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
카먼 마리아 마차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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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극악한범죄

"사람은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양처럼 무장비가 될 수도 있지. 사람들은 ㅡ 아니, 우리는 ㅡ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야. 저울을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기울이는 건 아주 간단해.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스테이블러." _136p.

 

카먼 마리아 마차도는 2014년 단편 <예쁜이수술>발표, 2017년 이 단편이 실린 소설집 『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를 출간했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여성의 몸과 욕망을 목소리한 이 소설집은 신인작가의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으로 출간 첫 주에 3쇄를 찍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예쁜이수술>, <특히 극악한 범죄>, <여덟 입>, <현실의 여자들은 몸이 있다> 인상 깊었던 단편들의 제목을 꼽아보기도 했고, 읽은 지 한참이 되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이미지로 떠오르는 단편들이다. 내 몸은 나의 즐거움과 행복을, 오롯한 나의 선택을 존중받아왔던가? 나의 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욕망에 충실했는가? 매 단편마다 독창적이고 관능적이지만 한편 생생한 이미지와 스산한 고통의 흔적을 경험하게 되는 글이다. 소설 한 편 한 편이 각자의 이야기로서 단단한 힘을 가지고 있어 더욱 매력 있게 느껴졌던 소설집이기도 했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많았지만, 이처럼 독창적이고 대담한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은 처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책표지 천선란 소설가의 추천사를 옮겨 적으며 며칠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서평을 마무리한다. 궁금한 마음이 든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소설은 저 너머의 세계를 그린다. 굳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혹은 보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숲 너머를. 그곳에 숨겨져 있던, 이를테면 레즈비언, 여성의 육체적 쾌락, 폭력, 그리고 주체성을 가진 몸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차마 듣지 못했던 몸의 언어로 말한다. 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기에 소설은 거칠고, 뜨겁고, 생생하다. 여성의 몸이 권리를 찾기 위해 내지르는 이 언어를 모두가 들어주기를 _ #천선란 (소설가)

 

#예쁜이수술

연인에게 극도로 비도덕적인 행위를 요구한 여자애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남자는 그 일을 여자의 가족에게 알렸고, 여자의 부모는 딸을 요양원에 넣어버렸죠. 그 여자애가 어떤 변태적 쾌락을 추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그래봤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요. 간절히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유폐시킬 만큼 황홀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남자애가 나를 알아챕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게 귀여워요. 그 애가 내게 인사하더니 이름을 묻네요. 나는 늘 내 삶의 중요한 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고, 지금이 내가 선택한 순간입니다. _16~17p.

 

#현실의여자들은몸이있다

방안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페트라의 어머니가 손목에 핀 쿠션을 차고 드레스 근처에서 맴돌고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빛들이 모여 형체를 이루고, 이 방안에 여자들이 잔뜩 있음을 나는 깨닫는다. 그 소문의 영상에 나왔던 여자들처럼 이들도 투명하고, 여운처럼 아스라이 빛난다. 그들은 이리저리 떠다니며 서성이고 이따금 자기들 몸을 내려다본다. (···) 페트라의 어머니가 여자의 피부에 바늘을 꽂아 넣자, 순수한 금사를 꿴 바늘이 반짝거린다. 옷감도 바늘에 같이 꿰인다. 여자는 비명 한마디 없다. 페트라의 어머니는 여자의 팔과 몸통을 따라 촘촘하고 고르게 바느질하고, 피부와 옷감이 절개 부위의 양쪽 단면처럼 단단히 하나로 묶인다. _217~218p.

 

#Her_body_and_Othef_Parties #그녀의몸과타인들의파티 #북클럽피오나 #카먼마리아마차도 #엄일녀 #문학동네 #소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온라인독서모임 #북클럽피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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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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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고군분투가 있다.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더라도 역시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에 어떤 권리라는 것이 있다, 고 김금희의 소설은 말하는듯하다. 어찌 된 일인지 더 힘들어져버린 이 고군분투를 김금희의 소설은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다. 지금, 그 지켜봄에서 발견되고 발생할 것들보다 더 절실한 '사건'도 없을 듯싶다. _ #황정아 문학평론가

_

 

나는 평소에는 크게 관심도 없는 사랑의 면면을 왜 이 여름 이렇게 고심해야 하나 생각했다. 리애씨도 선생님도 모두 나보다는 근 십수 년은 위인 여자들, 그러니까 더 늙고 경험 있는 연륜 있고 스펙 있는 여자들인데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다 여전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신화에서 인간이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 때 다 날아가고 남은 건 희망이 아니라 의문이 아니었을까.

