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여름 - 이정명 장편소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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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출 수 없는 페이지터너, 믿고 읽는 이정명!

 

오래 잊었던 열여덟 살의 여름이 떠올랐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변에서 죽은 사람을 본 그해 여름. 얕은 갈수기 물살에 하천의 바닥 자갈이 쓸리는 요란한 소리. 젖은 옷자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뺨에 달라붙은 수초와 이마에 맺힌 물방울.... 그 일은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과 달랐고 그 모든 일을 합쳐놓은 것과도 달랐다.

그는 이제 안다. 부끄럽고 부도덕한 과거를 대면할 용기가 없었음을. 지금까지 미루어왔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을. _25p.

_

 

"말하자면 나의 뭐에 관해 쓸 거지?"

"당신이 모르는 당신, 당신이 모르는 나에 관한 이야기.... 자서전이기도 하고 논픽션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아무것도 아닌 얘기...." _224p.

 

쐐기 화가로서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한 화가 한조, 그의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마흔네 살의 아침 그의 인생에서 아내가 사라졌다.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고 했던 아내가 그의 앞으로 남긴 소설의 일부분은 인생의 절정에 위치한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게 될지도 모르는 내용인데...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하워드 주택의 지수, 맬컴 주택의 수인 그리고 지수를 짝사랑하는 한조. 어느 밤 사라진 지수는 며칠이 지나 시체가 되어 돌아오고, 자살이 아닌 타살로 결론지어지며 가까운 이웃인 맬컴 주택의 세 남자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수인은 형의 제안으로 둘이 함께 있었음을 입증하지만 과거 범죄 경력이 있던 아버지가 용의선상에 오르고 범행을 인정하며 사건은 마무리되지만 그 이후, 그들 가정은 나름의 이유로 무너져버린다.

 

사이좋은 이웃이며 한 가족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했고,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은 시간이 흘러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지수는 왜 사라졌고, 누구에 의해 살해되었는가? 자살은 아니었을까? 제일 유력해 보이는 용의자, 지수를 짝사랑했던 이의 우발적인 범죄일까? 새로운 화자가 등장할때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리하게 되지만... 한조의 현재 삶을 조명하며 지수, 한조, 해리, 수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퍼즐을 맞춰가듯 그들의 삶과 사건을 재구성하며 그 시간, 그 사건 현장으로 데려갈 것이다.

 

화려한 하워드 주택과 볼품없는 맬컴 주택은 더할 바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웃이었지만 두 가족을 구분 짓는 은밀한 경계는 존재했다. 더없이 친밀한 이웃이라는 관계를 한 꺼풀 벗기면 거기에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냉혹한 구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부자와 빈자, 윤택한 자와 누추한 자, 기회를 가진 자와 소외된 자,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로 환원되는 비정한 계급 체계. 한 가족처럼 매일 함께 어울려도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하워드 주택은 맬컴 주택 사람들이 꿈꿀 수는 있어도 가질 수 없는 대상, 바라보긴 해도 다가가지 못할 영역이었다. _35p.

 

미란은 세제를 푼 빨래통에 다림질까지 마친 수인의 바지를, 지워지지 않은 물감 자국이 남은 한조의 셔츠를, 남편의 오버롤을 담그고 꾹꾹 눌러 밟았다. 세탁기는 믿을 수 없었다. 옷감들을 비비고 주무르느라 손마디가 욱신거렸다. 그 순간 미란은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깨달았다. 남편이나 두 아들 중 누군가가, 아니면 그들 모두가 지수의 죽음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가능성.

그런데도 그녀는 그들을 다그칠 수 없었다. 그녀가 믿지 못한 건 가족이 아니라 세상이었다. _90p.

 

거짓 자백과 잘못된 판결이 진실을 뒤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하워드 주택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실을 외면했고 현실에서 도망쳤다. 그들은 딸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고 슬픈 얼굴 뒤에 숨거나 술과 우울에 빠졌다가 죽었다. 법적 절차가 종결되었으니 재수사나 재심은 불가능하고 진범을 밝혀도 의미가 없었다. 법과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단죄는 이제 해리의 몫이 되었다. _290p.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공포에 그는 망연자실해진다. 하나씩 무너지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몰락은 한순간에 오는 것이다. _367p.

