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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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싱그러운 여름과, 모든 생명이 잠시 움츠러드는 겨울이 공존하는 제목이라니 책표지도 제목도 아름다운 에세이 일 것 같았다. 제목과 달리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이 책 앞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다 큰 어른들에게도 어떤 형태로는 공포로 기억되는 장면,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 살 소녀와 그의 동생, 소녀의 이야기는 가정에서조차 보호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소녀의 가족이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과 연약한 어머니와 자신과 동생이 그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을까? 사이좋은 남매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아이스크림 할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뒤로 남동생 질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같았다. 동생을 위해서라도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었던 소녀. 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없음에 좌절하고 아버지와 점점 닮아가는 동생을 보는 게 힘들다.

소녀는 성장하면서 과학과 수학 분야에 뛰어난 두각을 나타나게 되고 아버지에게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자신의 삶을 가꿔나갈 줄 안다. 하지만 그녀의 조심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눈에 그녀의 눈부심은 눈에 띄었는지 아버지는 딸인 그녀가 자신의 아내처럼 텅 빈 삶을 살기 바라는 것 같고, 어느 날 남매에게 사냥을 제안한 아버지의 미친 광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새로운 상황이 등장할 때마다 속으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였다면?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소녀 같은 용기와 결단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꿈꾸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일련의 사건들만 늘어놓고 보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야긴데, 또 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건 소녀의 긍정적인 반짝임이, 삶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8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은 앉은 자리에서 쉼 없이 읽어내기에 부담 없는 분량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책장을 덮고 제목을 보며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여름의 겨울」 위태롭고 아린 아픔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있기에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은 성장소설이다.

"어린이들, 알다시피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 너희도 알게 될 거야. 너희 하늘을 어두워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란다. 너희 기쁨을 빼앗아가고, 너희 어깨 위에 앉아 너희가 날아오르지 못하게 하지. 그런 사람들을 멀리해. 폐차장 주인 역시 그 중 하나야." _023p.

삶이란 믹서에 담겨 출렁이는 수프와 같아서, 그 한가운데에서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칼날에 찢기지 않으려고 애써야만 하는 것이다. _091~092p.

"폭풍우에 대해선 거짓말을 했지만, 다른 건 아니야. 마리 퀴리에 대해서도 아니야. 넌 용감한 아이야. 네겐 위대한 일을 해낼 용기가 있어. 오늘 네 얼굴은 무척 단호했단다. 다만... 계속 싸워라. 미안해, 나는 요정이 아니야. 그래도 넌, 넌 특별하단다, 꼬마 아가씨.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이렇게 말해 줘. 꺼져 버리라고." _107p.

"엄마, 엄마는 왜 인생을 놓아 버렸어요?" _223p.

나는 내 몸을 사랑했다. 나르시시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설령 내 몸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다름없이 사랑했을 것이다. 내 몸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함게 길을 걷는 동반자였다. 그리고 내가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내 몸에서 새로운 감각들을 발견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쾌락을. 달콤한 순간이 찾아오면 고통은 잊혔다. _238p.

트럭이 길을 떠났고, 나는 눈을 감았다.

내 삶의 2막은 정확히 그 순간 시작되었다.

하루가 저물어 갔고 내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_280p.

#여름의겨울

#아들린디외도네 #박경리 #소설 #프랑스소설 #아르테 #arte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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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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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살아가던 소녀 사라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 어리다는 이유로 위탁가정에 맡겨져야 했던 소녀와 너태샤는 변호사로 사회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반면 개인사는 비참한 일의 연속이다. 어느 날 별거 1년 만에 자신의 짐을 찾으러 온 곧 전 남편이 될 맥과 결혼생활에 관련한 나머지 정리를 위해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되고 이들의 삶에 사라가 등장하면서 미묘한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전 위탁가정에서도 뚜렷한 이유 없이 학교 수업을 빼먹고, 몇 시간씩 사라지곤 했던 사라. 너태샤와 맥은 하나뿐인 가족인 할아버지의 입원으로 충격이 컸을 아이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조율하며 사라를 돌보는데, 사라는 너태샤와 맥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들이 점점 쌓여갈 뿐이다.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상태에서 부셰를 돌보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던 사라에게 마구간 주인이었던 카우보이 존이 떠난다는 소식은 사라에게도 충격이었지만 몰티즈가 마구간을 인수하게 되면서 사라와 부의 상황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사라는 너태샤와 맥에게 도움을 청할까?를 생각하면서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결국 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각자의 삶에서 길을 잃은 두 여성,

아이와 어른이 만들어가는 하나의 길에 대하여..

