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윤예지 그림, 박태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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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70여 나라, 82개 언어로 번역되어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영혼을 뒤흔드는 문장력으로 '언어의 연금술사'라고도 불리는 파울로 코엘료. 그간 읽어왔던 그의 글과 달리 짧은 문장에 담긴 글은 매일 조금씩 읽기에도 부담없고 윤예지 작가의 그림이 문장의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책장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코엘료의 책들, 마음이 힘들어 갈피를 잡지 못했던 시기 제일 많이, 자주 들었던 책은 코엘료의 책들이었다. 지금은 1년에 한 번도 꺼내보기 힘들지만 당시엔 안쪽이 있음에도 궂이 꺼내어 몇 페이지라도 넘겨보곤 했던 그의 책들이 왜 뒤로 뒤로밀렸을까? 아마도 그때의 불안정한 마음이 지금은 많이, 어쩌면 제법 안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 이번 신간을 받아들고 '정말 코엘료의 글이라고?' 표지의 소개도 찾아보고 휘리릭 넘기며 짧은 문장부터 조금씩 읽어보기도 했던 이번 책은 전세계로 확산중인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며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이들에게 전하는 메세지이기도 하다. 사실 윤예지 작가님의 글이 코엘료 작가의 글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어 그림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 지치고 지치는 여름,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을듯하다.

#선을넘지말기

이따금 우리는 화를 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화를 낼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잔인해질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닙니다. _34p.

#나는_나의_ 수호신

누군가 당신을 공격하면 당신도 공격하세요. 언젠가 용서하더라도 말이죠. 용서는 용서, 대응은 대응입니다. 행여 무대응을 관용이라 생각하지 마시기를. 침해당해놓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겁쟁이일 뿐입니다. _125p.

#영혼의_만남

책을 산다는 것은 단지 내용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간에 걸친 착오와 고된 작업을 사는 것이고, 수많은 좌절과 기쁨의 군산을 사는 것이죠. 책을 산다는 것은 저자의 마음과 나의 영혼.... 그리고 내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_142p.

#내가빛나는순간 #파울로코엘료 #윤예지그림 #자음과모음 #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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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고재욱 지음, 박정은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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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치매 환자를 지역사회에서 보듬고 있고, 우리는 치매 환자를 요양원으로 보내고 있다. 일본 요양원에서는 치매 환자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는데, 우리는 한 번 들어온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막대한 세금이 사용되고 있는데, 어떤 요양원은 그 세금을 이용해서 세를 불리고, 1등급이라고 하는 와상 환자(누워만 있는 환자)에게 권리금을 더 얹어서 요양원 매매 광고를 올린다. _143p.

삶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우연히 발걸음 하게 된 한 노숙인 쉼터에서 무기력한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외롭고 차가운 죽음을 목격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지를 다지고 요양보호사로서의 삶을 7년째 살고 있는 저자 고재욱이 요양원에서 치매환자들을 돌보며 적어내려간 글이다. 해마다, 매년 늘어가고 있는 노령인구는 점점 더 폭발적으로 늘어갈 전망이라고 한다. 둘러보면 요양원, 요양전문병원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데 언제고 내가 저 시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글쎄... 어떨까? 저자의 글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생생하고 지금의 삶을 부모님과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하고 그려보게 된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2~30년 후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치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노력해볼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가까운 일본의 경위 치매가 아닌 '인지증'으로 명칭화하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교육하고 기억을 잃어가는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 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요양원, 요양병원이라는 시설에 들어가면 '죽기 전엔 나올 수 없다.'라는 인식이 더 깊은듯하다. 실제로 나아져서 집으로 돌아가시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사실 별생각 없이 읽자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베풀고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써주신 저자에게 이 글을 써주어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하루라도 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추억쌓기를 해야겠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행복하고 행복하길...

이 책은 요양원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두서없이 뒤섞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엮은 글이다. 치매 노인들의 조각난 기억들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반복되는 퍼즐 맞추기를 하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요양원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 죽음 앞에서 하찮은 삶은 없었다. _7p.

