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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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우리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어. 언제나 그랬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 모른다.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큰 거짓말이었지만 그녀는 이해했다. 세상이 그를 어떻게 짓밟았는지 생각하면.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랬다. _258p.


3년 전, 마스크도 없고 여행이 자유로웠던 2017년 가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코라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던 콜슨 화이트헤드. 2017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2020년 <니클의 소년들>로 퓰리처상 역사상 이례적인 두 번의 수상을 한 작가라고 한다. 페이지 수에 비해 가독성이 뛰어나지만 읽고 난 감상을 정리하기엔 쉽지 않은 책이다.


사회에서 다양한 죄를 짓고 니클 아카데미에 모인 소년들은 입소하는 순간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어 생활하게 된다. 죄수가 아닌 학생으로 부르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게 하지만 수업은 형편없었고, 그저 소년들의 노동을 착취하며 니클의 학생주임과 직원들의 분풀이 대상, 성 노리개 등 한낱 유희로 여기며 스펜서 학생주임은 기분에 따라 클리블랜드의 아이들을 아이스크림 공장으로 데려가 채찍질하며 공포로 아이들을 다스린다. 엘우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 같던 이야기는 니클아카데미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간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고, 잔인할 수 있다는 건 지난 오랜 세월 수많은 전쟁의 역사들과 기록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지만, 역경을 딛고 살아내 치유하며 보란 듯이 살아내는 것 또한 사람이 아니던가.


인종차별은 있지만 평범했고 자신이 잘하는 공부와 근면 성실함으로 지금의 삶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공부를 하고 싶었던 엘우드. 한 번의 히치하이킹이 그를 감화원으로 가게 했고,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책장을 덮으며 이 책이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이라는 첫 문장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알 수 없는 적의만 가득한 배척, 육체의 고통과 영혼까지 송두리째 흔들려버릴 것만 같은 고통은 '언젠가 졸업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와 삶을 그저 응원하며 묵묵히 읽어낼 뿐이다.


월마 간호사는 찰과상이나 기타 질병으로 찾아온 백인 소년들에게는 마치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하게 굴었다. 그러나 흑인 소년들에게는 단 한 번도 상냥한 말을 해주는 법이 없었다. 엘우드의 환자용 변기를 대할 때는 특히 모욕을 당한 것 같은 태도였다. _97p.


여기에서 특별히 사람들이 변하는 게 아니야. 여기든 바깥이든 다 똑같아. 다만 여기서는 아무도 가식을 떨지 않을 뿐이지. ... (중략)... "그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야." 나라와 법뿐만 아니라 엘우드의 법칙에도 어긋났다. 모두가 외면하고 묵인한다면, 모두가 한패라는 뜻이었다. 만약 그가 외면하고 묵인한다면,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공범이었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이랬다. _107


니클에서 자행되는 만행에 지침이 되는 상위 원칙 같은 것은 없다는 가설. 상대가 누구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악의가 있을 뿐이었다. _111p.


터너는 지금껏 엘우드 같은 녀석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에 자꾸만 떠오르는 단어는 '굳건하다'였다. 텔러해시 출신인 엘우드는 착하고 무른 모범생처럼 굴면서 짜증 나게 자꾸 설교를 하려고 드는데도 그렇게 보였다. 녀석이 쓰고 있는 안경을 발로 밟아 나비처럼 짓이겨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엘우드는 백인 대학생 같은 말투를 썼고, 꼭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을 읽어 자기만의 원자폭탄에 쓸 우라늄을 캐냈다. 그래도 여전히 굳건해 보였다. _135p.


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없다. 니클의 인종차별은 지독했다. _137p.


고통을 견디는 능력. 엘우드를 포함해서 니클의 아이들은 모두 이 능력과 함께 살아갔다. 이 능력 속에서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꿈을 꾸었다. 그것이 지금 그들의 삶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들은 스러졌을 것이다. 구타, 강간, 그들 사이에서 가차없이 벌어지는 적자생존. 그들은 견뎠다. 하지만 그들을 망가뜨린 자들을 사랑하라고? 그게 가능할까? _216p.