이혼만 남은 부부, 말과 소녀, 그리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택한 할아버지의 삶은 긴 분량임에도 책장 넘기기를 멈출 수 없다. 누구나 살면서 넘지 못할 고비를 맞닥트리곤 한다. 간신히 저 모퉁이를 돌면 좀 나을까?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 모퉁이마저 함정처럼 보일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라와 너태샤의 선택이 그 결말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사라와 교감하는 부셰의 기나긴 여행길은 그 끝을 걱정하기보다 그들이 달리는 길 끝에 그들이 원하는 곳에 닿기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글이다. (영화화된다면 참! 멋질 것 같다.) 결혼과 이혼, 청소년의 방황과 입양가정이라는 새로운 가족형태가 늘어가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했던 「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의 이전작이 너무나 유명해서 살짝 우려감이 드는 마음에 읽기 시작했지만, 그런 마음일랑 접어두고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글이다.

다른 동물에 비해 말들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천성적으로 겁이 나 걱정이 많고 성질도 까다로운 단점이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 정직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_55p.

"저도 늘 더 나은 동작을 하기 위해 애쓰는 거예요. 말과 나의 완벽한 소통이나 교감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요. 고삐를 잡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압력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말의 기분이나 제 몸의 상태, 땅바닥의 조건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기술적인 문제가 전부가 아니거든요. 말과 나, 두 마음과 두 심장이...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해요."

...(중략)...

"말을 온당하게 이끌 수만 있다면 말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동작을 수행할 수 있어요. 닫혀 있는 문을 열어서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도록 하는 거예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하게 해야 하죠. 바로 그때 그 말은 최고가 되는 거예요." _288~289p.

"말은 애완견과는 다르단다. 얘야. 말은 힘이 세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위험한 동물이야. 하지만 말은 자유의사가 있는 동물이기도 해. 널 보호해주고 널 위해 행동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지. 그러면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고 훌륭한 일을 해낼 수도 있어." _456p.

"아이들은 좀 더 빨리 자랄 것이고 결국엔 좀 더 현명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 좀 더 냉소적인 사람이 되겠죠. 모든 게 또다시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겠죠.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아이를 이해하고 지원할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 판단할 때 대체로 부모들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세심하게 주변을 살피지 못했어요. 어찌 보면 너무 이기적인 거죠. 그러니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전 부모도 아닌데요. 게다가 전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일한 만큼 월급 받는 직장인에 불과하답니다." _473p.

그들이 영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모든 게 그럭저럭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몇 주 동안 누가 그 집에 남을지에 대한 얘기가 있었고,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별 무리 없이 결론이 났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맥은 새로운 집을 얻어 갈 것이고, 너태샤도 남은 짐을 챙겨 제 살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_661p.

#호스댄서 #조조모예스 #이정민 #살림 #소설 #성장 #방황 #영국 #런던 #청소년 #난민 #이민자 #연애소설 #성장소설 #영미소설 #thehorsedancer #the_horse_dancer #jojoMoyes #jojo_Moyes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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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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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고민을 해요. 숨 붙어 있는 사람 치고 고민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우리나라 최고 부자도 고민하고 대통령도 고민해요. 반면에 돼지 새끼는 고민 없어요. 밥 먹고 배부르면 엎어져서 꼬리 턱턱 치면서 잡니다. 그러니까 박 터지게 고민하고 있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열정적으로 고민하세요. 다만, 누구한테라도 소리 내면서 하세요. 인간은 원래 힘들고 무섭고 놀래면 소리 내고 우는 게 정상이에요. 사람은 이미 엄마 뱃속에서 탯줄 끊는 순간부터 고행길입니다. 그 고행길을 크게 소리 내면서 걸어요. 뭔데, 말해봐요. 내가 들어줄게요. _ 김수미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전성기를 보내고 계신 배우 김수미. 어릴 때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로 익숙한 그녀의 모습은 젊었을 때의 모습보다 아줌마나 할머니의 모습으로 더 익숙하고 욕 잘 하는 할머니, 또는 개념 있는 어른, 이란 수식어로 더 익숙했는데 세상에 요리까지 잘하셔서 2018년부터 <수미네 반찬>이란 방송도 하시고 책까지 출간하신, 도대체 이 분은 24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방송인이자 국민 할머니 김수미 님의 시원한 상담이 궁금했던 책이다.