삶이라는 이야기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결코 피할 수 없다면 당당히 마주하는 편을 택하고 싶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도 나는 아직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도 나는 아직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타인의 죽음에는 관대하고 나의 죽음에는 반쯤 눈을 감고 있었다. 이제 나는 눈을 뜨고 미래의 죽음을 살펴보려고 한다. 현재의 삶을 위해, 오늘을 위해서. _21p.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보다 보면,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지금껏 수백 명의 노인들을 봐왔지만, 나는 아직까지 자식을 원망하는 노인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단 한 명도 없었다. _111~112p.

치매 환자 수가 2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계속 늘어간다. 아직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 참 무섭고 힘든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병이 치매다. 치매 환자를 가정에서 홀로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족을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면, 너무 가슴 아파하거나 죄책감 갖지 말고 이제 요양원과 보호자가 함께 치매 환자를 돌본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_198p.

삶의 마지막 시간을 알고 있다면,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며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될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며 살지 않을까? 삶의 마지막 시간은 반드시 온다. 누구에게나. _283p.

우리나라 요양원의 목적은 무엇일까? 치매 환자는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우리나라에서는 치매 환자의 사회 복귀가 희귀한 일이 되었을까? 치매 노인이 죽기 전까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대규모 요양원 공사는 계속된다. _312p.

우리는 언제나 내일을 떠올리며 산다. 바쁜 오늘 때문에 당장은 급해 보이지 않는 일, 사랑이나 행복 같은 일들은 내일로 잠시 미뤄둔다. 하지만 내일이면 너무 늦을 수 있다. 모든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오늘 당장 사랑하는 일, 오늘의 행복을 참지 않는 일이다. 오늘이 세상의 첫날인 것처럼 온통 나와 당신을 사랑하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행복해야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마음뿐이기에. _325p.

#당신이꽃같이돌아오면좋겠다 #고재욱 #박정은 #웅진지식하우스 #웅진북적북적 #에세이 #요양보호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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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 다카노 시리즈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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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 이외의 인간은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 결과가 이 길의 상태와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 이외의 인간은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에는 아직 도망갈 길이 남아 있다. 오직 한 사람, 자기 자신만은 믿어도 된다는 뜻이다. _141p.

다카노 시리즈 (3부작)으로 출간된 <숲은 알고 있다>를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시리즈 순서상 앞의 두 권중 어떤 책을 먼저 읽어도 크게 상관이 없을듯하지만,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의 프리퀄인 다카노의 오키나와의 외딴섬에서의 고교시절, 스파이 조직의 첩보훈련을 받는 중인 예비 요원인 다카노와 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 <숲은 알고 있다>를 먼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기 전 책의 줄거리만 슬쩍 보곤, 고교생이 웬 첩보원? 이란 생각도 하게 되지만 웬걸! 다카노의 캐릭터가 꽤 매력적인다. 말로 하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신의 과거는 말소된 채 새로 받은 생을 살아가며 AN 통신의 스파이로 길러지고 있는 다카노. 일정 나이가 되면 심장에 폭파 장치를 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보고를 하는 삶을 35살까지 살아내면 무엇이든 원하는 한기지를 받아서 조직생활을 마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조직의 룰. 조직에서의 마지막 훈련을 앞두고 함께 동고동락하던 야나기가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알게 되는데.. 섬에서 야나기와 다카노를 훈련시킨 도쿠나가, 섬으로 오기 전 자신을 맡아주었던 가자마 부장, 그리고 훈련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국계 정보원 데이비드 김(변요한 꺅!) 등 누굴 믿어야 하고 누가 배신자인지 긴박하게 진행되는 스토리를 따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 <숲은 알고 있다>를 읽고 바로 이어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를 읽는 중이다. 소설을 읽고 나니 한효주와 변요한이 출연한 영화도 궁금해지고 나머지 시리즈도 바로 읽어볼 예정이다. (시리즈로 준비해두고 읽기를 추천!)

#다카노시리즈

스토리상 순서 #태양은움직이지않는다 #숲은알고있다 #워터게임

시간상의 순서 <숲은 알고 있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워터게임>

자기가 속이는 상대에게는 반드시 자기도 속아. 꼭 명심해둬. _183p.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는 고아들을 모아서 AN통신이라는 산업스파이 조직에서 일하게 한다'라고.

_218p.

