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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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나만 보는 노트인데도 솔직한 마음을 쓰는 것이 어렵다. 직접 겪은 일을 쓰는 것도, 그때의 기분과 감정을 정확하게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땐 거짓말을 쓴다. _114p.

단순히 책표지가 마음에 들어 선택했던 <내가 말하고 있잖아>, '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첫 문장에 사로잡혀서 책을 읽을 때마다 첫 문장을 읽고 다시 읽기를 시작했던 책이다. 언제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는지 모르게 시작된 증상으로 언어교정원에 다니게 된 열네 살 소년. 그곳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이유로 같은 장소에 모이게 된 사람들과 함께하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이 아닌 놀림의 대상이 되어버린 소년.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은밀한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가는데, 언어교정원에서 비슷한 결핍을 가진 이들과 언어교정을 위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함께 언어를 교정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서로의 모습을 상대방으로부터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뱉어내지 못한 말들을 노트에 적어가던 소년의 글은 일기 형식을 넘어서 소설의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고 소년의 내면도 그만큼 단단해짐을 느끼게 된다. 모르는 타인에서 서로의 결핍으로 연대를 하며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은 소년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과 가족과 학교로부터 배제된 감정을 풀어가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말더듬이인 자신을 미워하고, 상처준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가던 소년이 스스로 말더듬이증상을, 그리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스스로 치유되어가는 과정은 온 마음을 다해 읽게 되는 책이다. 읽는 문장들의 결이 단단하고 고와서 꼭 필사해보고 싶은 책 <내가 말하고 있잖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기에도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애정 결핍자들은 안다. 우리는 끌려다닌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고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에 입은 벌어진다. _10p.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날이다. 별일이 다 있었고 별 사람들이 조금씩 다르게 마음을 건드렸다. 속지 마. 냉정한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 끝까지 헹가래질하다가 마지막에 받아 주지 않을 거잖아. 웃게 만든 다음 울게 만들 거잖아. 줬다가 뺏을 거잖아. 내일이면 모른 척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 거야. 끝. _21~22p.

책을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에겐 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 종이에 적힌 문장은 부끄러움이 많아 종이에 달라붙어 있는 건데 그걸 억지로 뜯어내 말로 하는 건 옷을 벗기는 것처럼 수치를 주는 짓이다. _34

엄마는 잘해 주고 싶어 사랑에 빠지는 여자다.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고 누군가 그 손을 잡아 주면 사랑이 시작된다. 엄마는 나와 닮아 최고 속도로 사랑에 빠지고 그만큼 깊이 상처받는다. 구멍이 뻥 뚫린 마음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하지만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상처를 받아도 엄마는 사랑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상처를 받으려고 사랑을 하는 사람 같다. _39p.

하기 어려운 말. 할 수 없는 말. 해도 해도 더듬는 말. 단어와 문장을 낙서하듯 써 내려간 깨알 같은 글씨가 장마다 가득했다. 그것은 마치 입술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가둬 둔 감옥 같았다. 나는 손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읽어 봤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막힘이 없다. 입술에 살짝 올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더듬지 않는다. 참 이상하지. 말이 뭐길래. 소리가 뭐길래.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게 힘든 걸까. ... (중략)... 문득 그들은 왜 더듬게 됐을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을 쓰진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그들은 왜 어른이 될 때까지 말을 고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말더듬이로 살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슬프고 기분이 나빠지는 상상이다. _66~67p.

경험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면 좋지 않다. 누구든 어떤 이야기든 오래 들으면 결국 다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듣게 된다. 알게 되면 아는 만큼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만큼 괴로워진다. 그 사람을 걱정하게 되고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사랑하게 되고 반대로 미워하게 된다. _126p.

사람들이 내 명찰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용복아, 안녕. 오랜만이야.

