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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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살림살이, 또래 연령의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던 골목. ~야 놀자~. 한마디면 우르르 몰려나와 놀이터로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다녔고, 조금 멀리는 개천으로 몰려가 놀기도 했던 시절. 계*사 영업사원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집에서 어떤 전집을 샀다더라~라는 소문이 들리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들였던 시절. 풍족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먹고, 책 구입하는 데는 어느 집보다 빨랐던 집이었다. 아이가 넷이니 누가 읽어도 읽을 테고, 생각해 보면 늘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면 책을 읽고, 카세트테이프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전래동화를 들으며 놀았던 그 시절..


70년대 생이라면 폭풍공감할 문장들이 참으로 많... ^^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에게 안녕을 묻는듯했던 포근하고 다정하며, 그 시절을 지켜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책이다. 눈이 오면 읽어야지, 하며 구입해두고 1년을 묵혔다가 읽은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시절의 시간들이 몽글몽글 떠올라 시절을 함께 성장하며 읽는 기분이 들었던 문장이 많았다. 과거의 나를, 잊고 싶었던 시간을 지나온 나를,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던 소복한 문장들. 조금씩 아껴 읽다가, 발췌해둔 문장들을 한 번씩 더 읽다가, 노트에 옮기며 다시 천천히 읽으며 책장을 덮었던 한지혜 작가님의 산문. 눈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책이 될 것 같다.


더한 눈이 쌓여도, 더 먼 길을 걷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날 함박 함박 떨어지던 눈이 내 귓가에서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중략)...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 날씨든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_60~61p.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_셰익스피어 <리어왕>

내 얼굴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서야 한다는 모범답안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끔은 나보다 타인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강요하고 통제하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_152~153p.


미워했든 사랑했든 어릴 적 나는 가족이 완전한 결합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그러니까 나 스스로 하나의 가족을 생성하면서 나는 아주 당연한 소규모 공동체라고 생각했던 가족이 사실은 매우 특이하고 불안정한 결합체의 단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투적인 문장 그대로 결혼이란 가족과 가족 간의 만남이었지만, 그렇게 만나서 모두가 가족이 되지는 않는다. 공유된 기억과 서사가 없는 가족도 가족일 수 있을까. 반문하다 보면 공유한 기억과 서사의 함량이 가장 딸리는 건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둘의 아이, 세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이 아닐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쳇바퀴 도는 질문에 봉착하고 만다. _190p.


마음은 중앙으로 향하고, 욕망은 상단에서 춤을 추다 곤두박질치면 위로는 늘 내가 돌아보지 않던 자리에서 찾아온다. _227p.


#참괜찮은눈이온다 #한지혜 #에세이 #산문집 #교유서가 #동아펜 #Q3 #동아Q3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함께읽어요 #나만알고싶은책 하지만 #모두에게권하고싶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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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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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너 하고 싶은 대로만 사니."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면 좋겠네."

"누가 살지 말래?"

나는 엄마를 쳐다봤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데도 못 가는 건 결국 식구들 때문이었다. _36p.


보통의 삶이란 무엇일까? 꿈대로 희망 대로 살아가는 삶은 행복할까? 가족 구성원의 안녕한 오늘이 현실을 살아내기 바쁘다 보니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걸까? 아니면 '다 그렇게 살아가잖아.'라는 마음인 걸까? 장래희망이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런 그녀의 바람을 알아챈 동생 덕분에 뒤늦게 공부를 했지만 등단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고 매일 시 한편씩을 필사하며 하얀 종이를 놓고 앉아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한 생활도 여동생과 조카들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게 되면서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잠시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는 삶을 지키기 위해 만나던 이와의 이별을 고한다. 그녀가 없으면 가족 구성원을 지탱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혼자만의 희생으로 지켜질 수 있는 가족이 있던가? 어쩌면 너무 많은 생각에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내가 나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마음과 상황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더 애틋하고 응원하게 되었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삶은 고단하지만 희망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을 쓰는 일은 삶과 같아 시간이 흐를수록 여물고 단단해져야 하는데, 아니 사는 일이 소설 쓰는 것을 닮아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하고 견고해야 할 것인데, 일상도 소설도 늘 미진하기만 한 나는 그 시절처럼 매일 시집을 펼쳐 든다. 다시는 언어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_김이설


아침에서 저녁으로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듯이, 너무 당연해 이유를 붙일 까닭 없이, 그 사람과 나는 만나왔다. _11p.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못 찾는 것도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른 척 무시하고 안 보이는 척 외면해왔던 것이다. _62p.