#니클의소년들 #콜슨화이트헤드 #김승욱 #은행나무 #은행이2기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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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 애써서 하는 일은 오래가지 않으니까, 한수희·김혼비·이유미·신예희 미니 에세이 수록
이치다 노리코 지음, 황미숙 옮김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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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달려도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지쳐버립니다. 그럴 바에야 그 '어딘가'를 정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달리는 동안 잠시 다른 곳에 들러 누군가와 수다를 떨거나, 잠시 휴식하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편이 훨씬 즐거울 것 같아요. ... (중략)... '정답'의 바로 곁에는 더 멋진 '덤'이 떨어져 있다는 것.... 그것을 주우면서 걷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_146~147p.


갑자기 일이 바빠지기도 했지만, 책을 펼치고 앉아도 글자만 읽히지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며칠이었다. 추위를 극심하게 타는 체질이라 갑작스러운 한파에 컨디션도 좋지 않아 조심스러웠던 며칠... 가까이 있던 에세이 몇 권을 넘겨보다 며칠을 끼고 목차를 뒤적여가며 아껴 읽었던 이치다 노리코의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은 '어른'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며 사느라 힘든 거였구나...라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Part 1 일 - 쓸데없는 완벽주의는 그만

Part 2 관계 - 무리하는 것은 그만

Part 3 일상 - 넘치게 준비하는 것은 그만

Part 4 스타일 - 피곤한 겉치레는 그만


나이대별로 사회적인 기대치도 있겠지만, 가까운 주변을 돌아보며 '난 어디 즈음일까?'라는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게 된다. 올 한 해만 돌아봐도 왜 이렇게 작아지기만 하는 건지.. 오래달리기에서 한 바퀴 이상이나 뒤처진 기분이랄까? 흔히들 나이 들어가면서는 행동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성격대로 만들어지는 얼굴이라고 하는데, 지금 대로라면 아주 괴팍한 할머니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심신의 안정과 위안이 되는 글을 더 많이 찾아읽고 생각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동안 애쓰며 살아왔던 삶이라면 덜어낼 건 조금 덜어내고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고, 못하는 일을 내려놓으면 그 자리엔 내가 잘하는 일도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효율적인 삶을 위해 비우고 내려놓으며 사는 과정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삶을 너무 소비만 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기를 이야기하는 글이기도 하다. 다가올 한 해를 준비하며 읽어봐도 좋을 책으로 추천! 한수희, 김혼비, 이유미, 신예희 에세이스트들의 미니 에세이는 책 속의 작은 선물!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해'하고 생각하는 나를 살짝 풀어주는 것, 그렇게 자신을 느슨하게 해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_055p.


누구나 완벽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최선의 상태로 산다면 AI와 무엇이 다를까요. 누구든 '못하는 일'이 있고, '해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거면 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을 끌어내어 무리하지 않고 차선의 삶을 살고 싶은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_078~079p.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못 하겠다며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고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 (중략)... '못하는 일'을 그만둬보면 내 안의 힘을 통째로 '할 수 있는 일'에 쓸 수 있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의 정밀도가 높아져서 더 잘하게 되지요. _263p.


#어른이되어그만둔것 #이치다노리코 #한수희 #김혼비 #이유미 #신예희 #미니에세이 수록 #에세이 #드렁큰에디터 #drunken_editor #에세이추천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2020문학주간 #문학주간 #문학은더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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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베리아 방랑기 - 백신애 수필 전집
백신애 지음 / 다봄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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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신춘문예 당선자 백신애의 수필집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100년도 전에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간 백신애의 수필은 2020년 지금에 읽어도 그 시대의 삶을 담백하면서도 위트 있고, 글쓴이의 기개가 느껴진다. 책표지의 날개에도 저자의 사진과 이력이 있지만 궁금해서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


1906년 5월 20일 경북 영천읍 창구동 출생. 어려서 독학하다가 16세 때인 1922년 영천 공립보통학교 졸업반에 편입학하였다.