_206p. #기괴의탄생

 

여름의 김금희, 책을 완독하고 나서야 책띠지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첫 장을 펼치면 '이 여름 우리가 가장 무르고 환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저자의 사인 문구를 먼저 만나게 된다. 매번 책장을 새로 펼치며 가장 먼저 읽고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된다. 7편의 단편을 모은 김금희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책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 크리스마스에는 / 마지막 이기성 /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기괴의 탄생 / 깊이와 기울기 / 초아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사건' 속에서 그럼에도 '나'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과 감상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는 글이 아닐까? 최근 소설가들의 단편 모음집을 한 권의 소설로 읽게 되는 빈도가 높아졌는데, 예전에 비해 단편을 읽는데 부담감이 줄어서 인지, 한 작가의 단편을 읽다 보면 그 작가의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게 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 작가는 쉽게 다가오진 않지만 조금 더 알고 싶은 작가가 있다. 내게 김금희라는 작가의 글은 가벼이 읽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미세한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환한 문장들, 김금희라는 믿음직한 세계' 라는 문장처럼 조금 더 알고 싶게하는 소설집이었다.

 

햇볕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쥐어 따뜻해졌는데, 가능하면 그것이 나의 무언가를 녹여주었으면 싶었다. 겨우 스물하나였던 나는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내면의 균열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 상해야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상하고, 다쳤다면 그 다쳐버린 상태를 내보일 수 있는 무른 마음을 갖는 것.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마음의 형질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너울처럼 나를 덮는 나쁜 상태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견고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_ 13~14p. #우리가가능했던여름

 

환자가 집안에 있는 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음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면 느낀 것이었다. _83p. #크리스마스에는

 

그가 유키코에게서 마음이 정확히 왜, 어떻게 떠났는지는 끝내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눈 오는 풍경처럼 온통 환하고 완벽한, 압도적인 충일함에서 시작하지만 일단 지워지기 시작하면 또 눈이 녹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얼룩이 연쇄되며 진행되니까. _108p. #마지막이기성

 

"그래, 넌 어디서 왔니?"

기오성이 그렇게 말하며 물수제비를 떴고 조약돌은 얼마 가지 않아 잠겨버렸다.

"페퍼로니에서 왔어."

강선이 피자 박스를 구겨 접으며 말했다. 그러자 우리는 웃었는데, 강선이 웃을 일이 아니라 자기는 한국에 돌아와 애들이 자꾸 그렇게 물어서 그런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페퍼로니 피자는 강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_151p. #우리는페퍼로니에서왔어

 

#우리는페퍼로니에서왔어 #김금희 #소설 #창비 #김금희소설집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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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충분한 삶 - 일상을 불충분하게 만드는 요구와 욕구를 넘어
헤더 하브릴레스키 지음, 신혜연 옮김 / 샘터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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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이만하면충분한삶

 

우리는 너무 많이 원한다. 하지만 행복해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단순한 진실을 계속 상기하면 된다. '우리는 자신

은 물론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다.' 마침내 충만함을 느끼는 자신을 상상해 보라.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_13p.

 

'이만하면 충분하다'싶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근거 없는 희망고문, 무조건 잘 될 거야, 너에겐 이게 필요하다고, 실패할 거야 등등 메시지가 넘쳐나는 요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오해 / 세상의 유해 / 나와의 화해 3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뉴욕>매거진에서 청춘들의 고민 상담 섹션을 진행하며 날카롭고 유쾌한 글을 집필하는 헤더 하브릴레스키, 비평가이자 상담가인 저자가 이야기는 때로 불편하기도 했다.

 

책을 읽다, 문득 이 책은 에세이인가? 비평서일까? 궁금증이 들어 찾아보니 '인문'으로 분류되어 있다. 가벼운 에세이로 읽기엔 조금 무거운 감이 있지만, 현시대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은 사실 읽으면서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삶이란 어디든 비슷한 것일까? 생각이 들게도 한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불완전한 삶이 위태로운 이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글이다. (다만 책의 폰트가 작게 느껴져 읽는데 조금 불편했다는 후기를 더한다. )

 

곤도 마리에의 책을 읽고 있으면 마법처럼 마음이 설렌다. 그녀는 낙천적인 듯하면서도 까다로운 문체로 물건들도 감정이 있다는 완고한 주장을 펼치며 자신의 주변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평생의 열정을 끌어모아 속이 후련해지도록 한바탕 쓸모없는 물건을 정리함으로써 인생을 바꿀 것을 독특한 방식으로 선동한다. (···) 당신의 집은 그냥 깨끗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비어 있어야 한다. _24~29p.

 

음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감각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정치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들먹거리는 식도락 분야의 거물들이 내세우는 구호들과는 반대로 음식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_65p.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연민을 키워야 한다. 순수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서로 소통해야 한다. _89p.

 

#헤더하브릴레스키 #신혜연 #에세이 #인문 #샘터 #물방울서평단15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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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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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어느맑은날약속이취소되는기쁨에대하여

 

"저는 약속이 취소되면 마음속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가끔은 그게 나라는 인간의 본질인 것 같다. (···) 나는 모듈형 인간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블록을 조립하듯 마음대로 세상과 연결되고 분리되는 사람. 외톨이가 아닌 채로 혼자일 수 있는 사람.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함께라는 가능성을 가진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된다. _15~19p.

 

<달의 조각>,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하현 작가의 신간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늘 느끼지만 책표지와 제목과 글의 조합을 이렇게 잘 뽑아내기도 힘들지 싶을 만큼 매번 만족스럽고 뿌듯하기까지 한 애정 하는 작가님이다. 결혼은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 장래희망은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는 이라면 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도 않아서 작가에게 빠져들지도 모른다.