 

#부서진여름 #이정명 #은행나무 #소설 #소설추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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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하라 - 10만 부 기념 에디션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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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몫의 삶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몫의 삶, 자기 그릇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그릇에 자기 삶을 채워 가며 살아야지, 남의 그릇을 넘본다든가 자기 삶을 이탈하고 남의 삶처럼 살려고 하면 그건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 홀로 태어나듯이 저마다 독특한 자기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닮으려고 하면 자기 삶 자체가 어디로 사라지고 맙니다. (···) 사람은 시시로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떳떳한 인간으로서 향상의 길로, 보다 값있는 길로 털고 나서야 합니다. 그때마다 내 인생을 내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새롭게 살아갈 때,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_서문

 

2020년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2021년은 10만 부 기념 에디션 양장본으로 재독하게 된 「스스로 행복하라」 스님이 돌아가실 때 글 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고 한다. 살아가는데 많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비우고 정리하고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나와 자연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기를 이야기한다. "자연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진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하나씩 더해 가지만 나이가 들면 하나씩 주어든다." "잘 버릴수록 부자가 된다."등 생전에 남기신 글들을 다시 읽으며 세월이 흘러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을 읽게 된다.

 

「스스로 행복하라」 10만 부 기념 에디션은 1장 행복/ 2장 자연 / 3장 책 /4장 나눔 법정 스님의 대표 수필 29편을 수록하고 있다. 재독하면서 놀랍게도 지난해 읽었던 문장과 비슷한 부분에 공감했고, 이러한 문장들을 다시 손꼽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은 왜 이리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지....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읽어봐야 할 글이 아닐까?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따릅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불필요한 욕구는 고통을 가져옵니다. 자기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어디로 이사 갈 때만이 아니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 언젠가는 이 몸도 버리고 가야 합니다. 내 몸도 버리고 갈 텐데, 소유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한때 누구나 갖고 싶어 합니다. 친구가 어떤 물건을 사는 것을 보면 갖고 싶어집니다. 빨리 그런 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소유의 늪에 오래 갇혀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본질적인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살아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의식이 분산되어,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살지 못하고 무엇엔가 휘말려 쫓기듯 살게 됩니다.

'쇼핑하기 위해 태어난다.'란 말은 현대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해 줍니다. _25~26p.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는 말.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를 가지고 되씹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고,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최대한으로 살라는 이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기운이 솟는다. 우리가 사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 자리에서 순간순간을 자기답게 최선을 기울여 살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상황 아래서라도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_82p.

 

#스스로행복하라 #10만부기념에디션 #법정 #에세이 #물방울서평단 #샘터 #물방울서평단15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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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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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불안한사람들

 

"결정을 못 하겠어요". 은행강도는 말했다. 어쩌면 그날 한말 중에서 그게 가장 솔직한 말일지 몰랐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얼른 어른이 돼서 모든 걸 직접 결정하고 싶어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게 가장 힘든 부분임을 깨닫는다. 항상 의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어느 당에 투표하고 어떤 벽지를 좋아하며 성적 취향이 어떻게 되고 무슨 맛 요구르트가 자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낼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어른이 되면 시종일관 시시때때로 선택하고 선택을 당해야 한다. _267~268p.

 

<오베라는 남자>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프레드릭 배크만. 이후 국내에 출간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 마리 여기 있다> ,'오베라는 남자'를 뛰어넘어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던 <베어 타운>, 그 뒤를 잇는 이야기인 <우리와 당신들>역시 높은 인기를 받으며 출간하는 작품마다 작품의 성장성을 보여주는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3년 만에 집필한 장편소설 「불안한 사람들」은 작은 도시의 제야 전날 총을 든 강도가 돈이 없는 은행을 털려다 실패하고 얼결에 아파트 오픈 하우스에 들어간 은행강도와 인질들의 하루를 담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아파트 오픈 하우스를 구경하러 왔다가 인질이 된 안나레나, 로게르 부부, 율리아와 로, 에스텔과 사라, 부동산 중개업자와 토끼(?) 그리고 이 상황에 조금은 엉성해 보이는 은행강도까지.... 다리 위 남자를 구하고 싶었던 소년은 경찰이 되었고 아버지와 같은 경찰서에 근무하고 조용한 동네에 갑작스러운 은행강도 사건에 술렁이는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인질들은 무사히 구해냈지만 아파트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 바닥에 낭자한 피, 그리고 사라진 은행강도. 이 사건을 인터뷰하는 야크와 짐은 협조적지이 않은 인질들의 수다에 점점 기가 질리고, 인질들 중에 은행강도를 도운 사람이 있다?!

