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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책에도 팔자가 있단다"며 푸듯이 말씀하셨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_6p.
책의 서문과 맺음말만을 모은 모음집이라니,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책을 읽으며 큰 의미를 갖지 않고 읽어왔던 프롤로그, 에필로그의 의미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늦은 나이 등단하셨다던 박완서 작가님 40년 작가 생활 동안 출간하신 책의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모아 한 권에 담은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작가로 활동하시며 선생님의 생생한 글을 지금 읽어도 '그 시절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 페이지들을 만나기도 한다. 박완서 작가님이기에 가능한 기획이 아니었을까?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짧은 글을 쓰게 되고, 세월이 흘러 개정판에 싣게 될 글을 수정하며 시간이 조금 흘러 읽어본 자신의 글을 다시 짚어가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책의 거의 모든 글 끝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책을 만들어준 출판사 관계자분들에게 전하는 겸손한 인사가 빠지지 않고 적혀있다. 진심 어린 고마움이 느껴져서 더 마음이 가게 된다. 박완서 작가님을 떠올리면 수줍고 조용한 소녀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필력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글이었다. 책의 뒤편에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 연보와 작품 화보가 올 컬러로 수록되어 있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도 많아서 꽤 많은 플래그잇을 붙였던 이 책! 많은 분들이 함께 읽고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찾아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들게 되는 글이었다.
'작가의 말'이 한곳에 모였다. '작가의 말'은 소설을 다 쓴 뒤에 쓰는 것이다. 지난한 집필 노동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정리하는 공간이자, 작가가 작품 밖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와 건네는 특별한 끝인사의 자리이다. 선생님의 '작가의 말'은 선생님을 꼭 닮았다. 하고 싶은 말을 감추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담백하고 당당하고 솔직하다. _ #정이현 (소설가)
나는 내 작중인물들에게 내가 그들을 창조하면서 지워준 운명대로 살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실장 내가 독자가 관심 잇게 봐주기를 바란 것은 누가 행복하게 되고 누가 불행하게 됐나 보다는 어떠어떠한 것들이 허성 씨 가의 조용한 몰락에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과 양심의 몰락을 통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직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_26~27p.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억누르는 온갖 드러난 힘과 드러나지 않은 음모와의 싸움은 문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싸움을 걸 상대의 힘이 터무니없이 커졌을 때라든가 종잡을 수없이 간교해졌을 때도 그런 싸움을 중단하거나 후퇴시켰던 적은 없고, 그림으로써 문학한다는 게 본인에게만 보이는 훈장처럼 스스로 자연스러울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이런 억압의 관계만은 별로 문학의 도전을 안 받으면서 보호 조장돼왔던 것 같다. 도전은 커녕 그런 관계를 비호하고 미화하는 것들 편에 섰다는 혐의조차 짙다. _52p.
내 소설이 쉽게 읽힌다고 흔히들 말한다. 나는 독자들을 행간에 끌어들여 머뭇거리게 하고 싶은데 마냥 술술술 읽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좀 쓸쓸하다. 그러나 쉽게 읽히니까 쓰는 것도 쉽게 쓴 줄 아는 소리를 들으면 더 쓸쓸하고 슬퍼지기까지 한다. _113p.
소설가는 늘어나는데 독서 인구는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하고, 특히 단편이 더 잘 안 읽힌다는 소리를 나도 귀가 있으니까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다. 쓸 때는 모르는 척하고 썼지만, 막상 책으로 묶게 되니 내 책을 내고 싶어 한 고마운 출판사한테 손해나 끼치면 어쩌나, 자꾸만 걱정이 된다. _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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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