 

'평범하기가 쉬운 줄 알아?' 라는 듯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반짝이는 글로 풀어내어 특별함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 평범함이 약점이고, 내가 나로 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책장 앞에서 조용히 그녀의 책을 꺼내들곤 했다. 때로 마음을 들킨 것 같고, 이 상황을 이렇게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구나 싶은 구절을 읽으며 복잡했던 마음을 다독이게 된다. 하현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삶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울타리를 만들어 특별하지 않지만, 내가 나라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모든 삶이 특별하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 같아요. 모두가 소중할 수는 있어도 모두가 특별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렸거든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평범한 나로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_10p.

 

지킬 게 많은 사람과 잃을 게 없는 사람 중 더 강한 건 어느 쪽일까. 지켜야 할 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자주 가난해진 기분이 든다. (···) 몇 개의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배웠다. 지킬 것이 많다는 게 꼭 가진 것이 많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사람은 아주 많은 걸 가지고도 아무것도 지키려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거의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도 아주 많은 걸 지켰다. _106~107p.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동시에 바다 건너만큼 멀 수도 있을 만큼 가까운 동시에 바다 건너만큼 멀 수도 있었다. 허물없이 장난을 주고받고 귓속말로 비밀을 속삭이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데면데면해졌다. 어른이 된 뒤에도 관계는 여전히 골치 아픈 숙제였다. 사람이 어려울 때면 사람으로 태어난 게 이 생에서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 같았다. _137p.

 

#하현 #에세이 #에세이추천 #비에이블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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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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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쓴것 #0판1쇄 #미리뷰어

 

내가 지금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그저 스토커나 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것. 특정한 사고나 사건이 아니라 나를 에워싼 상황 같은 것. 이를테면 젊은 여자가 스스로를 오롯이 책임지며 혼자 사는 일. _139~140p.

_

지혜 아빠와 둘이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한다. 지금처럼 편할 수 있었을까. 사는 일에 별다른 에너지를 쓰지 않으며, 가사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으며, 인정과 이해를 구걸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나이 먹을 수 있었을까. _232p.

 

소녀, 회사원, 딸, 엄마, 며느리, 시어머니 살아가며 다양하게 갖게 되는 가족과 사회 구성원에서의 이름들. 그 이름들로 살아가는 것은 쉽거나 녹록지 않다. <매화나무 아래>, <오기>, <가출>, <미스 김은 알고 있다>, <현남 오빠에게>, <오로라의 밤>, <여자아이는 자라서>, <첫사랑 2020>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의 삶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는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 '다르게' 이야기하고, 잊었던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다시' 이야기하는 여성 서사에 집중한다. _ #김미현 교수

 

이미 읽었던 단편도 있지만, 한 권으로 책으로 엮어 새롭게 읽는 글은, 조남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정 연령대가 아닌 다양한 연령대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풀어낸 단편들은 하나하나의 이야기마다 힘을 갖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여성의 시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단편들 중 인상 깊었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던 <가출> , <첫사랑 2020>의 초등학생 소녀는 코로나로 인해 부모님의 삶과 학교, 남자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그리며 생각지 못했던 마지막 모습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와 씁쓸하기도 했다. 다시 읽어도 소름 끼치는 가스라이팅의 흔적 <현남 오빠에게>의 마지막 몇 줄은 다시 읽어도 사이다!, <매화나무 아래> <오로라의 밤> 은 앞으로 맞이하게 될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기도 했다. 그저 살아갈 것인가? 세월을 막을 수 없든 맞이하게 될 나이 듦과 살아가야 할 삶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로의 연대를 찾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머지않은 우리들의 이야기 일 것이다. 20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터 2020년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진 여름까지 10년 동안 집필한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된 조남주 소설집 「우리가 쓴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내가 살아온 길고 복잡한 시간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여러 역할과 글을 쓰는 사람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다양한 고민과 각각의 고민에서 시작된 모두 다른 글들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함부로 호명되고 있었다. _75p.

 

"나 사실은 잘 지낸다. 어쨌든 회사도 다녀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살아야 하니까. 밥도 어지간히 넘어가고 잠도 잘 자는 날이 더 많아. 산다는 게 그렇더라." _108p.

 

수제비 냄비를 가운데 두고 세 여자가 식탁에 앉았을 때 지혜가 깜짝 선물이라는 듯 말했다.

"엄마, 나 임신했어!"

기쁘지 않았다. 갑자기 소매치기라도 당한 것처럼 넋이 나갔다. 아이고 잘했다, 장하다,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 지혜의 뿌듯한 얼굴이 낯설었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득달같이 엄마에게 달려올 만큼 자랑스러웠을까. 누가 지혜에게 이런 감정과 태도를 가르쳤을까. 딸이 약한 몸으로 임신과 출산을 겪어 낼 일이 걱정인지, 맞벌이인 지혜네 부부가 아이를 키울 일이 걱정인지, 내가 벌써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_208p.

 

#조남주 #도서협찬 #민음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추천 #추천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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