환영 환영한다, 용복. _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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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 - '센스 있는 사람'이 되는 생활·일·마음가짐 단련법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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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쓰기'는 곧 '생각하다'여서, 사고하는 데 있어 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감각적인 것을 포착해 하나하나 말로 구현해나가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포착해서 말로 표현한 것을 문장으로 써나가면 더욱 다양한 세상이 보이게 됩니다. 문장을 쓰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괴로운 일이지만, 그 끝에 탄생하는 것은 어딘가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 완전히 자신의 것입니다. _36p.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마쓰우라 야타로는 일본 직장인들이 닮고 싶어 하는 작가라고 한다. <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는 일상생활 속의 모든 행위가 그 사람의 감각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사소한 행동일수록 그 사람 알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학교나 사회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좋은 감각' 감각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감각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감각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갈고닦은 방법을 정리한 글은 읽는 이의 페이스대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나 좀 더 향상시키고 싶은 감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찾아볼 수 있는 글이다.

LESSON 1 감각이 좋은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요?

LESSON 2 나만의 감각을 기르는 중입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지닌 감각들을 생각해보고 나만의 필요한 챕터를 참고해 나만의 감각을 만들어갈 수 있다.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좋은 감각 기르기 연습 노트'를 활용해 조금 더 깊이 있는 감각 탐구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생활과 삶 전반에 도움이 되는 좋은 감각 키우기, 나는 센스 있는 사람인가? 궁금하다면, 마음가짐을 다잡아보고 싶다면 일독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때로는 칠흑 같은 어둠 속 발밑이 안 보이는 곳에서도 점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미터 정도의 발이 충분히 닿을 만한 곳에서는 점프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에서 용감하게 점프할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_71p.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 속의 나'라는 감각이 약해지는 모양인지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느낌을 풍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향이 어떻건, 내 목소리가 어떻건 상관없다. 혹은 타인들이 어떻게 여기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언제 어떤 때라도 자신은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_92p.

인생 최고의 선생님은 부모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이라면 어머니, 남성이라면 아버지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이보다 좋은 선생님은 없습니다. 눈앞에서 인생을 가르쳐주고 있으니 말이죠. ... (중략)... 자신의 부모를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실제로 좀처럼 자신의 부모를 자세히 살피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_148p.

#좋은감각은필요합니다 #마쓰우라야타로 #최윤영 #글담출판사 #indigo #감각 #프로페셔널 #inspiration #직장인 #관계 #생활습관 #워라벨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book #bookstagram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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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유주얼 an usual Magazine Vol.9 : 응 치킨
황인찬 외 지음 / 언유주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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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유주얼 9호의 주제를 치킨으로 하자는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런 식의 이야기를 수없이 생산해서 끊임없이 반복했다. 긴 이야기 끝에 나는 매번 '그래서 치킨이란 뭐다' 딱 부러지게 말을 못 했고, 회사에서는 내가 취한 사람처럼 치킨 서사를 하고 또 하도록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 너무 물질이고 너무 음식인 치킨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비물질과 정신적 영역이 깃들어 있고, 그것이 우리 잡지의 주제 중 하나가 되기에는 몹시 충분해 보였다. _ #김희라

한창 성장기에 있는 큰 조카와 가까이 살다 보니, 치킨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치킨을 먹게 된다. 시장 치킨부터 다양한 양념치킨까지 장르도 다양하고 유튜브나 게임에서도 치킨 관련 이벤트를 많이 하다 보니 생각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조카의 이야기에 빵! 터지기도 한다. 어느 날은 "이모 '오저치고'라고 아세요? 오늘 저녁 치킨 고!에요." 하며 깔깔대며 웃는데 이게 또 한동안 유행이 돼서 일주일에 3~4회 치킨을 먹....