사는 게 괴로우면 언제든 죽어도 좋아! 하지만 생각해봐! 오늘 죽든 내일 죽든 별로 다를 게 없어! 그렇다면 오늘 하루 만이라도 좋아...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봐! 그리고 그날을 살아내면, 또 하루만 시도해보는 거야. 네가 두려워서 견딜 수 없는 것에서는 평생 도망칠 수 없어. 그렇지만 하루뿐이면, 단 하루뿐이면, 너도 견딜 수 있어. _326p.

#숲은알고있다 #요시다슈이치 #서혜영 #은행나무#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book #book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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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장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9
이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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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은 환상을 부추긴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우주 저편 어딘가에는 지구인보다 훨씬 우월한 문명을 건설한 외계인이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처럼. 그런 환상은 가슴을 뛰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불공평했다. _33p.

오동면이라는 작은 고장, 오동면에서 자라 쭉 같은 학교를 자란 오동 고등학교 2학년 네 명의 단짝 친구들. 어느 주말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카페의 인테리어를 보고 작은 충격을 받는데,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장 같은 허름한 건물에 옛날 물건들을 불편하게 진열해두고 음료값도 비싼데 서울 사람들은 줄 서서 사진을 찍고 sns에 인증하기 바쁘다.

서울에서 오동면으로 돌아오며 이 귀여운 친구들은 비어있는 공장들을 돌아보며 제격인 자리를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각자 자신의 집에 있는 작은 소품들을 하나씩 들고 와서 자신들의 아지트처럼 꾸미다가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던 유정, 영진, 민서, 나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카페, 공장'에서 자신들이 해보고 싶었던 시작해본다. 비어있는 공장이라지만 임대차 계약도 안 하고? 사업자등록도 없이? 미성년자들끼리? 위생교육은? 등등 일반적인 잣대를 드리우면 하지 못할 이유들이 더 많다. 그런데 유명 SNS에 소개되면서 느닷없이 유명해져버리기까지 했다. 저자의 생생하면서도 재치 있는 상황들은 흥미로우면서도 어느새 아이들의 꿈을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내일, 하지만 보다 많은 아이들이 꿈을 꾸며 살아가기를...

오동면에서는 공간이 남아돈다. 우선 하늘, 탁 트인 하늘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없다. 낡은 단층 주택과 반지하를 낀 이층집들이 대부분이다. _9p.

"울 동네 위쪽에 빈 공장들 많이 있잖아? 거기가 딱 여기 같은 분위기 아냐?"

...(중략)... "가는 건 좋은데... 가서 뭐 하게. 진짜 카페라도 차리려고?"

"까짓것 진짜 차리지 뭐. 어차피 장난인데." _35p.

단짝 사이에도 미처 모른 채 지냈던 기질과 습관들이 카페에서 일하다 보니 두드러졌다. 놀 때는 눈감아 주었던 것들이 일일이 신경을 긁고 뒤끝을 남겼다. _113p.

"우리 카페 아직 재미있잖아. 안 그래? 힘들어도 재미있잖아."

정이의 솔직한 말이 모두의 머리와 마음을 열었다. 카페 공장은 재미있다. 책임감이나 자기만족 같은 말을 붙일 필요도 느끼지 못할 만큼 재미있으니까 계속하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지금껏 이만큼 재미있는 일을 해 본 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적도 없었다. _170p.

".... 예전으로 돌아가기 싫어."

영진이 혼잣말했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싫었다. 지금까지는 찍어 낸 듯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카페 공장 덕분에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이 다가온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알아 버렸으니까. _196p.

#카페공장 #카페_공장 #청소년문학 #소설 #이진 #자음과모음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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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이야기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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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이야기』는 전기가 아니다. 한때 이름을 날린 서커스 단원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한편의 소설이다. 서커스 곡예의 본성과 그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전쟁 중에도 계속된 서커스 곡예처럼, 나 역시 작가로서 대단한 자유를 누리며 작품을 집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과정에서 접한 실제 인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백하고 싶다. 독일 군대에 쫓기는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렌느와 피터,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지켜 낸 서커스 단장 아돌프 알토프 그리고 나치 경찰들이 유대인을 수색하러 찾아올 때마다 사용한 기발한 은신 방법 등 모든 것이 이번 작품을 집필하는 데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작가 인터뷰 중에서

