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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6월
평점 :

#도서협찬 #복고풍요리사의서정
'라 레뿌블리까 삼탈리아나 La Repubblica Tiamtaliana'는 세계지리를 포기한 사람만 아니라면 모두 아시다시피 50년 전 이탈리에서 독립한 이오니아해의 작은 섬나라다. 이탈리아 옆의 삼탈리아라니, 우연의 일치겠지만 한국말로 하면 나라 이름이 말장난 같다. 그러나 이 나라의 이름은 라틴어 'amor insula(사랑의 섬)'에서 파생되었고, 불가산명사 앞에 붙는 부정관사 'Ti'가 더해져 'Tiamtaliana'가 된 국명이라고 빅데이터 백과사전에 잘 설명되어 있다. _7p.
<이원식 씨의 타격 폼>, <말이 되냐>, <15번 진짜 안 와>, <예테보리 쌍쌍바> 그리고 에세이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의 저자 박상 작가의 신간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50년 전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한 이오니아 해의 작은 섬나라 삼탈리아, 폐쇄국가라는 삼엄한 경계를 뚫고 밀입국에 성공한 원식이 요리사가 되기 위해 정진했던 한국에서의 시간과 헌책방에서 우연히 읽게 된 조반니의 책을 통해 '궁극의 레시피'를 찾으러 떠난 삼탈리아, 두 개의 시공간에서 교차로 진행된다. 여행을 떠나며 들고 갔던 시집 몇 권이 삼탈리아 사람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고, 심지어 한국의 시가 인기라고 한다! 시심이 가득한 삼탈리아 사람들과의 만남에 등장한 심보선, 조연호, 신영배, 진은영, 김민정, 허연, 함기석, 최승자, 이현호, 이승훈, 최규승, 이용임, 신영배, 성동혁, 진은영 시인들의 시집과 시의 등장은 '이 작가 뭐지?' 뭔가 있어 보여! 그런데 또 웃음코드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전혀 이상하지 않아.
시가 모든 자본을 잠식한 나라 삼탈리아, 시를 읽지 않는 한국, 탈 한국을 선언한 이원식이 궁극의 레시피를 찾아 떠난 '삼탈리아' 에서 그가 찾고자 하는 궁극의 레시피를 찾을 수 있을까? 가상의 나라에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살아숨쉬는듯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삼탈리아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묘하게 한국의 인물들과 오마주되는 듯한 느낌! 소설 같은 나라, 이탈리아 옆 삼탈리아라니, 진짜 이런 나라가 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너무 리얼한 주석에 '삼탈리아'라는 나라가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읽었는데, 너무 유쾌하게 읽었던 소설. 시작될 긴 여름 시원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뭐야, 삼탈리아어잖아.'
묘하게 꼬아놓은 글씨체일 뿐, 조금만 집중하면 알 수 있는 삼탈리아어를 놔두고 섣불리 신비로운 고대 언어나 암호문일 거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나는 그것과 유사한 것을 알고 있었다. 신비롭거나 못 알아듣는 언어로 보이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알 수 있는 언어. 그게 바로 시였다. 음악은 움직이는 시였고, 도서관의 책들은 고요히 앉아 있는 시였다. 멋진 요리는 접시에 플레이팅 된 시였고. _33p.
나는 차에서 내려 그와 포옹한 뒤, 배낭에 든 시집들 중에 고민하다 조연호 시인의 『저녁의 기원』 초판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의 저녁이 이 시집으로 인해 편안해지길 기원하면서. 그러나 그걸 받아 든 그는 눈에 띄도록 어깨를 움찔하며 말을 더듬었다.
"이······ 이러 수가! 이건 삼탈리아 물가로 6억 리아에 거래되는 비싼 책이오. 빠그히의 가장 큰 헌책방에도 원본이 딱 한 권밖에 없고 자물쇠가 채워진 진열장에 보관할 정도인데, 실물을 만지다니 심장이 멎을 것만 같군그래. 한국과 무역을 하지도 않지만,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데다 이런 오리지널 초판은 정말 구하기 힘든 시집 아니오? 심보선 신작 시집도 받았는데 이런 귀한 것까지 염치없이 덥석 받을 수는 없소."_73p. (6억리아 = 약 7억 8천만 원)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서,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다가, 아주 작은 현상에서 바로 콧구멍 앞에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하는 그것.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나는 찾아야만 했다. 궁극을 말이다. 반드시 무언가의 끝판일 그것. 끝에 다다르면 끝난다. 원하는 건 그것이었다. 나는 시작했고, 끝나야 한다. 끝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끝에 달해야 한다. _252p.
"내가 왜 '가끔'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줄 알아요?"
"웃길 때까지 하는 반복성 개그 아니었나요?"
"인생은 찰나 같은 점들의 연속선이에요.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는 그 소스 코드에 가끔 인식되고 가끔 연결될 뿐이잖아요. 만약 그 가끔 오는 순간들을 우리가 놓친다면 인생은 정말 찰나가 되어버리죠. 훅 가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마는 거예요. 나머지는 모든 것에 드문드문하더라도 그 가끔 오는 연결에는 항상 간절해야만 해요." _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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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