올여름, 유독 긴 장마로 인해 피해 지역이 늘어나고 여름휴가는 생각도 못 할 시기라 기분전환이 될 읽을거리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열광하는 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 치킨처럼 언유주얼 <응 치킨>에는 기대만큼이나 다양한 작가의 글과 작품이 실려있어 시각적인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을 더해 읽으며 어느새 배달앱을 열심히 검색하고 있게 된다. 치킨을 먹으며 읽으면 더 맛있게 읽을 수 있는 언유주얼 <응 치킨> 모쪼록 남은 여름도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닭은 잘 정돈되고 포장되어 판매된다. 그렇기에 닭고기는 닭으로부터 분리된다. 치킨은 이 분리를 더 심화시킨다. 치킨은 닭이 아니다. 치킨은 하나의 스펙터클이자 장르이다. 치킨은 모든 사육과 도살의 과정을 생략한 채, 부위별로 조각나고, 뼈까지 제거되고, 튀김옷과 양념으로 포장된, 다양하고 화려한 패턴으로 우리의 눈앞에 선사된다. 이제 치킨은 그저 대중적인 먹거리가 아니라 모종의 독자적 기호로서 대중의 삶을 지배한다. 현대사회의 치킨 포퓰리즘은 닭을 통해 사육되고 생산되고 관리되는 대중 통치의 메커니즘을 은폐한다. 또한 잔혹한 동물 사육과 학살의 역사를 은폐한다. 치킨은 이렇듯 양면성을 지닌다. 가장 평등하면서도 가장 기만적인 치킨! 치킨에 대해 내가 갖는 애증의 연원이다. _ #심보선

나에게는 그저 함께 치킨만 시켜 먹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함께 치킨만 시켜 먹어도 행복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서로를 위한 마음들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삶이란 그렇게 쌓여가는 것이라는걸, 나는 알고 있다. #정지우

콜을 띄운 지 5분 만에 자주 오던 배달 대행 라이더가 콜을 잡았다. 라이더가 너무 빨리 오면 압박이 되고, 너무 늦게 오면 초조하다. 조리가 완료되는 시간에 딱 맞춰서 오는 라이더가 제일 사랑스럽다. 이미 두건의 다른 배달을 잡은 라이더가 조리 시간에 딱 맞춰서 치킨집에 도착한다. 라이더는 앞선 배달 두 개를 끝내고 치킨을 실은 후 20분 만에 손님에게 전달했다. 손님은 운 좋게도 40분 만에 치킨을 받았다. 가게 사장님과 라이더 그리고 손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 (중략)... 초복의 밤. 닭 농가에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고, 배달 앱에는 무차별적인 할인 쿠폰이 뿌려지며, 도시 곳곳에선 오토바이 라이트가 무수한 별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_ #박정훈

언유주얼에 수록된 시와 소설과 에세이는 한 펼친 면에 담겨 페이지를 넘길 필요가 없다.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들이 우리의 일상을 관찰하고 상상하며 대변한다. 동세대 핫한 아티스트들의 최신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 누구든 잡지를 펼치는 순간 'AN USUAL' 기획전의 관람객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한 가지 집중하고,

그 한 가지에서 가지를 뻗어 인터뷰, 소설, 에세이, 시, 리뷰를 모아 만든 매거진.

평범해서 특별한 [an usual]

#언유주얼 #스튜디오봄봄 #카카오페이지 #anusual #anusualmagazine #Vol9 #out #응치킨 #치킨 #문화교양지 #잡지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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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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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는데. 세 번째 항암 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중략)... 오늘 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끝까지 내려와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기뻤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그냥 입원을 할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옆자리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사람의 죽음에는 드라마가 없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다. _13p.

어릴 땐, 젊을 땐, 여리여리하고 툭하면 쓰러지는 여주인공들이 참 부러웠다. '저 주인공은 저렇게 여리고 아파서 사랑받는구나.' 아픔을 고통으로 인식하기보다 로맨틱한 상황으로 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십대엔 하루 이틀이면 나을걸, 삼십대가 되어선 며칠을 앓게 되고, 사십대가 넘어선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몇 주에서 한 달 가까이 앓기 시작했다. (가장 큰 후유증은 호되게 아프고 나면 급 늙...) 주변 지인들의 투병 소식이나 갑작스러운 부고가 들려오기도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도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붓기와 무기력증이 좀 오래간다 싶었지만, 그게 큰 병의 징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악성림프종(혈액암의 종류)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는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온 삶. 그런 오랜 생활이 그가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가난하고 젊은 청년들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돕기 위해 고민 상담에 답장을 하며 깨달은 '불행을 인정하기'. 불행이 있다면 희망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버티며 살아야 하는 이야기들은 삶을 응원한다. 완치 판정 1년 만에, 그리고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허지웅의 글은 필력도 말투도 그대로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출간된 그의 글들 중 가장 좋았다. 허지웅, 그의 건강한 삶을 응원한다.