나 / 일 / 가족 / 인간관계 / 돈 / 남과 여 총 6개의 파트로 진행되는 상담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상담 내용을 다루며 그들의 상담에 어떤 해결책을 제안해주실지, 어떤 욕을 시원하게 해주실지 기대하게 되는 책이기도 했다. 보통은 나부터도 개인의 고민은 꽁꽁 싸맨 채 해결책을 내지 못하는 반면 타인의 고민이나 문제점은 쉽게 눈에 보이고 그 해결책 또한 너무도 시원하게 제시하곤 하는 편이다. 다양한 분야를 아울러 상담하는 김수미 님은 굴곡진 인생을 살며 다양한 경험과 배우로 살아온 삶이 플러스 되어 그야말로 시원시원한 상담해결책들을 제시한다. 더불어 정신못차리는 자신에게 욕을 해달라는 상담자들의 제안도 세심하게 읽어보시고 욕할 사연은 욕을 하되 그렇지 않은 상담은 보듬어주시는 따스함까지!! 가볍게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마음이 닿는 사연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NG가 없겠냐" 인생앞에 무수한 고민과 NG들 너무 앓지 말고 지나가기를, 다 잘 될거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또 넘겨보기를...

오지랖이라는 게 뭐냐면 한복 저고리 앞자락을 말하거든. 앞자락이 넓으면 예쁜 옷을 다 가려.

그래서 오지랖이 넓다는 게 도움을 준다는 게 아니라 참견한다는 의미인 거야. 직장 동료를 돕고 싶으면 네가 야근을 할 게 아니라 빨리 집에 가. 그래야 걔도 일이 늘지. 그리고 앞으로 누구를 돕고 싶어서 손이 나가면 손을 잡고 말이 튀어나오면 입을 막아. 괜한 오지랖 떨지 마. 걔가 너보다 잘 살아. 가슴에 새겨. _36~37p.

가불해서 고민하지 마세요. 미리 슬퍼한다고 훗날에 덜 슬프지 않아요. _136p.

나는 오래된 친구는 인생에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친구와 만나고 또 헤어지게 돼. 사람이 하나 떠날 땐 그 사람과 만든 기억도 함께 떠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을 하나 버리거나 잃을 때는 많이 생각해보세요. 한번 잃은 사람은 다시 찾기 힘드니까. _250p.

사람이 살면서 이런 약간의 핑크빛 에너지를 기대하게 될 때가 있어. 어떻게 보면 인생을 살 때 허공에서 내려오는 밧줄이랄까, 그런 걸 잡고 있어야 마음이 덜 힘든 시기가 있어. 그럼 그냥 잡고 있어요. 뭐라도 의지가 된다고 하면 그걸 굳이 놓을 필요는 없어. 사랑이라는 게 꼭 두 사람이 똑같은 눈으로 똑같은 세상을 봐야만 하는 게 아니야. _323p.

#김수미의시방상담소

#김수미 #에세이 #알에이치코리아 #RHK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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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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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나는 낯선 사람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아버지였다. 나는 항복을 할 것이라고도, 그렇다고 승리를 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다시 싸웠다가를 반복했다. 2014년 가을 무렵이 되어서, 아버지가 10대 때 숨어 있었던 방에서 로슈 하샤나를 맞이할 즈음에, 우리는 서로 이해하게 되었고, 심지어 친밀해졌다. 하지만 화해의 순간은 때맞춰 찾아온 셈이었다. _607p.

76세의 나이에 여자가 되기로 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아닌 ‘그녀’ 스테피라는 여자로 나타난 트랜스젠더 아버지의 삶.

사실 읽기 전에 꽤 두툼한 분량에 놀랐지만, 한 가족의 연대기, 개인적인 역사와 정치적인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수전이 기억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하는 여자로서의 삶. 아니.... 이 아버지 너무 자기중심적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 아닌가? (부들부들). 근육이 없어서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을 거라니... 그럼 사건 속의 주인공은 누구??

꽤 두툼한 분량에 놀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잘 읽히는 편이다. 한 개인의 삶을 관통하며 바라본 시대의 아픔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 아버지를 이해하게 될 수 있기까지의 여정은 꽤 길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불화와 집착적인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70대 여성으로 마주하게 된 40대 후반 딸과의 이야기는 불편한 한편 놀라움의 연속인 글이기도 했다.

'너와 같은 여성'임을 주장하는 아버지, 그리고 딸과 상반된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수전의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조사하고 탐독하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생각해 보게 되는 건 '정체성'이란 단어였다. 유대인이고 싶지 않았고, 나라에서 버림받았으며, 아들이 되고 싶지 않았으며 가장 완벽한 남자가 되고 싶었던 여자. 수전 팔루디의 글을 통해 읽어나갔던 아버지의 삶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넓힐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수전 팔루디가 깨달은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이분법은 삶과 죽음, 단 하나뿐이다._#한채윤

그의 셔츠는 피로 흠뻑 젖었고, 쇼크 상태였다. 아버지는 그를 야구방망이로 공격하고 난 다음, 주머니에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스위스 아미 칼로 찔렀다. 복부에 자상이 여러 개 생겼다. ... (중략)... 아버지가 침입했던 날 밤, 그는 이마에 난 작은 상처만 치료하고 지역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아침이 되기 전에 풀려났다. ... (중략)...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아버지는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거의 40년이나 흘렀고, 아홉 개의 표준 시간대를 지나왔지만, 내가 그녀의 새로운 인격에서 그 폭력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_90~91p.

