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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ㅣ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교수님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다면, 그 헌신이 잊히지 않도록 뭐라도 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지금 아무리 소중해도 몇 년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잊힙니다. 그러나 활자로 남겨둔 기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그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활자화'의 중요성은 의학계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에서 강조되는 부분이다. 교수들의 여러 가지 책무 중 중요하게 평가되는 부분도 연구 업적의 활자화, 즉 논문이나 저서로 기록을 남기는 일에 있다. 박혜경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나는 그 이후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그 기록은 시간적 연속선상에 있지 않았다. 나는 바쁜 일상과 개인적 고난에 치여 쓰기를 멈추다 이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3년쯤 지났을 때, 나와 팀원들을 둘러싼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매 순간 끝을 생각할 만큼 모두가 지쳐 있다는 현실만큼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_ #서문
이국종 교수님이 한창 이슈일 때도 '나랑은 먼 일이니까...' 하고 관심 갖지 않았던 분야였다. 하지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간 당시 전자책으로 구입해두고 '코로나19'사태가 길어지며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읽기 시작한 골든아워. 사실 그가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갈아 넣어가면서까지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에 매달리지 않아도 됐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긴 세월 매달리지 않았다면, 길바닥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 정말 초인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생활을 하는 그와 팀원들의 글을 읽으며 때론 고구마 몇 백 개를 먹은듯한 답답한 쳇병이 몰려오기도 했다. 공문서 좋아하는 관공서 기관들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도 중요하진 않았던 거였겠지. 당장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고,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최근 코로나 사태의 중심지인 대구로 닥터헬기를 몰고 갔던 이국종 교수님을 보고 너무도 놀랐다. 뼈만 남아 바람 불면 날아가실 것 같... 그의 이름이 아직도 정치적인 이슈로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데, 제발 사람 살리는 일을 이슈로 만들어 이용하지 말자.
한 사람이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와 함께한 팀원들이 있기에 긴 시간 버틸 수 있었고, 그를 응원하고 지지해준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이국종 교수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버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직 한국에 뿌리 내지리 못한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의 굳건한 뿌리내림을 보기 위해서라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감사함이 넘쳤던 책...
글의 마지막, 함께 했던 이들의 ‘인물지’는 너무도 인상 깊었다. 이제라도 읽어 참 다행이다.
골든아워 1권
한국은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외상 환자가 수술이라도 받다가 사망하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 현실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길에서 죽어나가고, 이런 죽음의 기록은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라는 허망한 숫자로만 표기될 뿐이다. _7p.
책에 기록된 내용은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모두 사실이다. 기록의 대부분은 2002년에서 2018년 상반기까지의 각종 진료기록과 수술기록 등에서 가려 뽑았고, 내 기억 속의 남겨진 파편들을 그러모았다. 또한 이 기록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환자와 내 동료들의 치열한 서사다. 외상으로 고통받다 끝내 세상을 등진 환자들의 안타까운 상황과, 환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싸우다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냉혹한 한국 사회 현실에서 업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각자가 선 자리를 어떻게든 개선해보려 발버둥 치다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흔적이다. _10p.
‘외상(外傷)’이 몸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에 의해 손상된 모든 것을 의미할 때, ‘중증(重症) 외상’은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외상으로 반드시 ‘수술적 치료’ 및 집중치료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어딘가에 부딪히고 깔리거나 떨어져서 혹은 무엇인가에 관통당해 사지와 뼈들이 으스러지고 장기가 터져나가는 경우들이다. 이때 환자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헬리콥터를 이용해서라도 이송은 신속해야 하고, 이송 중 적절한 처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최종 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도달해야 한다. 도착과 동시에 빠른 진단, 수술, 집중치료가 이어져야 하므로 수술방과 중환자실이 받쳐줘야 한다. 마취과부터 혈액은행, 의료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의료 자원도 신속히 투입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중증외상 환자들에 대한 ‘치료 원칙’이다.