 

아파트를 매입해 수리해서 다시 판매하는 노부부, 집 구경을 다니는 게 취미인 은행 간부, 자녀들이 살 집을 대신 봐주러 온 할머니, 곧 아이를 출산 예정인 젊은 부부,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토끼와 숨어있던 공인중개사, 사건 현장엔 없었지만 연장선상에 있었던 심리상담사. 목격자 진술서는 아무 말 대잔치 같지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개개인의 이야기가 하나의 겹겹이 쌓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겉으로 보이는 삶, 이면에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른으로 사느라 힘들었던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이 소설은 넷플릭스 영상화도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생생한 영상으로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계획도 없고 그저 최선을 다해 오늘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테니까.

가끔은 껍데기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이 정말 아플 때도 있다. 공과금도 내야하고 어른도 되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는 법을 몰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지독히 높은 일이라서 겁에 질릴 때도 있다. _16p.

 

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던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작 우리를 말렸어야 했다. _74p.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속으로는 그렇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바보들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바보라서 친절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_156p.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라는 것. _473p.

 

#ANXIOUS_PEOPLE #FREDRIK_BACKMAN #프레드릭배크만 #이은선 #소설 #다산책방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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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죄의 궤적 1~2 - 전2권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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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죄의궤적

 

"아니, 사형이 무서운 것은 아니에요. 어젯밤에 생각했는데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마음이 무거워요."

"그런 말 하지 마. 모처럼 태어난 거잖아."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았던 사람도 있어요. 내가 그래요." _361p.

 

사이코패스는 사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 잠재적 사이코패스인 우리는 그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아예 우리와 구별된 사이코패스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안도한다. _437 옮긴이의 말

 

「죄의 궤적」은 오쿠다 히데오가 7년 만에 선보인 신작 사회파 소설이다. 한국을 의식하고 집필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한국에 요소를 군데 군데서 마주하며 웃게 되는데, 실로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된 글이기도 하다. 1963년 레분토의 작은 섬에서 어업을 도우며 살아가던 우노 간지. 그저 평범해 보였던 청년은 빈집털이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해가며 도쿄로 상경할 자금을 모으고 있던 와중 함께 일하던 아카이에게 발각된다. 전당포에 맡긴 물건의 출처가 발각되며 이대로 잡히나 싶었는데 아카이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 하나 싶었지만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도쿄에 상경한다.

 

우노 간지, 형사인 오치아이 마사오, 산야에서 여관을 돕고 있는 마치이 미키코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빈집털이와 시계상 살인사건,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유괴사건과 호스티스 살인사건 이 모든 사건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돈이 필요하면 죄책감 없이 빈집털이를 실행하고, 어딘가 조금 모자란듯한 사람, 악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선함도 아닌 감정으로 살아가는 우노는 빈집털이범에서 아동 유괴범이 되었는가? 1960년대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글은 도쿄에선 올림픽을 앞두고 번화한 도시에서 벌어진 아동유괴 사건을 마사오 형사의 시점으로 추적해가는 한편 우노의 행보를 보여주는데.... 어쩌면 이 사람은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을지도 몰라, 이렇게 백치미가 돋는 사람인데?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2권의 중반 이후부터는 페이지를 멈출 수 없을 정도의 몰입도를 보여준다. 7~80년대 드라마 수사반장의 분위기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생생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비극적인 사건은 해결되지만 사건의 여운과 그 후 이야기를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다. 인간과 죄, 그 죄의 근원과 인간을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글을 읽는 내내 머리에 떠나지 않는 질문이 될 것이다.