글을 쓰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동생의 말이 맞았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글도 깊어지기를 희망했지만, 그건 나 혼자 가늠하기 힘든 일이었다. _72p.


네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저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터널은 결국 끝이 있고, 그 끝은 환하다고 말할 때마다 동생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전, 내가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대출까지 책임져준 동생에게 빚을 갚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동생이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지 않았어도 아이들을 위해 살 수 있었을까. 애틋하고 딱한 마음이 들면서도 어느 날에는 미쳐버릴 만큼 짜증이 났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똑같은 일의 반복에 진저리가 쳐졌다. _78p.


그 사람과 나는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을까. 그걸 가늠하고 헤아리는 건 의미 있는 일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 의미를 다하는 상태였다. 사랑하기까지의 시간과 사랑한다는 고백까지의 시간이 제일 황홀한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 그다음의 순서는 사랑을 즐기고 사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헤어지는 것뿐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_88~89p.


가족은 공동 희생 구조였다.

"당신 꿈은? 당신 인생은? 그렇게 희생하면 나중에 알아주기나 할 것 같아요?"

"안 알아줘도 상관없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일이야."

"그 책임을 왜 당신이 져야 하는데요."

"나는 이미, 진작에....."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_113p.


매일 한 편씩 필사를 하고, 줄곧 시집만 읽어댄다고 실력이 늘 리 없었다. 계속 써왔어야 했는데. 쓰지 않으면 늘지 않는 것이 글인데, 알면서도 마음처럼 못 했다. 늦은 줄 알고 출발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인데. 공부를 할 때, 결혼을 할 때, 아이를 낳고,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새로 만나는 것 모두가 그 시기에 걸맞은 때에 행하는 것이 보편의 삶인데. 내가 보편의 삶을 살지 못해서 나에게는 늦거나 이른 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적인 벽에 맞닿으면 자꾸 잘못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걸 깨닫는 것조차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자꾸 어쩌지 못했다. _120~121p.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피지 못한 꽃, 아직 발화하지 못한 꽃, 아직 제대로 맺히지 못한 꽃, 내가 꽃이라면 한 번은 피워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정말 식구들에게 발목이 잡혀 땅에 묻히기 전에. 나는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숨어 있을 곳이 필요했다. 적어도 식구들과 거리감을 둘 공간이 필요했다. _151~152p.


#우리의정류장과필사의밤 #김이설 #작가정신 #한국소설 #소설추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문장필사 #필사 #라미만년필 #라미룩스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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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풍경들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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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너와집, 돌 너와집, 흙집, 화로, 아궁이와 부뚜막, 굴뚝

김치광, 물레방아, 디딜방아, 맷돌, 장독대, 고무신, 바가지, 등잔, 키, 뒷간

초막, 농사꾼, 무명과 명주, 한지, 쌀엿, 한과, 홍주, 메주, 손곶감, 전통옹기, 숯가마, 대장간, 뻘배잡이

오지마을, 인제 장터, 시골길, 줄나룻배, 섶다리, 서낭당,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 풍어제


책의 서문을 읽고 목차를 읽으며 내가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단어들을 꼽아보았다. 지금은 사라졌거나 대부분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의 흔적을 저자는 사진에 담고 이야기하고 있다. 옛 물건들을 떠올리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들, 냄새, 시간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우리 곁에 있어 줄 수 있을까? 지금은 사라진 것도 많고, 현재 그 명맥을 이어가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까?


1 옛집 풍경

2 그 밖의 풍경들

3 명맥을 잇는 사람들

4 마을 문화


페이지를 넘기며 사진과 저자의 이야기로 읽는 사라져가고 있는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글이기도 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풍경들이 시간의 무덤에 묻히기 전에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저자 김용한이 15년 동안 발로 찾아낸 옛 풍경의 기억과 기록은 부모님과 아이들과 책 속의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우리 세대는 어떤 풍경들을 담고, 이야기하게 될까?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그것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내가 지켜 갈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가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얼마나 허망한 희망인가.


