자인 올리버를 초대하고 미성년자인 엘리오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이고 인기가 많은, 자신과도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올리버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묘하게도 올리버도 엘리오를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기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로맨스 소설도 꽤 읽었고, 그중 퀴어 소설들도 간간이 읽어왔지만 격이 다른 글을 읽은 느낌이랄까? 일반적인 남녀의 사랑보다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지만 엘리오가 올리버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회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설렘, 울렁이는 감정들과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은 감정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춤을 추다 이내 나를 잠식해버리는듯한 기분이었다.

이 책이 단순히 퀴어 소설로서의 자극적인 면만 강조했다면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많이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여름의 이탈리아, 별장, 여름 손님, 자유로운 분위기 등등 시작부터 반할만한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읽기 시작했을 때, '읽다가 덮고 싶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멈출 수 없는 글이었다. 철학, 음악 그들의 의식세계의 교감은 그들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함께 거닐었던 파리의 골목을, 서로에게 닿고 싶었지만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마주하게 된 현재에 이르러 그들이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게 될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놓칠 수 없는 감정과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다. 이들의 다음 이야기인 '파인드 미'를 읽어볼 차례다.

내 눈의 빛, 내 눈의 빛, 당신은 세상의 빛, 내 인생의 빛 같은 사람이에요. 내 눈의 빛 같은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고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의아했지만 말도 안 되는 그런 표현에도 눈물이 나왔다. _111p.

배신자. 그의 방문이 끽 하고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배신자.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 어디 안 갈게. 물론 그렇겠지. 거짓말쟁이.

나 역시 배신자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해변 가까이 있는 집에서 오늘 밤 나를 기다리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매일 밤 나를 기다리는데 나는 올리버와 마찬가지로 그녀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_125p.

서점 주인은 스탕달의 <아르망스> 두 권을 내놓았다. 하나는 문고본이고 하나는 비싼 양장본이었다. 충동적으로 둘 다 구입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달아놓았다. 직원에게 펜을 빌려서 양장본을 펼치고 적었다. "Zwischen Immer und Nie, 침묵 속에서 당신에게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세월이 흘러 그가 여전히 이 책을 가지고 있다면 보고 가슴 아프기를 바랐다. _136~137p.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를 말끔하게 치워 주는 것 같았다. 나이 차이도 나지 않고 그저 두 남자가 키스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이내 녹아버렸다. 두 남자가 아니라 그저 두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평등함이 느껴진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저 나이가 더 적고 더 많은 두 사람이 인간대 인간, 남자 대 남자, 유대인 대 유대인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_170p.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지도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랄 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네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있으면 끄지 말고 잔혹하게 대하지 마라. 밤에 잠을 못 이룰 만큼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건 끔찍하지. 타인이 너무 일찍 나를 잊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 _283~284p.

20년 전은 어제이고 어제는 좀 더 이른 오늘 아침일 뿐이다. 아침이 오려면 까마득했다.

"나도 너와 같아. 나도 전부 다 기억해."

나는 잠시 멈추었다. 당신 전부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나와 같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택시 문을 닫기 전에, 이미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삶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장난으로도 좋고 나중에 불현듯 생각나서라도 좋아요, 나에게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를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 줘요._315p.

#콜미바이유어네임

#안드레애치먼 저/ #정지현

#도서출판잔 #잔 #테마소설 #소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callmebyyourname #anovel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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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 지음 / 원더박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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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근 10년간 지켜본바, 그는 부모님이 올라오실 때마다 꼭 뵙는 타입은 아니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분명 크리스마스에 나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지금 결혼을 앞두고 변하고 있었다.

"너 철드니?" 내가 묻자 남자 친구는 "그 말, 부정적 의미인 거지?"라고 되물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집에서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결말이 나면 좋겠지만 우리에겐 아직 결혼이라는 숙제가 남았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란 어떤 것일까? 왜 결혼을 하면 철이 들까? 혹시 나도 철이 들까? 그러고 싶지 않은데, 앞으로 우리의 결혼 생활은 어떻게 될까? 나는, 그리고 너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_92~93p.

다들 이렇게 살아가니까,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던 시절도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생활양식이 변하고 있음에도 가정 내에서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행동양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교묘하게도 그것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너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설득당하며 살아간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 사람은 정말 행복한 걸까?라는 생각해보기도 했다.