1923~1924년에는 대구사범학교 강습과에서 수학하였고 이어 경북 경산군의 자인공립보통학교에 부임하였으나, 곧 사임하고 상경했다. 이후 조선여성동우회‧여자청년동맹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28년에는 시베리아를 여행했다. 1934년에 발표한 「꺼래이」는 이때의 체험을 작품화한 것이다. 1929년 「나의 어머니」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1929년에는 도쿄에 건너가 문학‧연극을 공부하다 1932년에 귀국했다. 이후 경산군 안심면 반야월의 과수원에서 기거하며 가난한 농촌민들의 세계를 체험했으며, 이것을 기반으로 「복선이」(1934), 「채색교(彩色橋)」(1934), 「적빈(赤貧)」(1934), 「악부자(顎富者)」(1935), 「빈곤」(1936) 등의 작품을 썼다. 1939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신애 [白信愛]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일제강점기의 소설가 백신애를 기리기 위한 백신애소설상도 있다는 건 저자의 이력을 검색하다 처음 알게 되었다. 빨래터에서의 일상, 버스를 타고 가다 낯선 남자의 웃음에 기분이 나빠져 친구에게 내리자고 손을 잡아끌었는데 "아가씨 나는 아직 더 가야 내립니다."아뿔싸!! 친구에게 눈치를 주고 손등을 꼬집다가 급기야 끌고 내리려 했던 게 그 남자였다니!! 이럴 데가 또 있습니까? 모 광고에서도 이런 에피소드가 등장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 광고를 만드신 분은 백신에 작가의 수필을 읽어보신 분이었던 듯? 외에도 친구와 말장난을 하다 기분이 나빠져 싸운 이야기는 '좀 센데?' 하는 기분이 드는 글도 있고, 대표격인 '나의 시베리아 방랑기'는 모험심이 정말 넘버원! (소설인가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들 정도로 위험천만하고 리얼!) 그녀가 그대로 나이들어 천수를 누렸다면 '사노 요코'같은 느낌의 작가로 남지 않았을까? 저자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면 한참은 앞서나간 삶을 살고자 했던 여성의 삶은, 순응하며 살기보다 자신의 바람대로 살고자 했던 여성을, 시대를 앞서 살아갔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글이다.


봄이 가 버리던, 늙음이 닥쳐오던, 무슨 상관 이리요. 즐거운 내일, 희망의 내일, 내 삶의 나뭇가지에 꽃 피는 내일. 그날만이 나에게 고대 될 뿐이다.

이 고대가 참된 나의 청춘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청춘을 굳게 잡고 놓지 않으리라... _33p.


“예, 너같이 미련한 인간은 다시는 없을 거야. 보통 사람이면 갓 갈아입은 옷이 그만치 버려지면 벌떡 일어나 피하든지 수건으로 닦으려고 나 해 보던지 얼른 집에 가서 빨기라도 할 것인데. 너는 마치 남의 옷을 버린 것 같이 한번 내려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어느 때같이 그대로 입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못 이겼다. 항복한다고 하였다. 대단히 미안한 일일세.”

하였다. 그 말에 나는

‘이 동무도 별일 없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구나’ 하는 실망이 들었다._49~50p.


#나의시베리아방랑기 #백신애 #백신애수필집 #다봄 #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2020문학주간 #문학주간 #문학은더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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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Art & Classic 시리즈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아일렛, 솔 그림, 진주 K. 가디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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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항상 그것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 이어진 몇 달 동안은 정말로 마법이 일어난 것 같았다. 경이로운 나날이었고, 찬란한 나날이었으며, 놀라운 나날이었다. 아! 그 정원에서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는지! 정원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정원을 가져봤다면,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 기록하면 책 한 권을 손쉽게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_379p.


메리는 인도의 집에서 부모님과 인도인 하인들이 콜레라로 죽거나 도망가 버리고 홀로 남겨진 메리는 부유한 고모부 댁으로 보내지게 된다. 황량하고 거대하기만 한 미슬스웨이트 장원에서 메리는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뿐이다. 그러다 숨겨진 정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고 정원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는데... 메리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깨닫고 제멋대로인 자신의 행동과 말이 마사와 벤, 그리고 울새를 알게 되고 정원을 거닐다 드디어 비밀의 정원을 발견하게 되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버려진 정원을 가꾸고 싶어진다. 마사의 동생인 디콘의 도움을 받아 '비밀의 정원'에 작은 기적을 만들어가던 메리는 사촌인 콜린에 대해 알게 되고 콜린에게도 자신이 경험한 것을 알려주고 싶고 자신을 비관만 하고 있는 콜린을 돕고 싶어진다.


