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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누군가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_015p.
캄보디아 프놈펜, 짙은 초록으로 가득 찬 원더랜드는 호텔이라기보다 민박에 가깝다. 6개의 객실, 야자나무가 우거진 풀장은 원더랜드의 자랑으로 파란 하늘이 얼굴로 쏟아지며 싱싱한 초록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몇 달째 손님이라곤 새벽에 도착해 눈만 붙이고 떠나는 백패커 몇이 전부인 이 호텔을 운영하는 고복희는 올해로 오십 살이 되었다. 자신만의 원칙대로 살아가는 고복희와 서비스업인 호텔이라니 어울리지 않지만 업주 입장에선 정해진 원칙대로만 운영한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는 일... 하지만 일 안 하는 청년, 통금시간 안 지키는 손님, 환불을 요청하는 손님... 그냥 손님들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손님들.
프놈펜의 원더랜드에 한 달간 장기 투숙을 온 박지우는 자신이 생각했던 앙코르와트와 너무도 동떨어진 곳에 숙소를 예약했다는 걸 알고 환불을 요구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씀! 빠듯한 자금으로 온 여행이기에 원더랜드에 머물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 원더랜드, 손님은 없지만 조용할 날 없는 호텔이다. 원더랜드의 한 명뿐인 직원 린, 사장인 고복희를 따라다니며 호텔을 넘기라는 김인석, 인석의 일을 돕는 안대요, 그리고 만사 원칙을 고수하는 고복희가 싫은 한인 모임 사람들...
프놈펜에서의 현재와 고복희의 젊은 시절 남편인 장영수와의 따뜻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은 너무도 따뜻해서 좋았다. 영수를 만나 디스코와 조개구이 맛을 알게 해주었으며, 평생 밥해주겠다던 남편은 절대로 사라지지 말자는 약속, 매일 새로운 꿈을 꾸자는 약속을 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따뜻한 나라를 싫어하는 고복희는 왜 사계절이 여름인 캄보디아 프놈펜까지 와서 원더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걸까? 예상치 못한 사고들로 들썩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북적댔던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는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재미있다. 괴팍한 할아버지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인정! 고복희 사장님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따뜻한 나라 원더랜드 호텔로 함께 고고고~
한별은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본인의 기준에서 모두가 삶을 평가했다. 왜 안 놀아? 왜 안 해? 왜 안 가?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 물음표를 던져대는 한별에게 박지우는 아무런 대꾸도 못 했다. 왜냐면.... 나는 네가 아니잖아. 그 단순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인정하는 거니까. 내 삶이 네 삶보다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_028p.
"일은 안 합니까?"
"해야죠, 해야 하는데."
박지유는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한국은 망했어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고 고복희는 생각했다.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박지우는 다시 고복희의 눈치를 봤다.
"물론 어른들이 봤을 땐 제가 웃기겠죠. 나라 탓만 한다. 그런 생각이시겠죠? 그치만 저도 노력하거든요? 제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요. 근데 다들 저만큼은 한단 말이에요. 모두가 빡세게 살아서 제가 빡세게 사는 건 티도 안 나요. 안 빡세게 사는 애들은 잘 사는 집 애들이에요. 빡세게 살 필요가 없는 거죠."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_093p.
원더랜드 사장님은 스스로 철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항상 똑같은 시간에 호텔의 대문을 열고 닫는다. 일분 일 초도 어긋남이 없다. 정확한 시간에 시장에 나가서 장을 보고 프런트에 앉기 전에 스트레칭을 한다. 사사로운 물건을 두는 자리도 완벽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렇게 숨 막히는 사람 밑에서 어떻게 일해? 누군가는 그렇게 묻는다. 글쎄. 린은 불편하지 않다. 그 엄격함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_097~098p.
입구나 출구는 다르지만, 누구나 예외 없이 한 번은 어둠에 빠지게 된다. 그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는 각자의 몫이다. _121p.
"우리 퇴직하면 남쪽 나라에서 살까요?" 장영수가 중얼거렸다.
"남쪽 나라?"
"항상 여름인 곳이요."
"싫습니다."
"하긴, 복희는 더위를 잘 타니까."
"왜 이상한 소리만 합니까?"
"에이, 내가 보기엔 복희가 더 이상해요."
"나는 복희가 이상한 사람이라 좋아요." _183p.
"나는 당신이 걱정이에요." 한참 만에 장영수가 말했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만 하며 산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니까.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당신의 도덕성을 시험하려 들 거예요. 부당한 상황에 밀어놓고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겠죠. 좌절하는 당신을 조롱하고 헐뜯을지도 몰라요." 상관없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니까. 자신에게 떳떳하면 그걸로 족하다. 고복희가 그런 대답을 할 줄 알았다는 듯 장영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무엇보다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_205p.
원더랜드는 낙원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 틈입해 평화를 뒤흔들어놓고 떠나는 사건들이 넘쳐났다. 무엇보다 힘든 건 그로 인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였다. 너는 별로인 사람이야. 세상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놓치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걸. _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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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