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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ㅣ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시절 만나 사십 대가 되어서도 끊어질 듯 이어가고 있는 세연과 진경.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하나둘 등장하며 다양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점처럼 흩어져 있다 이내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는듯한 글이다. 워킹맘에게 엄마들 간의 우정은 사치일까? 경력이 단절될까 봐 아프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못하고 혼자 늦은 밤, 길을 걸으며 홀로 쏟아내는 눈물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얼굴의 곰보자국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어 학창시절 왕따가 되는 걸 감수하면서도 피부화장을 하고 다녔던 세연, 그런 그녀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진경. 아이러니하게도 세연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더 이상 자신을 꾸미지 않게 되었고, 진경에게는 끊임없이 남자친구들이 생기며 자신과의 약속도 동의 없이 편의대로 바꾸는 진경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기도 하다.
페미니즘, 젠더, 페미니스트 등등 다양한 소개들을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던 글이었다. 주류가 되지 못한 비주류를 감싸 안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도 같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의 이야기로만 진행되는 <붕대 감기>를 읽다 보면 낯설지 않고 익숙한 느낌마저 든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고 살아가며, 친한 사이라고 한들 어디까지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읽다 보면 조금 불편한 마음도 들지만 한 번쯤 진지하게 대면해봐도 좋을 여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는 아프다는 자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자신의 고통을 비교하며 위안 받는 인물들과 “꿈에도 서로를 사랑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작가의 말 인물들의 이어짐을 통해 따듯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내 이기심과 어리석음으로 멀어진 옛 친구들,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는 흰 물결
붕대로 연결 된 우리, 들의 이어달리기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_68p.
마흔넷, 마흔다섯, 지금 진경이 지나가고 있는 그 나이가 딱 그랬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싫었다. 자신도 싫었거니와 그 싫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견디며 살려면 영양제를 먹고 운동을 하고 밝고 좋은 것들을 챙기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이 듦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더더욱 싫었다. _89~90p.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가진 것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밀어내고 비난하기만 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은 신이 아니야. 누구도 일주일에 7일, 24시간 내내 타인의 고통만 생각할 수 없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니? 너도 그럴 수 없는걸 왜 남한테 요구해? _108~109p.
시대가 달라지고 환경이 극심히 나빠진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 부모의 노후라는 짐은 훨씬 더 힘들고 무거울 것이다. 내가 애를 너무 늦게 낳았어. 서른일곱에 애를 낳으면서 내가 그 애한테 걱정이 될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어. 나는 항상 천하장사일 줄로만 알았지. 남편이 있으니 어떻게든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어떻게 그렇게 계산을 못할 수가 있었을까. _120~121p.
『붕대감기』 속 여성 인물들이 누구의 딸도,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설은 개별적인 각각의 점들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전체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점묘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이어지게 하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여성들의 이야기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_178p. #심진경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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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