한국에서 이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현장의 의사가 아닌 의과대학 학생들이다. 외상외과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원칙적이고 쉬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 자격시험을 볼 때 90퍼센트 이상의 정답률을 보이는 기본적인 외상환자 치료 원칙은 현장에서 뒤틀렸다. 나는 한국의료 현실에 경악했다. 졸업 후 현장에서 임상 근무가 시작되면, 이 원칙은 곧 뇌리에서 사라진다. 수술할 의사는 없고 마취과 의사와 수술방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중환자실 자리는 언제나 부족했다._47p.
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증외상 센터로 오는 환자들의 이송 시간은 평균 245분, 그 사이에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그렇게 죽어나가는 목숨들은 선진국 기준으로 모두 ‘예방 가능한 사망’이었다.
사지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져나간 환자에게 시간은 생명이다. 사고 직후 한 시간 이내에 환자는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와야 한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골든아워(golden hour)’다. 그러나 금쪽같은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는 앰뷸런스로 이송 가능하지만 먼 거리는 상황이 다르고, 가깝더라도 차가 막히는 러시아워가 되면 환자들은 길바닥에 묶였다. 고속도로나 일반 도로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앰뷸런스로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가 헬리콥터로는 20분 안쪽이면 충분하며 이송 중 응급 처치까지도 가능하다. 그렇게 실어 온 환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당연히 높다. 내가 미국에서 보고 런던에서 보고 일본에서 봤던 ‘사실’이었다.
나는 헬리콥터를 이용한 이송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개 지방 병원의 외과 의사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죽지 않아도 될 환자를 죽지 않게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했고, 그 의지를 실현시킬 ‘정책’이 필요했으며, 관련된 자들의 ‘합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책을 누가 만드는지는 알 수 없었고 확실한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결정적인 제약과 한심한 조치들은 늘 보이지 않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로부터 몰려왔다._156p.
'외상외과 의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최말단이었다. ... (중략)... 아니, 이렇게 확실한 문제가 있으면 저희들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왜 이렇게 오래 놔두셨습니까?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속에서 치솟는 불길이 머리끝에 닿았다. 긴 바늘이 머리를 쑤셔대듯 두통이 밀려왔다. 지난 10년 가까이 내가 올린 수많은 자료들과 직접 작성한 ‘수혈 비용 삭감에 대한 이의신청서’는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혔단 말인가. 일개 의사의 불만이라도 10년 동안 지속되면 한 번은 귀 기울여줄 만했다. 나의 절박함이 그들에게는 하찮은 모양이었다. 가까스로 화를 삼켜 눌렀다. 따지고 들어 좋을 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하고 회의 자리에서 물러 나왔다. 신경 마디가 뚝뚝 끊어져나가는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고, 뜨거운 것이 여전히 울렁거렸다. _320~322p.
팀이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내 몫이 어디까지인지 나조차도 모르지만 내가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될 때가 오면 정경원이, 권준식이, 김지영이, 그다음의 누군가가 또다시 이어나갈 것이므로 아직은 조금 더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밥벌이의 이유는 늘 헐거웠으나 그것만큼은 중요했다._448~449p.
골든아위 2권
외상외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목숨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모든 고통을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의 최종 희생자는 내 주위 사람들이다. 거의 완벽하게 건강을 회복한 젊은 환자는 연인과 행복해 보였으나, 외상외과 의료진은 강도 높은 노동 현실에 꺾이며 쓰러져나갔다.
민족의 명절 좋아하시네…….
습관성 멘트처럼 나도는 ‘민족의 명절’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사방에서 떠드는 ‘민족’이나 ‘국민’ 안에 나나 우리 팀원들은 속하지 않았다. 분명히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_61~62p.
배가 수면 아래로 완전히 잠겼다. 정부의 많은 부처들은 바다 밑으로 배가 사라지고 나서야 분주해졌다. 구조작업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속절없이 보내버렸다_89p.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나는 늘 내가 어디까지 해나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답이 없는 물음 끝에 정경원이 서 있었다.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 나는 정경원이 서 있는 한 버텨갈 것이다. ‘정경원이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이끌고 나가는 때가 오면’이라는 생각을 나는 결국 버리지 못했다. 그때를 위해서 하는 데까지는 해보아야 한다. 정경원이 나아갈 수 있는 길까지는 가야 한다……. 거기가 나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_331~3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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