만약에,라고.

가장 괴로웠던 순간에는 늘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 (중략)... 만약에. 만약에. 그렇게 만약에, 가 쌓여 뭔가 단단히 움켜쥘 수 있는 닻과 같은 것이 되어준다면,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감정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나 인생은 대개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일의 연속이다. _59p.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_74p.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_166p.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맞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_141p.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_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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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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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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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겁에 질려 살다 보면 두려움이 어떻게 왔다가 사라지는지 알게 된다. 두려움이 나를 어떻게 장악할지도. 두려움이 어떻게 누그러지는지까지. 두려움이 내 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도. 그리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오기 전까지, 희망이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는지도 말이다. 다시 희망이 오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온다. 나는 인생에서 오직 한 가지 빼고는 두려울 게 없었다. 바로 헤로인이었다. _417p.

심플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책표지를 살짝 걷어내면 매직아이 같은 해골의 속표지를 만나게 된다. 체리,는 미국에서 전쟁에서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희망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어둡다. 부족하지 않은 가정, 대학에서의 생활은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고 방황하던 시기에 에밀리를 만나게 되었다. 마약에 취해 현실을 도피하며 살아가던 중 의료 특기병으로 군대에 입대하게 되는데, 입대 전 에밀리와 결혼까지 속전속결! 실제 전투에 투입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전쟁터에서의 하루하루는 의미도 모를 살상과 오늘의 전우가 내일은 없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되는데...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적응하려 했지만 점점 더 헤로인에 중독되어갈 뿐이다. 약을 구하기 위해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을 사용하고, 급기야 은행에서 돈까지 훔치게 된다.

분명 가독성은 뛰어난 책인데, 짧은 문장이 글 읽기의 호흡을 묘하게 끊는 것 같아서 짧은 문장이 모여있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읽으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다듬고 있기도 했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올 때면 이 인물로 인해 뭔가 사건이 일어나나? 기대하게 되다가도 김빠지게 정말 정석처럼 도와주고만 빠지는 인물들도 있었고, 군 복무 이후의 삶은 헤로인을 구하기 위한 과정, 과정들의 연속이라 내가 그 속에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에밀리와의 애틋한 로맨스? 러브라인도 기대했지만 그저 함께 기대어 약물중독이 되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미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 부족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2020년 하반기 스파이더맨의 톰 홀랜드 주연, 루소 형제 감독이 영화제작 중이라고 하는데 영화로는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일에 발을 들였고,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딱 한 번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다음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버릇처럼 계속되고 만 것이다. 상황이 좋아졌다가 다시 안 좋아지기를 반복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최악의 상황에 내팽개쳐진 것이다. 어쩌면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총까지 들고 다니면서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_19p.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여자가 존재한다. 가끔 그 생각만으로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그렇게 많은 여자가 그렇게 반짝이면서 그녀들만의 보이지 않는 세상과 비밀스러운 언어, 그 밖의 것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시작하는데, 우리가 모든 걸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내 인생에 나타난 포악한 살인마들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지만, 그들도 누군가에게 먼저 당했기 때문에 그런 거였다는 데는 한 치의 의구심도 없었다. 마치 나처럼. ...(중략)... 내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해도 에밀리의 잘못은 아니다. 이쯤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해 둬야겠다. _32p.

그때 우리가 장난으로 거기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인생을 망치거나 폭탄에 맞아 죽거나 시간을 낭비할 목적으로 군대에 왔다고 생각했지, 그게 뭐가 됐든 실제로 전쟁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_179p.

가을 무렵에야 우리 모두 살짝 얼이 빠졌다는 걸 알아챘다. 그 상태에서는 아무도 상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다. 문을 발로 차고 집을 부수고 사람을 총으로 쏘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시간만 낭비했다. 우리는 패배했다. _235p.

은행을 털려는 사람 중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사악하기만 한 개자식들은 절대로 남의 것을 훔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절도를 저지른다는 건 일종의 굴욕감 문제였다. 혹시 누군가에게 멸시당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조심해야 한다. 당신도 절도범이 될 수 있으니까. _3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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