사랑받지 못하고 제멋대로 성장한 메리와 아버지를 닮아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히스테릭한 유년을 보내던 콜린. <비밀의 화원>은 한 번쯤 읽어봤거나 애니메이션으로 봤었던 내용이라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읽어보긴 처음이었다. (요크셔 사투리대화체는 읽으며 웃음이 피식피식 나게했던 포인트.. ㅋㅋ) 아일릿, 솔이 표현한 약간은 거칠지만 따스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오일 파스텔화는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피어나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스토리도 아름답지만 그림만으로도 봄을 한가득 선물 받은듯했던 <비밀의 화원> 어른에게 동화가 더 필요한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출간 110주년, 그 긴 세월동안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었다는 <비밀의 화원>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출판사별로 다양하게 콜라보하여 출간되는 책들을 골라 읽어보는 재미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집에 얹혀 유모 없이 지내다 보니 메리는 어느 순간부터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상한 의문들이 피어올랐다. 엄마와 아빠가 살아 있을 때조차 자신은 왜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느낌을 받아보지 못했던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다른 아이들을 보면 모두 엄마 아빠의 다정한 보살핌을 받는데, 메리는 한 번도 누군가의 딸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인들이 있었고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 풍족했지만, 그 누구도 메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_28~29p.


메리 아가씨는 울새에게 한 발 더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주 열심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외톨이야.” 메리는 자신이 늘 짜증을 내고 심술을 부리는 이유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몰랐는데, 울새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았다._70p.


메리는 깊게 심호흡을 한 뒤, 길게 뻗은 산책로 쪽을 돌아보며 누가 오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길인 듯했다. 메리는 또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래야 진정될 것 같았다. 마침내, 커튼처럼 나부끼는 덩굴을 젖히고 문을 밀었다. 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렸다. 메리는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고, 문에 기대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렘, 놀라움, 환희로 벅차올라 호흡까지 빨라지고 있었다. 메리는 비밀의 정원 '안'에 들어와 있었다. _125p.


고모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장난감이나 책, 인형 같은 걸 사줄까?"

"혹시...." 메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땅을 좀 가져도 될까요?" _194p.


황무지는 파릇파릇했고 무슨 마법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 세상이 아름다웠다. 피리를 불듯 뾰롱뾰롱 지저귀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소리들이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새들이 연주회 시작 전에 음을 맞추어보는 것 같았다. 메리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햇살을 쓰다듬었다. “따뜻해, 정말 따뜻해!” 메리가 말했다. “이렇게 따뜻하면 연둣빛 새싹들이 쑥쑥 올라올 거야. 땅속에서는 알뿌리들이랑 다른 뿌리들이 최선을 다해 힘차게 뻗어 나가고 있겠지.” 메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창밖으로 몸을 쭈욱 내밀더니,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킁킁대며 바람 냄새를 맡았다._251p.


"살이 좀 찌고, 못생기고 뚱했던 표정이 사라지니까 점점 예뻐지더라고요. 머리숱이 많아졌고 아이가 전보다 건강해 보여요. 얼굴빛도 밝아졌고요. 예전에는 침울하고 심통만 부리는 아이였는데 요즘은 콜린 도련님과 쌍으로 미치기라도 한 듯이 웃느라 정신이 없어요. 어쩌면 그렇게 웃어서 살이 찌는 걸지도 모르겠네요."_420p.


씨앗을 키우구 태양을 빛나게 하는 바루 그 힘이 도련님을 건강헌 소년으루 만들어준 거여요. 그러니 어쨌든 ‘선한 것’이죠. 게다가 그런 힘은 우리 불쌍헌 멍청이들허구는 달라서, 다른 이름으루 불려도 하나두 불쾌해하질 않어요. ‘정말루 정말루 선한 것’은 그런 자잘헌 걱정 때문에 일손을 멈추진 않으니깐요. 그런 힘은 절대루 쉬지 않구 수백만 가지 세계를 만들어내지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비슷한 것들을요. 선한 힘에 대한 믿음을 절대루 멈추지 않구 이 세상이 그런 힘으루 가득 차 있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해요. 부르는 건 뭐라 부르든 상관없어요._446~447p.