딱히 독립적일 필요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괜찮아졌으면.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감성적으로 보이는 책장을 펼치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놀라웠다. 이렇게 솔직할 수가!!! 자신의 삶에 대한 또렷한 생각이,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의 결혼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관은 지키되 상대에 대한 배려도 놓지 않는 강수하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넘치는 애정을 받아보지 못했고, 조금은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인생의 첫 독립을 하면서 홀가분하다고 생각한다.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던 건 그녀가 겪었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현실을 오롯하게 자신의 인생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강수하의 의지와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수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조금 더 용기를 내도 좋지 않을까? 함께 이야기하며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글이다. 강한 사람도 아니면서 꿋꿋한 강수하의 글은 때론 너무 슬프지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글이기도 하다. 이렇게 힘주어 살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오기를... 가부장제가 주는 모멸감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강수하의 이야기, 앞으로도 계속 만나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마에 이렇게 써 붙이고 다니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결혼을 안 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결국엔 결혼을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결혼하는 이유를 내 안에서 찾지 못해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우리의 결혼은 가부장제로부터의 지령이었다. 나는 그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그 망할 가부장지에 굴복하고 그들의 요구에 따랐다. _122p.

나라도 나의 자아를 다시 꽉 붙잡아 본다. 나는 아무개가 아니라 강수하다. 타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박 씨 집안 역할놀이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그들이 말하는 가족의 정의와도 거리가 멀며, 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나의 가족이 따로 있다. 명절마다 꼭 한 번씩은 이혼을 마음속에 떠올려 보게 된다.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이런 부당한 채무 관계없이 자유롭게 살 텐데, 하고 생각한다. 아마 이혼만이 이 문제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애초에 나는 남편과는 맞아도 결혼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_142~143p.

연애도 결혼도 스펙처럼 간주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내 스스로를 연애 시장의 매물로 내놓기를 게을리하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었는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연애나 결혼이 아니라 취미, 친구, 성취감 같은 것이었다.

나는 파트너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안정감과 행복은 원래 내 것이어야 했다. 싱글 시절의 나도, 동거 시절의 나도 응당 누렸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_229p.

#아주독립적인여자강수하 #강수하

#원더박스 #에세이 #페미니스트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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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하찮니 - 스스로 방치한 마음을 돌아보고 자존감을 다시 채우는 시간
조민영 지음 / 청림Life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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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존재는 어떠한 기준으로도 평가받을 수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우주 도서관에 단 한 권뿐인 유일한 책으로서 등록을 마쳤다. 생명을 받은 그 순간부터 당신은 이미 소중한 존재였다. 그 이후에 생겨난 일들은 그저 당신의 책에 적히고 있는 독특한 이야기일 뿐이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로 판가름하는 시험장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하나의 이야기다. _257~258p.

성공을 향해 자신의 일상을 다그치며 살아온 저자 조민영이 직접 체험한 번아웃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던 건 글쓰기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서였다.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난 저자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충수업을 해주고자 시작된 '마음 보충 수업'은 64명의 제자들과 이야기하며 자신의 마음을 하찮게 여기면서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들의 적나라한 기록이다. 옛 제자들과 매주 한 두 명씩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문제를 일으킨 마음의 패턴은 너무나 비슷했다고 한다. 저자를 번아웃으로 내몰았던 마음의 패턴과도 너무도 닮아있었다고 한다. 완벽주의, 통제 욕구, 헛된 기대, 착한 사람 콤플렉스 등으로 늘 지쳐있는 현대인.

“나만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건가 고민하고 있다면

나쁜 마음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날선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잠재되어 있던 생각지도 못한 감정들에 문득 놀라기도 하지만 그저 그렇게 넘기곤 했던 시간들.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저자가 처한 위기의 상황, 그리고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치유해가는 과정들과 다양한 사례를 들어 하는 이야기들은 때론 나의 이야기였다.

오늘의 나는 괜찮은지, 나를 소진시켜가며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우리는 조금 더 마음을 들여다보며 살아가야겠다.

가족 규칙이란 건 원래 가족 전체의 안위와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정해진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로 인해 삶이 더 불편하고 곤란하고 번거로워진다면? 그것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규칙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 (중략)... 이제는 나의 행복과 자유를 옥죄고 있는 이런 수많은 틀과 규칙들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쩌다 이런 규칙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누가 이런 규칙들을 나에게 강요했었는지, 상대방에겐 이런 규칙들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그리고 이 규칙들이 지금 내 삶을 얼마나 구속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 보니 내가 고집해온 규칙들이 항상 진실도 아닌 데다 더 이상 내 삶에서 효율적이지도 않다면 거기서 벗어나려는 용기를 내야 한다._88~91p.

좋은 결과를 약속할 만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걸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_128p.

우리의 삶은 파도와 같다. 파도 위에 떠 있는 순간에는 가만히 있어도 흔들리고 요동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안정적으로 살려고 애를 써도 파도 위에선 그런 시도가 다 헛된 것이 되고 만다. 파도 위에 살면서, 안정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다. 파도를 따라 계속 변화해야만 살 수 있다. _167p.

#마음이하찮니

#인문 #심리

#조민영 #청림라이프 #청림출판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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