독일군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집에서 쫓겨난 노아, 사랑만 믿고 결혼한 독일군 남편에게 총통의 명령이라며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이혼 통보를 받은 아스트리드. 고향을 찾은 아스트리드는 가족들이 떠난 동네에서 동종업계의 노이호프 씨 서커스단에서 다시 공중그네를 타게 되고, 이렇게 같이 떠돌다 보면 언젠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낳은 아이는 아리아계 순혈이라는 이유로 독일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혼자 기차역에서 청소 일을 하며 살아가던 노아는 우연히 역에 정차한 화개 열차 안에 버려진 것처럼 놓인 아기들을 보게 된다. 얇은 옷 한 겹만 입은 아기들은 대부분 얼어 죽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 사이에서 노아와 눈이 마주친 아이를 안고 도망치게 되는데...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 속에 진행되는 「고아 이야기」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버림받은 두 여인의 이야기를 릴레이처럼 이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고아 이야기」를 다 읽고 다시 보는 책표지는 참으로 아련하고 애틋하다.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며 생계를 이어갔던 독일 서커스단의 뛰어난 공중곡예사인 아스트리드, 테오와 자신을 위해 서커스에서 공중그네를 타야 했던 노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대인을 서커스 단원으로 위장시켜 보호한 노이호프 단장. 하루하루 급박한 상황을 살아가는 두 여인의 비밀과 우정은 이야기의 후반으로 달려갈수록 페이지 넘김을 멈출 수 없이 속도감을 더한다. 긴박한 순간들을 넘기며 살아가야 했고,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두 여인의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한 여운으로 남아 실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갓난아이의 머리가 다른 아이들 사이로 삐죽이 솟아 있었다. 하트 모양의 얼굴은 지푸라기와 대변 찌꺼기로 뒤덮인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는 고통스럽거나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이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힘들게 뱃속의 아이를 출산한 그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석탄처럼 까만 눈동자, 순간 심장이 복받쳐 올랐다. _24p.

"상부에서 유대인과 결혼한 장교들에게 이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어." 남편의 설명이 이어졌다. ... (중략)... 어디로 가라는 건가? 우리 가족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당장 독일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통행허가증조차 없지 않은가? 나는 얼이ㅣ 빠진 채로 여행 가방을 꺼내서 휴가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짐을 챙겼다. 가방에 뭘 챙겨야 할지 제대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_41~43p.

"진정한 공중곡예사가 되려면 평생 피나는 연습을 해야 돼. 그만큼 노력해야 관객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거야. 서커스는 마법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어. 우리가 선보일 공연이 전부 진실이라고 믿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_85p.

그네 손잡이에 매달려서 무력하게 앞뒤로 몸을 흔들고 있는데, 연습실 복도의 높은 창문 너머로 지평선의 일부가 살짝 눈에 들어왔다. 저 언덕 너머로 갈 수만 있다면 독일을 벗어나서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줄 출구를 찾을 수 있을 텐데. 테오와 함께 이 공중그네를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버릴 수만 있다면! 순간 머릿속에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서커스단을 따라서 프랑스로 가는 거야. _113p.

“바보들이나 두려워하디 않는 거야. 힘든 상황일수록 두려움을 놓지 말아야 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러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기를 바랐어. 우리 아버지도 나를 공중에서 떠민 적이 있어. 네 살 때.” ... (중략)... 우리 둘 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아스트리드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셈이니까, 게다가 가족을 잃었다는 점에서도 똑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면에서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_134~135p.

"언젠가 생각이 바뀔 때가 올 거야. 우리가 말하는 영원한 인생은 생각보다 짧은 법이니까." _205p.

최근까지만 해도 서커스는 포탄이 오가는 전쟁에서 유일한 안식처였다. 마치 외부에서 벌어지는 세상사와 동떨어진 하얀 눈이 날리는 스노볼 세상처럼. 하지만 그 벽마저 금이 가서 부서지기 직전이 되어 버렸다. 다름슈타트에서 프랑스에 도착하면 안전해질 거라고 말했을 때 아스트리드가 보인 반응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그녀는 진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그 어느 곳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_2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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