 

마음속에는 어딘가 대담한 감정이 침전해 있어 무섭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궁지에 몰려도 별로 심한 타격은 받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하겠느냐는 심정인 것이다. _30p. 1권

 

간지는 무시무시한 태도로 위협하는 남자들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 어느 날 자신은 감정의 스위치를 내리는 기술을 익혔다. 그 이후로 무서운 것이 없어졌고 긴장하는 일도 없어졌다. 설사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_99p. 2권

 

"오바 씨는 몰라요. 나쁜 짓이라는 건 열결 되어 있어요. 내가 훔치는 것은 내 탓만이 아니에요. 나를 만든 것은 아방이와 오마이니까요." (···) "나는 지금까지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를 몰랐어요.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왜 이 세상에 있는지 몰랐어요." _334p. 2권

 

#오쿠다히데오 #송태욱 #소설 #은행나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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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백영옥 지음 / 나무의철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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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곧어른의시간이시작된다

 

시간은 많은 걸 바꾼다. 세월을 비껴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세월을 그대로 관통해 몸과 마음에 진한 삶의 무늬가 새겨진 사람도 있다. 살아보니 변해서 좋은 때도 있고,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경우도 있다. (···) 청춘은 이제 내게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아니다. 노안 때문에 책 읽기가 다소 불편해지고, 오래 앉아 있으면 좌골 신경통에 어김없이 다리가 저릿한 지금의 내가, 나는 감히 더 좋다. (···) 이제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채로 기억한다. 떠나간 것은 떠나간 대로 추억한다. 언젠가 쓸 것을 대비해 여기저기 쟁여두던 마음이 실은 내 안의 두려움이란 것 역시 알아간다. (···)

내가 가장 예뻤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있는 지금의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_ #작가의말

 

책을 읽기 전, 이미 제목에 사로잡히는 책들이 있다. 백영옥 작가의 책들이 내겐 그러했다. 열성적이진 않아도 그녀의 책이 출간되면 늘 조용히 책장을 넘겨보곤 했다. 개정판임에도 가끔 제목이 바뀌고 책표지가 바뀌어 새로운 책인가? 싶어 다시 구입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녀처럼 처음 그대로의 제목으로 2012년 출간된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인 책을 2021년 다시 읽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며 2012년의 시간을 지나 2021년의 시간을 살아오며 내게도 일어났던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 보게 된다. 때로 응원이 필요했고,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시간을 지나 안정적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고,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들을 통과하며 혼자서도 주문처럼 외우기도 했던 말이다. 다시 시간을 되돌리면 지금보다 나은 현실에 도달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던 때도 있지만, 그냥 그 시간들을 오롯이 견뎌내 지나온 지금의 내가 좋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던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도 재독하고 싶은 에세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휘청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저 손 닿는 곳에 두고 넘겨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문득 도달하게 된 내 나이가 편안했으면 좋겠다. 청춘이 들고양이처럼 빠르게 지나가버린걸, 그리 슬퍼하지 않았으면. _25p.

 

살면서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얘기에 얼마만큼 귀 기울이고 살까.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말하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물어 정말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사람들은 행복을 어디선가 '오는 것'이라 말하곤 하지만, 행복이 그런 먼 곳에서부터 오는 추상적인 것일 리 없다. 행복은 '오는'게 아니라 '있는'것이다. 내가 애써 발견하는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선택해야 비로소 손에 잡히는 것이다. _100p.

 

좋은 소설이란 '답'이 아닌 그 시대를 산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변할 수 있다. 고전이 매번 사람들에게 다르게 읽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_149p.

 

'고전은 재밌다'라는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건 마치 뜨거운 욕탕에 들어앉아 '어! 시원하다'하는 아빠의 거짓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고전은 어렵고 읽기 힘들다. 고전 읽기엔 상당히 유혹의 기술이 필요하다. _151p.

 

※이 책은 2012년 출간된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의 개정판입니다.

 

#백영옥 #에세이 #에세이추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나무의철학 #책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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