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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첫 책을 세상에 띄우면서 '앞으로 이런 소설을 쓰겠다'라는 멋지고 당찬 다짐, 아니면 적어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하는 작은 바람이라도 내비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으로서는 정말, 계속해보겠다는 마음, 계속 써보겠다는 마음, 그 마음밖에는 없다.
그게 무엇이든,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_ #장류진
8편의 단편으로 묶인 이 책의 주인공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삼십 대 남녀의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무척이나 짧은 글도 있지만 읽으면서 점점 빠져들어 공감하게 되는 건 사회생활을 하며 한 번쯤 직접 경험했거나 들어봤을법한 일이기 때문이었을까? 글을 읽으며 '이 문장이다!' 딱 꽂히는 문장이 많진 않지만, 공감되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던 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열심히 살고 있지만 그에 원하는 만큼의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오늘 힘겨움을 꾹 참으면, 내일은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누어진 보이지 않는 등급,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창작과 비평' 웹사이트에 장류진 작가의 글이 올라가고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는데.....'아! 이래서...!!!'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입소문으로 너무도 유명했던 「일의 기쁨과 슬픔」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고, 인별그램에서 간간이 보아왔던 짧은 이야기에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아 궁금한 마음에 구입했다가, (역시 묵여두었다 읽는 맛?!) 순식간에 완독한 글. 장류진 작가님 글 정말 잘 쓰시네! 즐거울것 없는 직장생활.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써 낼수 있는 사람이라니! 장류진 작가의 글을 앞으로도 계속 읽어보고 싶다.
열심히 노력하면 삶이 극적으로 나아지리라는 꿈같은 건 아무도 꾸지 않는 시대, 그렇다고 완전한 절망도 허용되지 않는 시대. 그의 등단작 「일의 기쁨과 슬픔」 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 시공간을 건너기 위해 기다려온 소설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할 뻔했다. ... (중략) ... 기쁨과 슬픔 사이, 미처 명명되지 못한 여러 결의 마음들이 딱딱한 세계의 표면에 부딪혀 기우뚱 미묘히 흔들리는 순간순간을 작가는 기민하고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해 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_ #정이현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그깟 오만 원 아끼려고 내가, 이러는 것 같아?"
어째서인지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 천 원을 내면 만 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_28p.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아홉시가 되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몇 달 전 예매해 두었던 조성진 홍콩 리사이틀이 벌서 다음 달이었다. 공휴일과 주말, 그리고 아껴둔 연차를 하루 붙여서 삼 박 사 일을 놀고 공연도 볼 것이다. 항공권 예매 사이트에 접속한 다음, 홍콩행 왕복 티켓을 결제했다.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_63p.
연애의 가능성이란, 얼굴을 마주하고 한두 마디만 나누어보면 금방 도드라져서 감지하기 쉬운 종류의 것이었다. 다만 나는 이십대가 아닌 삼십 대였으므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 _70p.
새벽의 방문자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왔다. 여자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비디오폰에 달린 모니터로 남자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고 주문을 거는 듯한 태연함, 남에게 들키기 싫은 일을 할 때의 부끄러움, 돌연 술이 확 깨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의 주저함, 그러면서도 어쨌든 곧 벌어지게 될 눈먼 섹스에 대한 설렘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얼굴들. _182~183p.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육 년 전에 탐페레 공항에서 얀을 만난 적이 있어요."
"오, 당신을 기억해요. 나는 얀의 아내입니다. 당신이 도와줬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마워요. 얀이 곧 일어나면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겠어요." _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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