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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422/pimg_724866124754441.jpg)
영화개봉 소식을 접하고서야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은교>. 책장에 꽂아놓은지는 1년이 넘은것 같습니다. 책이 원작인 작품들이 줄줄이 영화개봉을 하면서 그만큼 영화를 보기전에 읽으려고 꺼내드는 책들도 많은 요즘입니다. 원작이 좋다, 괜찮았다는 주변 지인들의 평은 뒤로하고 개인적인 감상은 다 접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늦은 밤 집필했던 책, 두 달이 채 안되는 기간에 완성하셨다지요? 그래서 저녁에 읽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낮에 읽는 책과 저녁에 읽는 책은 나눠서 읽는 편인데 늦은밤 더 감상적이게 되는 뭔가가 있기에 그런듯 하기도 해요. <은교>같은 경우는 환한 낮에는 이상하게도 집중이 안되던 책이었어요. 그러다 해질녘부터 야심한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읽어갔던... 그리고 마음 한 켠에 무엇인가가 답답한 갈증으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글이기도 했답니다.
나는 왜 너를 만났는가. 나는 왜 네게 빠져들어갔는가. 나는 왜 너를 이쁘다고 생각하는가. 아, 나는 왜 불과 같이, 너를 갖고 싶었던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모든 게 끝나버릴 질문이겠지.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라고 설명한다.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 네가 알아듣기 편하도록 쉽게 설명하자면, 사랑을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어서 나는 그말, 사랑을 믿지 못한다. /p91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는 노시인 이적요, 그가 사후에 남긴 노트를 1년후에 공개해달라며 Q변호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공개전 읽은 시인의 노트엔 엄청난 내용들이 담겨있고 그 연장 선상엔 그를 따르던 제자 서지우, 그리고 한은교가 있습니다. 어느날 외출하고 귀가하던 자신의 집, 자신의 의자에 놓여져있던 은교를 만나던 순간 그녀에게 빠져든 이적요. '순간'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빠져든다는건... 그리고 그 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할 즈음 서지우의 노트가 등장하면서 두 남자의 이야기가 얽히기 시작합니다.
거의 유일하게 그를 믿을 수 있었고, 살붙이 같은 정을 느꼈다. 단 하나의 가족이었고, 모든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을 내보여도 되는 유일한 친구였다. 다만 그가 제자로서 문학판에서 쑥쑥 뻗어나가지 못하는 게 늘 마음 아팠다. 멍청하다고 욕을 하고, 온갖 구박을 하며 위악적으로 굴어봐도 밭이 근본적으로 부실하니 소출이 없었다. 그래도 마음속에서 그는 여전히 '내 새끼'였다. /p249-250
잠깐이나마 몸 담았던 강당에서 알게 되었던 서지우와의 짧은 만남으로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이적요를 찾아온 서지우. 시인이 보기에 그는 글을 쓸 재주는 없어보입니다. 사제지간이었던 이적요와 서지우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한 건 한은교가 나타나면서 일까요? 이들 사이의 묘한 심리전은 은교가 아니라 그 누가 끼었더라도 이렇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노 시인과 서지우는 '내'가 가지지 못한 젊음, 재능 등으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은근히 돌려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엔 서로를 향한 무한한 질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애정', 또는 '사랑'이었을까요?
생의 마지막에 너를 통해 만나 경험한 본능의 해방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인생, 나의 싱싱한 행복이었다. 그게 바로 나 이적요다. 이적요는 본능을 가진 인간이었을 뿐 신성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그러하니, 아무도 더이상 내게 속지 말라. /p398
책을 읽었던 감상을 남기기가 참으로 힘들다고 느꼈던 소설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라는 문장도 시간이 흐를수록 곱씹어보게 됩니다. 이 부분까지 생각하면 세사람의 관계가 참으로 복잡하고 깊게 생각되어집니다. 읽었을 때의 감상, 생각등을 제 짧은 생각과 글로 남기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되는 책이었습니다. 이미 영화 예고편을 수차례 보아왔던지라 그들의 이미지를 그려가며 읽었기에 더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예고편에선 약간 '상상'을 하게 되는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영화를 보시더라도 책으로 읽는 깊이는 분명 다를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곧 개봉을 앞두고 책, 영화사이의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영화 같은데요. 저도 좀 두고 보려고 합니다.