사실 이 세계는 무수한 사라짐 속에 구축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엄연히 존재했던 그것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내가 목도한 숱한 풍경이 시간의 무덤에 묻히기 전에 이렇게 기억의 창고에 하나씩 저장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늘 그랬듯 우리는 시간 앞에서 슬퍼할 겨를이 없다. _서문


#사라져가는풍경들 #이용한 #에세이 #상상출판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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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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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몫의 삶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몫의 삶, 자기 그릇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그릇에 자기 삶을 채워 가며 살아야지, 남의 그릇을 넘본다든가 자기 삶을 이탈하고 남의 삶처럼 살려고 하면 그건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 홀로 태어나듯이 저마다 독특한 자기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닮으려고 하면 자기 삶 자체가 어디로 사라지고 맙니다. _서문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스님이 돌아가실 때 글 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고 한다. 살아가는데 많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비우고 정리하고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나와 자연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기를 이야기한다. "자연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진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하나씩 더해 가지만 나이가 들면 하나씩 주어든다." "잘 버릴수록 부자가 된다."등 생전에 남기신 글들을 다시 읽으며 세월이 흘러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을 읽게 된다.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샘터 50주년, 특별판 「스스로 행복하라」 스님 살아생전 집필하신 글 들 중,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글들을 추려 묶은 한 권의 책. 버리고 비우고, 욕심내지 않기, 내 몫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는 한 해를 시작해야겠다. 2020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2021년 코로나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글이 아닐까?


언젠가는 이 몸도 버리고 가야 합니다. 내 몸도 버리고 갈 텐데, 소유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한때 누구나 갖고 싶어 합니다. 친구가 어떤 물건을 사는 것을 보면 갖고 싶어집니다. 빨리 그런 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소유의 늪에 오래 갇혀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본질적인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살아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의식이 분산되어,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살지 못하고 무엇엔가 휘말려 쫓기듯 살게 됩니다.

'쇼핑하기 위해 태어난다.'란 말은 현대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해 줍니다. _26p.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_56~57p.


#스스로행복하라 #법정 #에세이 #물방울서평단 #샘터 #물방울서평단15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동아연필 #동아펜 #동아Q3 #Q3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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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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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부르는 이름》은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사랑을 해본 사람들을 향한 선사에 다름이 아니다.

'나'보다 '너'를 연민하는 마음. '나'보다 '너'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너'가 '나'의 마음에 보답해 주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먼저 '나'를 내어주는 마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마음. 아마도 이러한 마음들이 다름 아닌 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이끌어내준다. 참 고맙고 다행이다.


어른이 되면 어른의 삶을, 어른의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를 훌쩍 넘어서고 나니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구나...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무색하게도 참... 치기 어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구나 생각해 보게 된다. 순간은 영원하지 않고, 한 번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얻어진 것들도 있다는 걸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 마주하게 되고, 그 문장을 되풀이해 읽으며 지나간 마음들과 시간들의 안녕을 물었던 <가만히 부르는 이름>.


어른들의 사랑을 하는 수진과 혁범, 그저 바라보고 좋아하는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한솔과 수진. 서로 다른 사랑의 온도에 조금씩 한솔에게 마음이 기울지만 수진의 선택은, 어쩌면 이런 결말을 예상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한 편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 어쩌면 보지 않았더라면, 몰랐더라면 나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나'만은 행복할 수 있었을까?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다운 선택은 아마도 변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계절 읽어 더없이 좋았던 임경선 작가님의 소설, 시절을 함께 해준 고마웠던 이들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한편 그저 잘 살아주기를...


"어떤 일들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럴 때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일들은 알아서 흘러가게 둘 수밖에 없어. 어디로 흘러가든 그야 내가 알 바가 아니고."

그는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_38p.


한솔의 해맑은 질주가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점점 줄어간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열정을 느끼는 일에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그동안 한솔이 얼마나 많은 말을 속에 담아두고 참고 있었을지, 수진은 과거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아 목이 조금 메었다. _60p.


수진에게 선량한 어른들의 호의는 결코 의심받아서도, 질문받아서도 안 되는, 옳고 선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그런가? 어쩌면 그 호의들조차도 참고 견뎌내야만 했던 것들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수진은 불현듯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결국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자신이 스스로를 몰아세워 본래의 나를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은 것이 아닌가. 타인에게나 '좋은'사람이었지, 스스로에겐 조금도 '좋은'사람이 아니었다. _123~124p.


"엄마도 한때는 이별이 구원할 길 없는 결말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알게 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의지로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할 때도 있고,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 어쨌든 이제 그것들이 내 곁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무게나 선명함, 그리고 소중함을 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 얻은 것이란걸." 무심코 '엄마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있던 수진은 속으로 울컥했다. _136p.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서 수진은 생각한다.

결혼생활은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불행하다고. _208p.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행여 그 '장소'가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기억만은 남을 것이다.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을 이루는 바람과 공기와 비의 냄새 사이에서 불현듯 어떤 익숙한 감각들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_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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