불쾌하거나 비관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이밀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유쾌한 생각들을 얼른 떠올려 나쁜 생각들을 몰아낼 줄만 안다면, 그 누구라도 훨씬 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은 한곳에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니까. _453p.


#비밀의화원 #프랜시스호지슨버넷 #아일렛솔 #아트앤클래식 #고전 #스테디셀러#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2020문학주간 #문학주간 #문학은더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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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라디오
남효민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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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방송 원고는 작가의 글이지만 디제이의 말이기도 하다. 디제이의 말이지만 작가의 글이기도 하다. 글이지만 말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말을 글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매일 쓸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지만, 사람은 누구나 매일 말을 하니까. _014p.


예전에 함께 일한 피디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라디오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시그널 음악으로

사람들의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 같아."_315p.


<별이 빛나는 밤에> <두 시의 데이트> <꿈꾸는 라디오> <푸른 밤> <오늘 아침> <오후의 발견> <펀펀 라디오> <FM 데이트> 등의 프로그램을 거쳐 지금은 TBS의 순수 음악방송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 와 MBC 캠페인 <잠깐만>에서 디제이와 사람들의 말을 쓰는 남효민 작가의 에세이.


라디오를 들으며 오프닝 멘트에 귀 기울이게 된 게 언제부터 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라이오 디제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보다 프로그램의 시작, 오프닝 멘트를 정성 들여 듣게 된 게 2~3년 정도 된 것 같다. 경기도 외곽으로 매장을 옮기며 음악만 틀어놓는 매장은 재미가 없었고 특정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고정해두고 듣기도 꽤 되었는데, 좋아하는 DJ도 특정 요일의 프로그램도 생기면서 매일 새로운 글을 써내야 하는 라디오 작가들의 일상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매일 오프닝 멘트를 쓰는 20년 차 라디오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함께 나누고 싶은 추억들


숙제, 시험공부, 책 읽기를 하면서도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라디오 세대. 버스기사님들이 즐겨듣던 <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는 33년의 방송을 끝으로 새로운 DJ들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가끔 경쾌한 시작음과 함께 싱글벙글 쇼~ 하고 시작하던 그 멘트가 참 그립다. 라디오와 함께 성장한 세대여서일까? 라디오 이야기를 하자면 하고픈 이야기들이 참 많지만, 그래서 라디오 작가들의 에세이 출간 소식을 들을 때면 찾아 읽게 되는 것 같다. 아날로그 한 책표지도, 종이의 질도 손에 챡챡 감겨 매일 밤 몇 페이지라도 넘겨보고 싶어 읽고 또 읽었던 「그래도 라디오」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그래도 어느 한 줄 쯤으로, 그때, 우리의 그 시간을 떠올려 보셨기를."


어떤 프로그램을 하게 되든 그 프로그램의 타깃이 되는 청취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하려고 애쓴다. 사람 사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공감하게 되지만 그래도 더 공감해 보려고 한다. _052p.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분명 있다.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하나도 괜찮지가 않고, 힘내라는 말을 들으며 오히려 힘이 빠지고, 좋아질 거라는 얘기가 헛되게 들릴 때. _074~075p.


라디오에서 겪은 많은 일들을 통해 나는 자랐다. 때론 슬픔을 잠시 내려둘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지금의 슬픔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조금은 냉정해 보이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_142p.


과거를 잘 돌아보지 않는다. 늘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려면, '어제가 될 오늘'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나쁘지 않게 살아야 하는 게 맞는 데 그러지 못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_257p.


'우리 사이가 이 정돈데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나를 이해하겠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류라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나를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건 내 바람일 뿐이다. 상대에게 너무 많은 포용력과 배려를 바라는 얘기다. '내가 다 너를 생각해서 말한 거야'라는 말도 내 입장에서의 합리화인지도 모른다. 나는 상대를 생각해서 한 얘기일지 몰라도 상대가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면 그건 하지 말았어야 될 말이었던 거다. _281~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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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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