“어쩌면 개인적 차원에서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시기에 노출이 되면, 그게 그러니까 뭐랄까 그 신드롬을 촉진시킨다거나 촉발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개인적인 차원 어디엔가 그 연결 고리가 있는 거지. 그걸 증명하기는 아주 어렵겠지만.” “뭘 증명하는데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 아버지는 아마도 어렸을 때 그 안에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걸세. 그리고 우연히, 전쟁이 동시에 닥쳐오면서....” 오토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자네 아버지와 홀로코스트 사이에 어떤 연결점을 찾으려 한다고 느꼈네. 하지만 나는 홀로코스트가 어떤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말했다. .

....(중략)....

“오토, 나는 홀로코스트가 아버지가 성전환을 한 이유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중략)...

“시작한 곳에서는 아닐 걸세.” 그가 말했다. “많은 사실이 드러나겠지. 결국에, 마음이란 블랙박스 같은 거니까.” _282~283p.

"여자라서 너무 좋아." 아버지가 잔을 들면서 말했다. "내가 속수무책으로 보이니까 모두들 나를 도와준다니까. 야단법석이야. 여자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지!" _310p.

"너무 모호하게 쓰여 있네." 오토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심리상담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는--- 아니 그녀는 --- 자네 부친이 스스로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 혹은 뭐가 되고 싶은지 말이지." _487p.

#다크룸

#수전팔루다 #손희정 #페미니즘 #여성 #사회정치 #젠더

#아르테 #arte #book #bookstagram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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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전 -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
정철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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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부터 시작하는 글의 시작은 호기심에 페이지가 계속 넘어간다. 기발한 문장들에 빵! 터지기도, 생각이 깊어지기도.. 읽는 사람에 따라 눈길이 가는 단어도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책을 읽으며 기억해 두고 싶어 체크해둔 단어를 노트에 적다 보니 '화장' '거짓말' '책꽂이' '나이' '노안' '나' '편두통' '잠' '힘' '식당' 등 지금 당장 당면해있는 상황을 풀어쓴 단어들에 눈길이 많이 갔던 것 같다.

카피라이터 정철, 1234가지 일상 단어로 '사람'을 말하다.

'사람' 모든 생각의 주어. 모든 행동의 목적어.

모든 인생의 서술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보듬고 가야 할 문장.

사람이 먼저다.

정답을 알려주기 위해 출간되어 있는 많은 사전들, 그러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사전엔 정답이 없고 '사람'이게 할 수 있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이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을 사람이게 할 수 있는 성분, 그 성분들을 들여다보고 모아서 차곡차곡 쓰다 보니 한 권의 <사람사전>이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단어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국어사전에는 없는 사람을 품은 단어 1234. 어느 페이지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마음 가는 대로, 찾아보고자 하는 단어가 있으면 그 페이지부터 읽어도 좋을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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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걸음마

인생 시작. 고난 시작. 가능하면 시작하지 말 것. 시작하면 죽는 날까지 걸어야 하니까. 잠시 쉬었다 걷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될 테니까. 엄마 아빠 박수친다고 흥분하지 말고 오래오래 누워서 버틸 것. ⠀⠀⠀⠀⠀⠀⠀⠀⠀⠀⠀⠀⠀⠀⠀

#150국어사전

돌려 막기 사전. 먼저 간사라는 단어를 찾는다. 간교하여 남을 잘 속임. 간교를 찾는다. 간사하고 교활함. 교활을 찾는다. 간사하고 음흉함. 고만고만한 단어 몇 개로 돌려 막기를 하는 느낌. 이 책이 태어난 이유.

#259노안

신의 마지막 배려. 신은 인간에게 늙음을 주고 이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노안을 줬다. 눈을 늙게 해 자신이 늙었음을 보지 못하게 했다.

#888잠

잠시 죽음. 나중에 있을 온전한 죽음을 연습하는 시간. 우리 모두는 3만 번의 잠시 죽음을 거쳐 온전한 죽음에 이른다. 두 죽음의 차이는 아침. 온전한 죽음 뒤엔 아침이 없다. 정말 없다. 완전히 없다. 그 귀한 아침을 우린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며 날려버린다.

#사람사전 #정철 #허밍버드 #에세이 #카피라이터정철

#책소개 #신간소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book #book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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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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